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을 대통령으로 만든 ‘탈원전 수사’
1화 탈원전 수사
문재인 정권 후반기인 2020년 10월 시작된 ‘월성원전 1호기 불법 폐쇄 의혹’ 수사는 두 갈래로 진행됐다.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감사원 감사를 방해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없앴다는 ‘감사방해’ 수사와, 백운규 산업부 장관 등이 한국수력원자력에 원전 조기 폐쇄 압력을 행사했다는 ‘직권남용’ 수사였다. 감사방해 수사는 직권남용 수사의 물꼬를 텄다. 검찰이 증거인멸 프레임으로 산업부 공무원들이 중대한 불법을 저지른 것처럼 여론을 호도해 직권남용 수사를 밀어붙일 수 있었다. 하지만 2024년 5월 대법원은 감사방해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이 확정판결은 직권남용 사건 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직권남용 사건은 아직 1심이 진행 중이다. ‘탈원전’ 수사는 ‘조국 가족’ 수사와 함께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통령으로 만든 결정적 사건이었다.
형사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을 확률은 극히 낮다. 영화에 나오는 극적인 무죄판결을 실제 법정에서 볼 수 있는 확률은 1% 안팎이다. 나머지 99%는 검찰이 기소한 대로 유죄가 선고된다. 무죄를 바라는 것은 이런 희박한 확률을 뒤집는 기적을 바라는 것과 같다. 무죄판결을 받은 피고인들이 마치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기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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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 받은 공무원에서 ‘철창’ 신세로…결국 ‘무죄’
하지만 2024년 5월9일 대법원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문신학 전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원전산업정책관은 예외다. 그는 무죄 확정판결 뒤 기자들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일절 받지 않았다. 산업부 대변인 시절부터 친분을 쌓아온 기자들이다. 이뿐만 아니다. 직장 동료나 지인들에게도 별로 기뻐하는 내색을 하지 않는다.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는 동안 겪었던 억울함을 실컷 토로하고 싶을 법한데도 그는 침묵한다. 왜 그럴까. 무죄판결에도 맘껏 기뻐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걸까.
“검찰이 내 사건에 문 국장을 공범으로 엮어놨기 때문이다. 기소든, 불기소든, 어떤 처분이 내려져야 홀가분할 텐데 검찰이 그냥 뭉개고 있으니 답답하지 않겠나.” 문신학의 상관이었던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의 말이다. 그러니까 검찰이 문신학을 무죄판결 받은 사건 말고도 다른 사건에 공범으로 입건해 놓고 아무런 처분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를 공범으로 엮은 사건은 백운규를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한 사건이다.
검찰은 2021년 6월30일 백운규를 기소할 때 문신학은 뺐다. 보통 기소 대상에서 빠진 피의자는 불기소 처분을 해야 정상인데, 이 사건을 수사한 대전지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검찰이 피의자를 괴롭히는 수단 가운데 하나인 이른바 ‘미뤄 조지기’(사건 처리를 미뤄서 피의자를 괴롭힌다는 뜻)다. 이렇게 하면 피의자는 출국금지가 안 풀려서 출국도 마음대로 못 하고, 통화도 맘 놓고 못 한다. 언제 다시 수사가 재개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증거인멸’이나 ‘말맞추기’로 의심받을까 봐 사람 만나는 것도 꺼려진다. 일상생활에 엄청난 지장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문신학은 산업부에서 ‘에너지 전문가’로 통했다. 원자력뿐 아니라 석유, 가스 등 에너지 분야를 두루 거쳤다. 특히 문재인 정권에서 재생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만든 ‘에너지전환 국민소통 태스크포스(TF)’ 단장을 맡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공직자로서 최고 명예인 홍조근정훈장까지 받았다. 그렇게 잘나가던 공직자가 하루아침에 철창신세를 지게 되자 주변 사람들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그가 구속됐을 때 부인은 암투병 중이었다.
병원비에 변호사 비용까지 경제적 부담이 만만찮았다. 문신학은 대법 확정판결이 나오자마자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목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명예퇴직을 받아주지 않았다. 검찰에 입건된 다른 사건이 종결 처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산업부 직원들 악마화한 ‘죽을래 과장’도 조작 가능성
문신학은 백운규에 앞서 2020년 12월23일 감사원의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감사를 방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그가 부하 직원 2명(과장급과 서기관급)과 함께 원전 폐쇄 관련 자료를 파기해 감사원의 감사를 방해했다는 게 혐의 내용이었다. 검찰이 문신학과 직원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 보수언론들은 이들을 ‘간 큰 공무원’이라고 비아냥댔다.
대표적인 게 <조선일보>의 ‘죽을래 과장, 신내림 서기관, 오늘 구속 결정’(2020년 12월4일치)이라는 기사다. 여기서 ‘죽을래 과장’은 백운규한테서 “너, 죽을래?”라는 말을 들었다는 과장급 직원을 가리킨다. 그가 ‘월성 1호기를 한시적으로 가동할 필요성이 있다’라는 보고를 장관실에서 백운규에게 했다가 질책과 함께 이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나중에 백운규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당시 내 기억이 오염됐었던 것 같다”라고 진술했다. ‘죽을래’란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신내림 서기관’도 마찬가지다. 서기관급 직원이 감사관으로부터 자료 폐기를 지시한 ‘윗선’이 누구냐고 추궁당하자, “신이 내렸던 것 같다”라고 답변했다는 게 기사 내용이다. 하지만 이 직원이 정말 그런 말을 했는지는 감사원도 검찰도 확인해 주지 않았다. 감사나 수사 과정에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말일 가능성이 크다. ‘죽을래 과장’과 ‘신내림 서기관’은 그런 발언이 실제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말이었지만, 이들에게 나쁜 이미지를 씌우는 데 큰 효과를 발휘했다.
