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이긴다"는 싸움 속에 피해 커지고…대통령과 전공의, 다시 만날 때 아닐까 [스프]

조동찬 의학전문기자 2024. 9. 1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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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조동찬]
 

건강한 삶을 위한, 믿을 수 있는 의학 정보! '주간 조동찬'에서 전해드립니다.
 

민간 대학병원에서 발길 돌린 군의관들

최근 A 대학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 B 군병원에서 파견 온 C 군의관이 도착했다. 그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취득한 후 입대해 대위로 군 복무 중이었는데 군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A 대학병원은 성인 응급실 당직 스케줄이 허물어진 터라, 군의관에게 성인 응급실 당직을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 해당 대학병원은 전문 진료과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갓 의대를 졸업한 후 입대한 C 군의관은 응급의학과가 아닌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지만, 그래도 전문의를 응급실에 투입하는 게 낫다고 병원은 판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C 군의관은 권역응급의료센터, 그러니까 다른 병원에서 중증이라고 확인된 성인 환자가 전원오는 이곳에서, 자신이 근무하는 것은 자신이 진료가 가능한 범위 밖이라고 판단했다. C 군의관은 부대에 보고했고, 해당 부대는 복귀를 명령했다. 수많은 언론이 병원에 파견된 군의관들이 응급실 근무를 거부했다고 보도했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보건복지부는 국방부와 징계를 협의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 답변이 논란이 되자 복지부는 이후 "잘못된 서면 답변이었다"고 정정했다. 하지만, 군 관계자는 "군인 신분인 군의관이 부대에 보고 없이 명령을 스스로 어겼다면 징계 사유가 되지만, 이번 사안은 그렇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 파견된 군의관 (이 글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이후 B 군병원은 대신 외과 전문의인 D 군의관을 A 대학병원에 다시 파견했다. 이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9월 5일, 광주광역시 조선대 교정에 쓰러져 있던 심정지 대학생이 100m 앞에 있는 조선대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했다. 이유는 당시 외과 교수가 응급의학과 교수를 대신해서 응급실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과적 수술에만 특화된 외과 전문의에게 어떤 질환 때문에 심정지가 온 건지 알 수 없는 상태의 젊은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결국, 외과 전문의인 D 군의관도 부대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A 대학병원은 B 군병원에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파견해달라고 다시 요청했다.

"저희 군병원도 24시간 비상진료체계를 책임지고 있는데, 저희도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부족합니다. 저희 군의관을 파견하면 저희의 응급실 당직 체계가 깨지거든요."

군병원도 민간병원과 다르지 않다.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24시간 마음을 졸이며 사는 걸 운명으로 달게 받아들이는 진료 과목인 응급의학과, 여기 의사들은 부족했다. 이건 의료대란 이후에 생긴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20년 전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시작된 일이다. 2년 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뇌 수술을 받기 위해 다른 병원으로 옮겨간 사건에서도 드러난 바 있지만, 이런 문제를, 자칫 의사 수 부족 때문이라고 단순화하는 것은 위험한 접근이다.

우리나라 신경외과 의사는 인구 10만 명당 4.75명으로, OECD 국가 중 2위다. OECD 평균 1.3명의 3배가 넘지만, 뇌 수술을 하는 의사는 턱없이 부족하다. 신경외과 전문의 10명 중 9명은 척추 수술을 하기 때문인데, 척추 수술 의사의 삶도 힘겹지만, 뇌 수술 의사만큼 삶의 질을 포기하진 않아도 된다.
 

원망과 미움

기자 일을 하면서 죽비로 맞은 것처럼 고마운 말을 들을 때가 있다. 누구나 아는 유명한 분과 우연히 딱 한 번 자리를 같이했는데, 그분이 주신 말씀을 여전히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조 기자가 쓴 기사를 보면 가끔 원망과 미움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어떤 사안에 몰입해 취재하다 보면 당연히 그럴 때가 있겠지만, 원망과 미움은 합리적인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어요. 파급력이 큰 기사를 쓸 때 특히 주의하세요. 조 기자 마음속에 원망과 미움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을."


여섯 달 전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병원과 학교를 떠났다. 내게도 충격이었다. 경찰은 누군가의 입김 때문이라고 생각해, 박단 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해 '빅5 병원' 전공의 대표들을 참고인으로 소환조사하고 있다. '그들의 병원 이탈'은 전체적이며, 자발적인 분위기에서 비롯된 일로 봐야 할 것이다. 특별히 나쁜 놈만 골라서 의대를 보내는 게 아니라면, 그들의 목소리를 우리는 세세하게 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그들을 '생명을 볼모로 불법 행동을 하는 나쁜 사람들'인 것처럼 규정했다. 그들은 정부의 압박에 두려웠을 것이고, 자신들을 향한 일부 국민들의 비판에 답답했을 것이며, 그것이 지속되면서 원망과 미움이 '촘촘하고 두텁게' 쌓였을 것이다.

여섯 달 전,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의대 증원 2,000명'을 전격 발표했다. 역시 충격이었다. 조 장관은 얼마 전 국회에서 의대 증원의 규모와 시기는 "내가 결정한 것이며, 윤석열 대통령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 없이 국가의 필요에 따라 과학적인 추계에 근거한 보건복지부의 정책적 결단이었다는 뜻이다. 의료계는 '증원 발표'를 총선용이라고 비판했고, 위급한 시기엔 복지부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한 뒤 복귀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부는 전공의와 처벌, 사직 등을 놓고 갈등을 이어왔다. 15년 동안 보건복지부를 출입한 터라 제법 많은 관계자들과 '오프 더 레코드' 대화가 가능하다. 전공의들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관계자들의 말도 많이 들었다. 급진적 의대 증원을 반대한다고 말했던 한 복지부 관계자도 마찬가지였다.

신경외과, 소아과 등 배후 진료 의사가 부족하고, 이제는 응급실을 지키는 당직 의사도 부족해 국민은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고 있지만,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의정 갈등의 실타래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고 미워함'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리라.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조동찬 의학전문기자 dongchar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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