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만원→1.3만원…'하얀석유'의 추락, 전기차 살린다
리튬 가격이 전기차 시대의 대명사 격인 테슬라가 첫 보급형 모델을 공개한 8년 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리튬은 그동안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 '하얀석유'로 통한 배터리 핵심 광물이지만 전기차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정체)이 시작되자 가치가 순식간에 추락한다. 리튬 가격이 올라야 돈을 버는 배터리 밸류체인도 실적 둔화에 허덕인다. 하지만, 이젠 리튬 가격이 앞으로 더 내려가야 캐즘이 걷혀 역설적으로 밸류체인 전반이 되살아난다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한다.
10일 한국자원정보서비스(KOMIS)에 따르면 탄산리튬(전기차 배터리 원료인 리튬 정제물) 가격은 지난 5일 기준 kg당 70.5위안(약 1만3000원)을 기록했다.
현재 가격은 리튬이 kg당 1만3000원에서 1만8800원 사이에 거래되던 2015~2016년 수준이다. 테슬라가 첫 보급형 전기차 '모델3'를 공개했고 현대차는 회사 최초 양산형 전기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내놓는 등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이제 막 전기차 시대로 진입하던 때였다. 리튬 가격은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이 지금의 16분의 1 정도에 불과하던 당시로 회귀한 셈이다.
8년 전으로의 도돌이표지만 가격 하락은 최근 순식간에 진행됐다. 리튬 가격의 사상 최고점은 2022년 11월의 kg당 581.5위안(약 11만원)이었다. 불과 1년 9개월 사이 가격은 고점대비 90% 폭락했다. 갑자기 찾아온 캐즘이 가격 폭락의 주범이다. 전체 잠재 수요의 16%에 해당하는 얼리어답터(초기 소비자)의 구매가 끝나자 전기차 판매 증가세가 눈에 띄게 둔화됐고 자연스레 리튬 수요도 줄었다. 캐즘을 예측 못한 전 세계 주요 광산 업체들은 공급을 경쟁적으로 늘려 가격 폭락을 부채질했다.
업계에선 리튬 가격의 이 같은 폭락을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토로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리튬 가격 폭락이 시작되기 직전인 2022년 "리튬 가격이 미친 수준까지 올랐는데, 리튬이 부족한게 아니라 채굴 속도가 너무 느리기 때문"이라며 리튬 공급이 늘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내 A 배터리사 임원은 "수요 정체가 발생할 것으론 예상했지만, 지금처럼 빠르고 급격하게 진행될진 예측 못했다"며 "때문에 설비 투자와 공급 확대에 보다 주력했고 이는 리튬 채굴업체도 마찬가지 였다"고 말했다.
리튬 가격이 폭락하자 배터리 밸류체인 기업 전반의 실적도 꺾인다. 리튬은 배터리 핵심소재인 양극재 원가의 40%를 차지한다. 양극재는 배터리 원가의 40%고, 배터리는 전기차 원가의 40%다. 리튬 가격 폭락이 밸류체인 전반에 타격을 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더해 니켈, 코발트 등 배터리를 구성하는 다른 주요 광물의 가격까지 하락하며 밸류체인 실적을 끌어내린다.
출구가 없는 듯한 리튬 추락의 소용돌이로 보이지만, 업계에선 이제부터는 오히려 리튬 가격이 더 떨어져야 밸류체인 전반이 되살아난다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와 관련, 업계는 골드만삭스의 전기차 배터리 가격 하락 전망 보고서에 주목한다. 골드만삭스는 리튬 가격의 지속적 하락 탓에 지난해 kWh당 151달러였던 배터리 가격도 올해 115달러를 거쳐 내년이면 91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는 그동안 배터리 가격이 kWh당 100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가격이 같아지는 '프라이스 패리티'(Price parity)가 도래해 캐즘이 걷히고 본격적 전기차 대중화 시대가 열릴 것으로 봤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제부터는 리튬 등 배터리 원자재 가격의 하락이 전기차 캐즘 기간을 단축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며 "배터리 가격이 떨어지고 전기차 가격도 낮아지는 효과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정준 기자 7up@mt.co.kr 최경민 기자 brown@mt.co.kr 박미리 기자 mil0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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