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시각] 이복현에 휘둘리는 한국 경제

송기영 기자 2024. 9. 1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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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며 임기 내내 규제를 퍼부을 때 이에 부응해 대출을 틀어막은 장본인이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이다. 그는 교수 시절인 2015년부터 가계부채가 위험 수위라며 ‘부채 총량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2018년 5월 금감원장 취임 이후 연일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를 쏟아내더니 2021년 기어이 가계부채 총량규제를 도입했다.

가계부채 총량규제는 은행권의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을 5~6%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연간 한도가 차면 은행들은 대출 창구를 걸어잠갔다. 대출 거절의 사유가 대출자의 신용도가 낮아서도, 담보물이 없어서도, 수익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나라에서 금지해서’였다.

자산가들만 집을 사는 시대였다. 부동산 가격은 잡지도 못하고 선량한 대출 난민만 야기했다. 연구실에 앉아서 만든 정책과 실제 금융 당국 수장으로 맞닥뜨린 현실은 이렇게 괴리한다.

윤석열 정부의 가계대출 정책을 보면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한계점을 명백히 보았다. 금융 당국의 권위를 이용해 금융사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데는 일가견 있어 보이나, 가계대출 급증세를 꺾을 대책반장으로선 낙제점이다. 정제되지 않은 언행으로 시장은 혼돈의 연속인데, 정책 실패의 책임은 슬쩍 금융사에 떠넘겼다.

지난 7월 초 이 원장은 금융감독원 임원회의에서 “성급한 금리 인하 기대와 주택가격 반등에 편승한 대출 확대는 가계부채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러자 은행들은 약 두달간 가산금리를 조정하는 형태로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22차례 인상하며 대응에 나섰다.

부동산 시장이 “이번이 정말 마지막 기회”라며 유혹하는데, 금리 조금 올린다고 주택 구매를 포기할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금리 인상을 통한 가계대출 상승세 방어는 실패했다. 5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7월 7조1660억원, 8월 9조6259억원이 증가했다. 역대급 증가세다.

그러자 이 원장은 방송에 나와 “가계대출 금리 인상은 금융 당국이 바란 것이 아니다”며 은행 탓을 했다. 금융 당국 의도와 달리 은행들이 대출 금리를 22차례 올릴 동안 금감원은 직무유기를 했다는 말인가. 은행권 가계대출 금리 인상이 금융 당국의 용인 하에 이뤄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금리 인상 대책이 실패하자 은행들은 대출 창구를 닫기 시작했다. 이달 들어 은행들은 유주택자 주담대를 전면 중단하는 등 각종 대출 제한 조치를 내놓았다. 금감원은 한발 더 나가 “올해 경영 계획보다 더 많은 가계대출을 내준 은행들에는 내년에 더 낮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목표를 부여하겠다”고 경고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실패한 가계대출 총량관리제의 부활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실수요자들 사이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다. 다시 돈 많은 이들만 아파트를 사고 실수요자는 이유 없이 대출이 막히는 시대가 왔다. 그러자 이 원장은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을 줘선 안 된다”며 은행에 보완 대책을 마련하라고 했다. 실수요자 피해는 금융 당국 잘못이 아니라는 태도다.

당장 대출을 틀어막으면서 실수요 피해는 예상하지 못했을까. 가계대출 증가 억제와 부동산 가격 안정화라는 대의 명분 아래 땜질식 처방을 하니 실수요자에 대한 인식은 없었던 것이다.

이 원장은 금융·부동산 시장을 넘어 기업 경영 관련 발언을 해 논란을 키운다. 그는 윤석열 정부 인사 중 유일하게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계속 언급하고 있다. 이 원장이 말한 상법 개정은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까지 넓히자는 것으로, 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경영 행위에 법적 책임을 지우겠다는 취지다. 재계는 이 원장이 주장한 방향대로 상법이 개정되면 불필요한 소송 부담과 경영상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소관 부처인 법무부도 “추상적이고 선언적 의미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고 반대하는데, 이 원장만 소신을 꺾지 않는다.

두산그룹의 두산에너빌리티-두산밥캣 합병 무산도 이 원장의 발언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 원장은 두 회사의 합병 관련 증권신고서를 “지속적으로 정정 요구를 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이번 합병은 두산그룹이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지만, 적어도 법이 요구하는 합병 요건은 갖췄다. 그런데 이 원장은 절차적 당위성도 없이 자의적 판단으로 두산그룹의 사업 재편을 완력으로 무산시켰다.

추석 초입의 때늦은 폭염 만큼이나 이 원장의 발언으로 한국 경제가 뜨겁다. 소방수가 필요한데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취임 만 2년된 금감원장이 금융사에 이어 대기업 경영까지 관여하겠다는 발상은 우려스럽다. 금감원장은 금융인처럼 일해야 마땅한데 윤석헌 전 원장은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처럼 일했고, 이 원장은 범죄의 유무를 가리는 검사처럼 일한다. 금리는 시장에, 기업 경영은 기업인에게 맡기는 것이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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