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 이광희 문화 엿보기] 매국과 경쟁국에 기술을 팔아먹는 사람들

이광희 2024. 9. 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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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야 할 을사오적. 왼쪽부터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 박제순./더팩트 DB

[더팩트 | 이광희 기자] 1905년 10월 14일. 일본의 전권대사 이토 히로부미가 한성에 입성했다. 오전 7시쯤이었다. 그는 손택여관에 여장을 푼 뒤 15일 고종을 알현했다. 그가 가지고 온 것은 일본천황의 친서였다. 친서 내용은 이러했다.

'동양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대사를 특파한다. 대사의 지휘를 좇는 것이 옳다. 국제 방어는 일본이 공고히 하겠다. 황실의 안녕은 일본이 보증하겠다.'

결국 이토 히로부미의 뜻에 따라 움직이면 대한제국 황실의 안녕을 보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고종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언의 항변이었다.

이토는 일본으로 돌아가 보고하고 그달 18일 인천항에 다시 돌아왔다. 그는 서둘러 경성으로 올라와 19일 오후 3시, 일본 서기관과 대한제국 관리를 앞세워 고종을 다시 찾았다.

이 자리에서 이토는 5개 항을 요구했다. 먼저 대한제국의 외교부를 폐지하고 일본 동경에 외교국을 설치한다고 했다. 둘째는 국내외 교류권은 일본에 위탁한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겠다는 의미였다. 셋째는 경성에 주재한 일본 공사는 통감으로 개칭한다. 일본 공사가 조선을 통치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넷째는 한성과 각 개항장 등 일본이 필요한 땅에 일본 관리를 두고 일체의 행위를 집행하며 사무를 관장한다. 다섯째는 황실의 유지와 안녕, 존엄을 보증하겠다.

참으로 역겨운 요구였다. 자신들이 요구하는 사안을 들어주면 황실의 유지와 안녕을 보증하겠다고 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조약 승인을 요청했다. 이토는 다양한 방법으로 고종을 협박했다. 고종은 답답했다. 이 조약을 허락하면 나라가 망한다. 차라리 사직을 위해 죽으면 죽었지 결단코 허락하지 않겠다. 고종은 단호하게 잘랐다. 이토는 너덧 시간을 졸랐다. 그래도 고종은 들어주지 않았다.

당시 조정은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학부대신 이완용, 농부대신 권중현, 참정대신 한규설이었다.

이토는 집요하게 대한제국을 압박했다. 일본군을 이끌고 궁궐 담장을 포위하고 대포를 매설했다. 남산에는 포병들을 포진시켰다. 훈련이란 이름으로 그들이 시위를 벌이도록 했다. 허공에 포를 쐈다. 경성 천지가 진동했다. 장안이 흉흉했다. 이토는 대신들을 어전에 소집하고 조약서에 날인할 것을 종용했다.

총리 격인 참정대신 한규설은 크게 분개했다. 나라가 망할지언정 이 조약은 허락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고종도 끝내 날인하지 않았다.

고종은 이 사안이 외교부의 소관이니 대신에게 물어보라고 말했다.

당시 만평. / 나무위키

이 말이 떨어지자 외부대신 박제순은 외교부의 도장을 가지고 오게 한 뒤 날인했다. 뒤이어 이지용과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 등 대신들이 잇따라 도장을 찍었다.

1905년 10월 21일 새벽 2시였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것이다. 이토는 참정대신 한규설이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면직시켜 유배 보냈다.

당시 을사늑약에 도장을 찍은 이들을 우리는 '을사오적'이라고 부른다. 일본은 이를 근거로 1910년 대한제국을 일본에 합방했다. 결국 이들이 나라를 팔아먹었다. 물론 그 대가는 넉넉했다. 이들은 후손들이 먹고 남을 만큼 많은 재산을 축적했다. 대를 물려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이들을 '매국노'라고 부른다.

이들의 만행은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1907년 6월 9일 헤이그 밀사 사건을 알게 된 일본은 고종을 퇴위시켰다. 이 과정에서 이토 히로부미는 군대를 파견해 궁성을 포위하고 이완용을 앞세웠다.

