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면서 병원 안 가는 '고집불통'…그에게 돌아온 뜻밖의 대답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9. 1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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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갑한 오피스] "'고집불통' 병원 보내기" (글 : 권남표 노무사)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병원에 가라고 해도 한 번을 안 가고 버티는 가족이 있다. 집마다 한둘쯤 있는 이 '고집불통'은 "병원 가면 돈만 들지", "병원 가서 아프면 일 못하지", "병원 가면..." 입으로는 아프다면서 핑계도 많다. 아픈 구석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허리가 쑤신다며, 두통이 심하다며, 어느 날은 눈이 침침하다고 어지럽다는 말도 한다. 그러다 고열에 시달릴 때도 있고, 무릎이 시큰하다면서 "비가 오려나"라고. 애꿎은 날씨 탓을 한다.

산업재해 상담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프다면서 병원에 안 간다는 분들은 속이 답답해진다. 해고, 임금 체불, 괴롭힘, 산업재해, 노동조합 활동 등등 노동을 하며 겪는 상담에 다양한 질문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조언을 청하는데, 무엇 하나 속이 터지지 않는 일이 없다. 매일 휴게시간에 뭣 모르고 1시간씩 일하고서 생각해 보니 억울해서 임금 체불 아니냐며 오는 대형 병원 약사, 회사에서 채용한다고 2024년 8월 1일부터 출근하자고 해서 푹 쉬고 있었더니 갑자기 채용 취소됐다고 억울해하며 찾아오는 30대 초반의 청년(채용 내정이라고 해서 부당한 해고일 수 있다), 의욕적으로 하는 일마다 능력 없으니 하지 말라고 딴지를 거는 사장 탓에 이젠 기가 죽어 우울증에 걸리겠다고 하는 작은 회사의 직원, 노동조합이 체결한 단체협약을 사장이 안 지켜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묻는 노동조합의 위원장, 그런데 그중에서도 단연 속 답답한 일은 아파서 찾아오는 분들이다.

'수근관증후군, 적응장애, 요추간판탈출증, 난청, 유산·사산(조산 포함) 진단받았어요'라며 찾아온다. 병원 다녀오셨냐, 지금 몸은 괜찮으시냐고 물으면 생각과 다른 응답이 돌아오는 때가 있다. 한 번은 입주간병인 60대 여성 A 씨가 찾아왔다. 간병을 받는 어르신은 나이가 많았지만 스스로 거동도 잘하셨는데 사고는 불시에 찾아왔다.

어르신의 몸이 유독 안 좋았던 맑은 날 거동을 돕던 A 씨는 어르신을 부축해 휠체어에 앉혔다. 그리고 허리에서 "툭" 소리가 났다. A 씨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고, 겨우겨우 움직여 병원에 갔더니 요추 압박 골절이란 진단을 받았다. 60대는 노인도 아니라지만, 나이가 들면 골다공증 유병률이 급증한다. 돌봄이 필요한 90대 어르신을 돌보던 간병인은 돌봄을 받아야 하는 어르신이 됐다. 상담소에는 A 씨의 남편이 A 씨를 부축해 힘을 내라고 응원하는 모습이었는데, 문득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입원 며칠 하랬다면서 왜 입원 안 하셨어요? 엄청 아프시잖아요." A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산재 된다고 하면 입원하려고요. 병원비도 나오고 월급도 준다면서요. 의사한테 안 아픈 척하고 나왔어요" 놀라서 사고는 언제 났냐고 물어보니 5일 전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직 산재 신청도 하지 않았던 거다. 한국의 산업재해보험은 신청주의를 택하고 있다(노동 선진국이 택하는 직권주의가 아니라). 재해자의 신청이 있어야 산재 인정을 위한 절차가 개시된다. 그리고 신청하려면 진단서와 난해하게 생긴 신청 서류를 작성해서 사업장 주소지를 관할하는 근로복지공단에 접수하는 복잡함도 있다. 5일이나 산업재해 신청을 안 하고 아픈데도 입원을 참는 모습에서 마치 고집불통 가족이 떠올라 속이 어지러워졌다.


요즘에는 산업재해 신청이 비교적 쉽다. 과거와 달리 근로복지공단이 지정한 산재 지정 의료기관에는 산업재해 신청을 대신해 준다. A 씨와 같은 사고로 인한 질환은 신속하고, 수월하게 인정받는 편이다. 근로복지공단이 2024년 5월 15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고 재해 처리 소요 기간은 평균 17.5일(2024년 3월 기준)이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신청일로부터 7일 안에 지급 여부를 결정하라는 규정보다 긴 기간이 소요되지만, 질병은 평균 235.9일 걸린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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