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 콤플렉스’에 빠진 한동훈… 6개월새 지지율 10%P 떨어져[허민의 정치카페]
정치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중도로 포장된 보수’ 이탈 추세… ‘중수청’ 지지율도 하락
‘無오류 확신하는 다변가’ 평가도… 슈퍼 엘리트주의 탈피 · 전통 지지층 레버리지 회복 시급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의 지지율 하락이 심상치 않다. 한국갤럽 기준으로 지난 6개월 동안 10%포인트나 빠졌다. 한 대표가 강조해온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층)’은 물론 보수층의 지지율도 휘청거린다.
장래 지도자를 희망하는 정치인들이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전통적 지지층 잡기다. 한 대표가 ‘이중개념주의자(bi-conceptualist)’라 불리는 중도에 집착해 전통적인 보수층을 집토끼 취급하면서 어설프게 ‘중수청’ 타령만 하다간 값비싼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낙하하는 지지율
미래를 꿈꾸는 정치인의 무기는 지지율이다. 특히 전통적 지지층을 레버리지로 당직과 공직에 도전하고 세력화를 도모한다. 한 대표는 현재까지는 집권여당의 부인할 수 없는 최강의 미래 정치 지도자다. 그런 한 대표가 가파른 지지율 하락을 경험하는 형국이다.
한국갤럽이 한 달에 한 번꼴로 실시하는 ‘장래 정치 지도자’ 지지율 조사에서 한 대표가 최고치를 찍은 건 22대 총선을 한 달여 앞둔 3월 1주 때의 24%였다(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런데 반년이 지난 9월 1주에는 지지율이 10%포인트나 떨어진 14%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3%에서 26%로 3%포인트 올랐다.
특히 전통적 보수층에서 한 대표의 지지율 저하 추이가 심상치 않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59%(3월 1주)→45%(7월 1주)→41%(9월 1주)로 급전직하했다. 6개월 만에 18%포인트나 낙하했다. 같은 기간 이 대표는 민주당 지지층에서 59%→55%→58%로 박스권 내 안정세를 보였다.
보수의 심장 TK에서의 한 대표 지지율은 같은 시기 30%→22%→26%였고, PK는 31%→25%→17%였다. 자신이 보수라고 응답한 층에서도 45%→34%→30%의 내리막 추세가 확인됐다. ‘중수청’에서 하락 경향 역시 분명했다. 중도층은 20%→12%→13%, 서울은 27%→17%→14%, 인천·경기는 23%→15%→12%, 30대는 13%→10%→8%의 추이가 관찰됐다.
한 대표에게 호의적 관심을 보여온 정치권 원로 A 씨는 최근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참신성을 가진 여당 내 한동훈의 존재 의미가 크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한동훈 체제가 일찍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력화에 진척이 없고, 의원들이 도와줄 생각을 별로 하지 않으며, 스스로 정치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데다, 도와줄 참모도 변변치 않기 때문이라고 그는 분석했다.
◇몇 개의 장면
정치 입문 9개월밖에 되지 않은 한동훈 대표의 지지율 하락은 윤석열 대통령이 2021년 정치 입문과 동시에 국민의힘을 빠르게 장악했던 것과 비교된다.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 정치 밑천은 높은 지지율이었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는 다른 ‘처지’를 드러낸 몇 개의 장면이 있다.
#1. 채 상병 특검법 발의 ‘미수(未遂)’. 그는 전당대회 기간 내내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 발의”를 부르짖었지만 지금까지 결행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 대표에게 특검법 발의를 요구했고, 한 대표는 “준비 중”이라는 말로 피해 갔다. 지난 9·1 여야대표회담에서 이 대표로부터 특검법 발의를 요구받은 한 대표의 답변은 “내 처지가 좀 그렇다”였다고 한다(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 일관성과 진실성, ‘integrity’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2. ‘자기 결정권’의 부재 확인. 존재감을 알리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던 여야대표회담은 사실상 성과 없이 끝났다. 발표된 합의문은 여야 대표의 성과로 보기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회담 과정에서 대통령실은 물론 당으로부터도 전적인 지원과 위임을 받지 못한 당 대표의 적나라한 실태가 드러났다. 여야 정치권에서는 “한 대표의 위상이 뭐냐”는 말이 나왔다. 본격적으로 ‘무기력하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3. 자신의 ‘무오류성’에 대한 확신. 그는 열광적 지지층 사이에서는 ‘갓동훈’ ‘한느님(한동훈+하느님)’으로 통한다. 여권 인사 B 씨는 “회의나 토론 등에서 한 대표는 경청(傾聽)이 아닌 다변(多辯)의 주인공”이라고 평했다. 한 대표의 자기 무오류성 확신은 슈퍼 엘리트주의, 혹은 나르시시즘과 통한다. ‘오만하다’는 인식이 여기서 싹튼다.
