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기연구원, 이차전지용 ‘친환경 고성능 바인드’ 제조 성공

임현균·강동준 박사팀, 실록산 활용…KIST 등 공동연구
바인더, 활물질·도전재가 금속판에 잘 붙게 돕는 역할

[창원=뉴시스] 실록산을 활용해 폴리비닐리덴 플로라이드(PVDF)를 대체할 수 있는 배터리 양극용 바인더를 개발한 한국전기연구원 강동준(앞줄 왼쪽), 임현균(앞줄 오른쪽) 박사와 연구팀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한국전기연구원 제공) 2024.09.09. photo@newsis.com

[창원=뉴시스]홍정명 기자 = 한국전기연구원(KERI)은 절연재료연구센터 임현균·강동준 박사팀이 KIST 유정근 박사, 성균관대 김종순 교수 연구팀과 공동연구를 통해 이차전지 분야 '숨은 주역' 바인더의 성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이면서 친환경 소재까지 사용하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10일 밝혔다.

이차전지의 성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전극은 전기를 발생시키는 '활물질'과 전기 흐름을 돕는 '도전재', 그리고 '바인더'를 용매와 함께 섞어 제조된다.

여기서 바인더는 활물질과 도전재가 금속판(집전체)에 잘 붙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전극을 물리적으로 안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바인더는 전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아 그동안 연구가 더디었지만, 고용량·고성능 전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며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리튬이차전지용 양극(+) 바인더 소재로는 불소계 고분자 물질인 '폴리비닐리덴 플로라이드(PVDF)'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PVDF는 일본이나 유럽의 일부 글로벌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활용 과정에서 전지의 안정성 저하 등 기능적 문제도 제기되어 왔다.

특히, PVDF는 매우 강력한 탄소(C)-불소(F) 결합으로 구성되어 자연적으로는 거의가 분해되지 않아 '좀비 화합물'로 불린다.

분해가 어렵다 보니 주변 환경에 긴 시간 잔류할뿐만 아니라 연소시킬 때 상당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환경유해성 이슈로 인해 유럽연합(EU)에서는 PVDF를 사용규제 대상으로 논의하고 있어, PVDF를 능가하는 바인더 소재 개발이 매우 시급한 상황이다.

[창원=뉴시스] 한국전기연구원 연구진이 실록산을 활용해 PVDF 대체용으로 개발한 배터리 양극용 바인더.(사진=한국전기연구원 제공) 2024.09.09. photo@newsis.com

이 문제를 해결한 KERI 연구팀의 성과는 양극용 바인더에 '실록산(siloxane)'을 적용한 것이다.

실록산은 실리콘과 산소의 화합물로, 전기적 특성이 우수하고 화학적으로도 안정적이다.

임현균·강동준 박사팀은 수년 동안의 나노복합기술 연구를 통해 유·무기 소재의 장점을 모두 가지는 '하이브리드형 실록산 수지 제조 기술'을 확보했고, 이를 양극용 바인더에 적용할 수 있는 분자구조 설계 및 합성 제어 기술까지 개발을 완료했다.

여기서 '유·무기 소재'란 화학구조에서 탄소 원자가 없으면 무기 소재, 있으면 유기 소재다.

무기 소재는 견고하고 내구성이 강해 항공기 부품이나 건축 자재 등에 사용된다.

유기 소재는 탄소 원자가 수많은 결합을 거쳐 복잡한 분자를 형성하므로 저항성, 탄성 등 다양한 물성을 갖는다. 이러한 특성으로 유기 소재는 가전제품, 의류 등에 널리 사용된다.

연구팀은 해당 기술이 적용된 완전지(Full cell) 제작을 통해 여러 검증도 거쳤다.

그 결과, KERI 기술이 PVDF가 적용된 기존 바인더보다 1.4배 이상 높은 수명 안정성을 가지는 등 우수성을 확인했다.

[창원=뉴시스] 한국전기연구원(KERI) 임현균(오른쪽) 박사가 실록산을 활용해 PVDF 대체용 배터리 양극용 바인더를 만들고 있다.(사진=한국전기연구원 제공) 2024.09.09. photo@newsis.com

PVDF는 물리·화학적 안정성을 가지고 있고 접착성이 좋지만, 최근 전지의 고용량화·고성능화가 진행되며 스웰링(swelling) 현상 발생, 내부 물질 간 부반응 등 여러 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KERI의 기술은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는 성능을 확보했다.

가장 큰 장점은 불소를 포함하지 않아 친환경적이고 인체에도 무해하다는 것이다.

PVDF 사용을 제한하려는 EU의 환경규제를 피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양극 바인더의 해외의존도 감소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KERI 임현균 박사는 "우리나라 배터리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양극 바인더는 국내에 전문 기술 및 기업이 없어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실록산을 활용한 우리의 친환경 바인더 기술이 기존 PVDF를 대체하고, 전기차 등 고용량 전지를 필요로 하는 제품의 안전성과 수명을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우수성을 인정받아 소재 분야 세계적 학술지 'Advanced Functional Materials'에 최근 표지 논문으로 게재됐다. 학술지 영향력을 평가하는 JCR Impact Factor는 18.5로, 해당 분야 상위 5%에 속한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성과가 이차전지 산업계의 많은 관심을 받을 것이라 보고, 수요업체를 발굴해 기술이전을 추진할 계획이.

또한, 개발한 기술을 건식 양극 바인더 소재 분야에 적용할 예정이며, 리튬이차전지 이외 아연전지나 소듐전지 등 다양한 분야에 확장하여 기술이 활용될 수 있도록 지속해서 연구할 계획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hjm@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