이는 검찰이나 감사원 같은 사정기관이 피의자를 ‘악마화’할 때 자주 쓰는 ‘언론플레이’다. 이에 호응해 보수언론들은 이들이 청와대라는 든든한 뒷배를 믿고 ‘배째라’는 식으로 감사에 저항했다고 몰아갔다. 당시 야당인 국민의힘은 “원전 1호기 조기 폐쇄의 문제점을 정권 차원에서 은폐하려 한 시도”라며 문재인 정권까지 싸잡아 공격했다.
감사원, 공용 시스템 찾아보지도 않고 ‘자료 폐기’로 몰아
‘감사방해’ 수사는 백운규를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한 ‘직권남용’ 수사의 물꼬를 튼 수사였다. 검찰은 증거인멸 프레임으로 월성원전 1호기 폐쇄 작업에 관여한 공무원들이 마치 엄청난 비리를 저지른 것처럼 여론을 호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3년 5개월 동안 재판을 받은 뒤 내려진 최종 결론은 무죄였다(1심은 일부 유죄, 2심과 3심은 전부 무죄). 대법원은 문신학 등이 감사를 방해하지 않았다고 최종 판결했다. 이들이 폐기했다는 원전 폐쇄 관련 자료들은 모두 산업부 공용 디스크와 문서관리시스템에 저장돼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해당 업무를 취급하는 직원들의 개인용 컴퓨터(PC)에도 보관돼 있었다. 이 자료들을 감사원이 다 확보해 감사를 끝냈으니 감사방해라고 볼 수 없다는 게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다.
감사원은 재판에서 ‘산업부 공무원들이 자료를 폐기하는 바람에 초기에 자료를 확보하지 못해 감사 기간이 길어졌다’고 주장했다. 감사관들을 헛수고하게 했으니, 감사방해가 맞지 않느냐는 항변이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에게 처분 권한이 있는 자료를 삭제했을 뿐”이라고 이를 일축했다. 삭제된 자료가 감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는 개별적인 보관자료에 불과하다는 취지다.
감사관들이 처음부터 산업부 공용 디스크 등을 열람했다면 해당 자료를 손쉽게 확보했을 텐데, 엉뚱하게 피고인들이 사용했던 피시에서만 찾으려다 시간을 낭비했다고 본 것이다. 판결문의 행간에는 감사원이 잘못해 놓고 왜 남 탓을 하느냐고 꾸짖는 듯한 뉘앙스가 풍긴다.
대통령 국정 과제 수행한 ‘죄’로 공무원 기소한 검찰
‘탈원전’ 수사는 산업부 공무원들을 포함한 세종시 관가에 큰 충격을 줬다. 문신학과 직원들은 대통령 공약인 국정과제를 성실하게 수행했을 뿐이다. 그 국정과제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의 원전·석탄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선진국들은 저만치 앞서갔다. ‘RE100’(기업이 사용하는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것)이라는 글로벌 캠페인이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한편으론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됐다. 유럽을 중심으로 ‘탈원전’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설계수명이 끝난 노후 원전의 안전성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공직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이처럼 제 몫을 다한 공무원들에게 검찰이 형사책임을 묻겠다고 나선 것이다.
문신학 등은 무죄가 확정됐음에도 정신적·물리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이들을 재판에 넘기는 데 관여한 이들은 승승장구했다. 감사 당시 감사원장이었던 최재형은 윤석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재임 중 사표를 낸 뒤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그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고, 2022년 3월9일 대선과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종로구)에서 당선돼 국회의원 배지도 달았다.
감사 실무를 지휘했던 유병호는 윤석열 정권 출범 후 감사원 사무총장으로 발탁돼 실세로 군림하다 감사위원으로 영전했다. 그는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비롯해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무분별한 감사로 ‘보복 감사’ 논란에 휩싸였다(그는 ‘전현희 표적감사’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다).
법원 무죄 판결에도, 수사한 검사들은 승승장구
검찰 수사 당시 대전지검장이었던 이두봉은 대전고검장으로 승진한 뒤 윤석열 정권의 첫 검찰총장 후보에 올랐다. 주임 검사였던 이상현은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장을 거쳐 경주지청장으로 영전했다. 변호사 개업 후 ‘전관예우’를 받을 수 있는 경력을 쌓은 것이다. 지금은 둘 다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무엇보다 이 수사의 최대 수혜자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다. ‘살권수’(살아있는 권력 수사)로 포장한 이 수사로 보수언론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묵묵히 자기 몫을 다한 공직자들을 희생양 삼은 대가였다.
이춘재의 ‘검찰 수사의 재구성’은?
‘검찰’하면 떠오르는 말은 ‘법치주의’입니다. ‘법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는 법치주의는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입니다. 검찰에 막강한 권한을 준 이유도 법치주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검찰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합니다. 대통령 명예훼손 수사를 한답시고 정권에 비판적인 기자들을 탄압합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핵심 정책(공약)에 사법적 잣대를 마구 휘두르기도 합니다. 검찰개혁을 추진했던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보복 수사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반면,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부부를 비롯한 제 식구는 철저하게 감쌉니다. 법치를 가장한 ‘가짜 법치주의’입니다. 이런 검찰 수사에는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주권자인 국민의 시각에서 수상한 검찰 수사를 톺아보겠습니다.
이춘재 논설위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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