◇모범생 콤플렉스
엘리트주의는 콤플렉스와 닿아 있다. 기득권 상실에 대한 두려움, 이미지 훼손에 대한 공포감에 강하게 반응하는 콤플렉스다. 정치심리학이나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한 대표의 이런 의식을 ‘모범생 콤플렉스’라고 부른다.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하는 모범생 콤플렉스의 주인공은 손에 피를 묻힐까 하는 두려움, 공격당할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이며, 그 결과 현안 혹은 라이벌에 대한 정면승부나 ‘맞짱’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겁먹은 한동훈’이다.
겁먹은 한 대표의 특성은 ①대통령 앞에서는 직언하지 못하면서 국민에 고자질하고 ②정작 대야 투쟁에는 이슈의 민감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등으로 요약된다. 한 대표가 여야대표회담 석상에서 이 대표의 황당무계한 ‘윤석열 정부 계엄 음모론’ 공격에 항의조차 하지 못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좌우 정면승부 회피는 중도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도 연결돼 있다. 하지만 정치에서 중도(moderate)는 대부분 미결정(undecided)과 동의어다. 대개 중도란 ‘결정이 유예된 좌우’다. ‘프레임 이론’으로 유명한 조지 레이코프는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중도는 이중개념주의자들이며, 진정한 중도는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궁색한 ‘처지’를 언급했던 한 대표의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 발의’ 아이디어는 중도 외연 확장을 위한 프레임 타협 전략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중도로 포장된 보수’의 이반으로 귀결됐다.
아날로그 정치 시절인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때와는 다르게 디지털·AI 정치 시대의 지지층 시프트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국민의힘에 보수는 잡아놓은 물고기가 아니다. 압도적인 지지로 당 대표가 됐어도 지지율이란 언제든 창문만 열면 증발해버리는 수증기처럼 사라질 수 있다.
◇악순환의 시작
한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속에서 확인된 몇 개의 미숙한 장면이 지지층 시프트를 불러냈다. 지지율의 낙하가 정치 동력을 약화하고 이는 지지층 시프트를 가속화하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1970년대생 한 대표가 세력과 전략 없이 특유의 엘리트주의에 매몰돼 있는 한, 생사를 건 인정투쟁으로 입지를 구축한 1960년대생의 정치력을 따라가기는 힘들다.
전임기자·행정학 박사
■ 용어설명
‘이중개념주의자’는 미국의 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의 개념. 그는 정치에서 진정한 중도(파)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두 개의 세계관을 가진 유권자들이 상당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
‘엘리트주의’는 사회의 형성, 권력과 정책의 결정이 다원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 소수에 좌우되며, 그 소수가 권력을 쥐어야 한다는 주장. 규범적 엘리트주의는 선민사상과 통함.
■ 세줄 요약
낙하하는 지지율 : 한동훈이 가파른 지지율 하락을 경험 중. 한국갤럽 조사에서 6개월 동안 24%에서 14%로 10%포인트나 빠져.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층)’은 물론 전통적인 보수층의 지지율도 휘청거리는 상황.
모범생 콤플렉스 : 채 상병 특검법 발의 ‘미수’, 자기 결정권 부재 확인, 자신의 무오류성에 대한 확신 등 장면들이 지지율 낙하를 불러. 특히 무오류성 확신은 엘리트주의와 통하며 이는 모범생 콤플렉스와 닿아 있음.
악순환의 시작 : 현안과의 맞짱 회피 행태는 모범생 콤플렉스의 큰 특징. 대통령이나 이재명과의 만남에서 보여준 태도가 이를 설명. 한에게 시급한 과제는 무오류성의 확신에서 깨어나 지지층의 레버리지를 회복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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