이완용은 고종을 찾아 황제를 협박했다.

을사늑약 문서에 옥새를 추가로 찍을 것을 종용했다. 동시에 다른 사람을 뽑아 황위를 물릴 것을 주문했다. 일본에 건너가 일본 천황에게 사죄할 것을 요구했다.

고종은 모두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완용이 칼을 빼 들고 큰 소리로 말했다.

"폐하는 오늘날이 어떠한 세상인지 아십니까?"

고종은 슬픔을 머금은 채 말없이 못 들은 체했다. 속이 얼마나 속이 타들어 갔겠는가. 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자 대신이란 자가 칼을 빼 들고 호통을 쳤으니. 그 모욕감은 또 어떠했을까. 결국 고종이 양위를 전했다.

이렇게 해서 고종은 퇴위 됐다. 이 내용은 구한말 애국지사 황현이 쓴 '매천야록'에 담겨있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 당시 상황을 짐작해도 치가 떨린다.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의 소행이 이러했다.

결을 달리하는 이야기다. 최근에 나온 자료를 보면 한국의 고급 기술자들이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조선이나 자동차는 물론 디스플레이, 반도체, 이차전지, 정보통신 등 다양한 방면이다. 한 곳에서 20~30년 이상 기술을 축적한 기술자들이다. 이들 중에는 국가의 핵심기술을 보유한 이들도 있다. 이들이 중국으로 간다는 건 심각하다.

대체로 이들은 처우에 불만을 품고 그리 한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중국이 그들을 유혹하고 있다. "고등 기술을 썩히면 뭐 할 거냐" "고액의 연봉으로 대우하겠다" 이런 등등.

귀에 솔깃한 소리를 하며 필요한 인력을 빼가고 있다.

물론 이들이 중국에 가도 2~3년이다. 자신들이 필요한 기술을 빼먹고 나면 '팽'이다. 그럼에도 기술자들은 자신을 알아주는 나라가 있다는 착각 속에 건너가고 있다.

법으로 막을 수 있는 차원도 아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도리어 윤리와 도덕으로 제어되어야 한다. 스스로의 심성으로 자제해야 할 대목이다.

자신의 기술을 경쟁국에 팔아 개인의 안위를 기름지게 한다는 생각은 매국적 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다.

국가에 대한 감사함이 스며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권이나 특정 세력에 충성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자신을 키워주고 일깨워 주었으며 보살펴준 국가에 대한 소명 의식은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것 없이 개인의 잇속만을 좇아 사는 삶은 천박하다. 일제에 나라를 넘긴 오적들의 행동과 뭐가 다른가. 그들이 어찌 고매하고 존경스럽다 할 수 있는가.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은 무리라고 하지만 그래도 일말의 양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자신을 먹여주고 키워준 이 나라 대한민국에 대한 배신만큼은 삼가야 한다.

아울러 국가는 그들에게 나름의 대안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고부가가치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응당한 처우를 해야 한다. 그들이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들이 자신의 기술을 십분 발휘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노령화 사회로 가고 있다. 나이로 기술력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일할 의사가 있고 능력이 있으면 그들이 산업일선에서 일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우리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다. 그렇다고 부존자원이 많은 나라도 아니다. 오로지 기술력만으로 선진대열에 동참한 국가다. 가진 것이라고는 고부가가치의 기술밖에 없다. 그런데 그 기술을 경쟁 상대국에 팔아넘긴다는 건 참으로 무책임하고 저급하다. 나름의 논리야 있겠지만 호소력이 약하다.

혹 이런 이들이 적발되면 다시는 이 땅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기술을 팔아먹고 말년을 고향에서 보내고 싶다는 알량한 넋두리를 떠는 자들은 받아주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자신의 기술을 돈으로 산 그 국가에 뼈를 묻도록 퇴출해야 한다.

국가는 손에 잡히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지만 분명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를 보호하고 있다. 우리 모두의 공동체로 이룩되어 있다. 그것을 훼손하는 자는 반역이다. 그것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는 용서 못 할 일이다. 이 사회적 공동체를 어려움에 빠뜨리려는 자들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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