"中에 다 뺏길라…EU "경쟁력 강화에 매년 1185조원 투자해야"

방성훈 2024. 9. 1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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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기, 경쟁력 강화 보고서 폰데어라이엔에 전달
디지털·청정·방위 산업 등에 대규모 투자 촉구
美보다 성장 느리고 폭스바겐 사태로 中경계감 고조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유럽연합(EU)이 미국과 중국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매년 8000억유로(약 1185조원)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마리오 드리기(왼쪽)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9일(현지시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에게 ‘산업 경쟁력 강화 보고서’를 전달하고 있다. AFP)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및 이탈리아 총리 출신인 마리오 드라기는 9일(현지시간) ‘산업 경쟁력 강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총 400페이지 분량으로 드라기가 EU의 의뢰를 받아 작성됐으며, 그는 이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에게 보고서를 직접 전달했다.

드라기는 보고서에서 EU의 현재 상황에 대해 디지털, 청정기술, 방위산업 등 중요 산업 및 성장 분야에서 기술혁신이 필요하다고 평가한 뒤, 미국과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선 연간 8000억유로가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이는 EU 국내총생산(GDP)의 5%에 해당하는 규모로, 그는 특히 민·관이 협력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 기업들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드라기는 또 중요한 산업 분야에서 자원을 비축하기 위해선 자원부국들과의 교역 및 직접투자, 핵심기술의 공급망 확보를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산업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EU 회원국들 간 협력 및 공조를 대폭 강화하고 결정도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외에도 대규모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선 EU가 공동채권 발행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럽에선 최근 경제적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성장률이 계속해서 미국을 밑돌고 있는 데다, 최근 중국의 위협까지 더해진 탓이다. 유럽 경제의 버팀목이자 독일 제조업의 상징인 폭스바겐이 전기자동차 판매 부진으로 자국 공장 폐쇄를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우려를 더욱 키웠다. 스웨덴의 볼보 역시 지난 4일 전기차 전환 목표를 철회했다.

이에 보고서는 EU의 전기차 전환 정책은 “산업 정책적 대안도 계획도 부족했다”고 강력 비판했다. EU가 기후변화 목표 달성에 매몰된 탓에 기업들의 기술혁신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기차 도입을 서둘러 추진해 중국 제조업체들에게 시장 점유율만 빼앗기게 됐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기술혁신이 빠르고 제조 비용도 낮은 중국산 전기차가 유럽 시장에 계속 유입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며 전기차를 비롯한 탈탄소 관련 분야에 신속한 자금 공급을 촉구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 필요한 무기와 탄약 부족이 심화하고,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지속 증가하고 있는 것도 방위산업 등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근거로 제시됐다. 보고서는 무인기(드론), 극초음속 미사일, 방위용 인공지능(AI) 등의 분야에 공동채권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역내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EU의 관련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예를 들어 EU 경쟁당국은 역내 인수·합병(M&A)에 엄격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통신 분야에서는 신기술 개발에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진행 또는 허용되지 않았던 국경을 넘은 M&A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명기했다.

드라기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유럽의 근본적인 가치관은 지속가능한 환경 속에서 (일궈내는) 번영, 평등, 자유, 평화와 민주주의”라며 “유럽이 만약 이를 더이상 제공하지 못하거나, 특정한 것(가치관)을 살리려고 다른 것을 포기한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개방된 경제 체제”라며 “파트너들이 우리의 룰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누구보다 취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도 “(경쟁력 강화는) EU의 가장 중요한 의제이며 향후 행동에 있어서도 핵심”이라며 “산업계가 기술혁신을 통해 탈탄소화를 실현하고 경쟁우위로 바꿀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또 민관 투자 확대뿐 아니라 복잡한 EU 절차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EU가 새로운 차입을 추진하려면 모든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불가피하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있어 실현까진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진단이다. EU 예산 제도를 개편하고 회원국으로부터 받는 기부금을 늘리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재원 문제는 향후 EU 정상회의에서 주요 논점이 될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내다봤다.

방성훈 (ba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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