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년의 인연… 미국 最古박물관서 다시 열리는 ‘한국’
1799년 설립 225년 된 박물관
1884년 조선인 최초 美 유학생
유길준에 받은 관복·편지 전시
내년 재개관 통해 80점 더 공개
백남준·정연두 작품 등도 선봬
“한국인의 꿈과 열망 보여줄 것”
“박물관 현장에서 K-컬처에 대한 방문객들의 열기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묶여있는 조선이 아니라 살아있는 한국을 보여주고 싶어요.”2024 한국국제교류재단(KF) 문화예술 분야 유력인사 초청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을 찾은 린다 로스코 하티건 피보디에식스(Peabody Essex) 박물관장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지난 3일 진행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한국실 새 단장의 필요성에 대해 이처럼 말했다. 하티건 관장은 2003년 피보디에식스 박물관 한국실을 최초로 준비해 공개한 큐레이터 출신인 만큼 한국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에 위치한 피보디에식스 박물관은 1799년 설립돼 미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무역상들이 각자 수집한 외국의 물건을 전시하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설립됐다. 특히 2대 박물관장이었던 에드워드 실베스터 모스가 한국 문화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 미국 박물관으로서는 가장 먼저 한국의 유물을 구입해 컬렉션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보디에식스 박물관 한국실에는 ‘유길준 한국미술과 문화 갤러리’(유길준 갤러리)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하티건 관장은 “아시아 태평양 유물을 다수 소장한 박물관으로서 일본관과 중국관도 운영하고 있지만 인물의 이름을 따서 특별관을 기획한 것은 한국관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한국과의 인연이 특별하다는 뜻이다.
조선 말기의 개화사상가인 유길준(1856∼1914)은 1881년 신사유람단에 참가해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대학에서 공부하며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 됐다. 당시 일본에 방문했던 모스 관장과 교류하며 인연을 맺었다. 임오군란의 영향으로 일본에서의 유학을 중단하고 귀국한 유길준은 1883년 최초의 서양사절단인 보빙사에 참가해 다시 한 번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모스 관장을 찾아가 개인지도를 받으며 1884년에는 교육과정에 등록해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 됐다.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유길준은 학업을 또 다시 중단하고 귀국을 결정했다. 그는 미국을 떠나며 자신이 직접 착용했던 관복을 포함해 많은 개인 소장품을 피보디에식스 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때 기증한 소장품들은 현재도 유길준이 유학생활과 자신의 고민을 적어 모스 관장에게 보낸 편지와 함께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으로 보관 중이다. 모스는 대한제국 외교 고문이었던 파울 묄렌도르프, 외교관 구스타부스 고워드로부터 수집품을 대거 구입하며 확장을 거듭했다. 특히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출품됐던 8점의 한국 악기는 전 세계 어느 한국실을 방문해도 찾아보기 힘든 유물이다.
피보디에식스 박물관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며 더욱 확장, 심화되고 있다. 이날 간담회 자리에서 하티건 관장은 새로운 소식을 들려주었다. “한국실을 마련하고 처음으로 더 넓은 공간에 새롭게 단장한 유길준 갤러리를 준비하고 있어요.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소장품들을 80점 정도 꺼내 보여드릴 생각입니다.” 박물관은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의 도움으로 한국실만 전담하는 김지연 큐레이터를 채용해 유길준 갤러리 재개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한국에 대한 이해가 높은 한국계 최고개발책임자 수 킴(김수옥)도 합류했다. 최근에는 백남준(1932∼2006)의 2001년 작 멀티미디어 작품을 구입하기도 했으며 어느새 약 2000점의 한국유물을 소장하게 됐다. 이 작품도 내년 5월 260㎡(약 79평)의 더 넓은 공간에서 진행될 재개관 전시를 통해 공개 예정이다.
이뿐만 아니라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 작가의 미공개 초기 작품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실 개관 당시에도 미국에서 활동하는 진 신 등 한국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던 하티건 관장은 박물관이 자체 재원을 마련해 준비 중인 이번 재개관 전시에도 특별한 기획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김지연 큐레이터는 정연두, 양숙현 현대미술 작가와의 협업을 시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특히 정연두 작가와는 유길준이 남긴 편지를 소재 삼아 작업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티건 관장과 수 킴 최고개발책임자, 김지연 큐레이터는 간담회를 마치며 한목소리로 포부를 내보였다. “한국실 개편은 당연한 일입니다. 방문객의 취향을 반영하기 위해서라도요. 개화기를 거치며 시작된 한국인들의 꿈과 열망이 조선이라는 역사 속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전시를 기획할게요.”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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