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737이 매일 추락한다”…미-중 관계 또 다른 뇌관 ‘펜타닐’
“미국인을 독살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고 있다.”
지난해 10월3일 메릭 갈런드 미국 법무장관이 브리핑 자리에 섰다. 펜타닐 등 제조 혐의를 받는 중국 기업 8곳과 회사 직원 12명을 기소한다는 사실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그는 “미국인의 죽음으로 귀결되는 글로벌 펜타닐 공급망은 종종 중국 화학기업에서 시작된다”며 중국을 공개 저격했다. 이날 미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도 중국 기반 12개 업체와 개인 13명 등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으며, 이날 이후로도 미-중 펜타닐 갈등은 1년 가까이 지속 중이다. 미국은 지난해 9월에는 중국을 멕시코, 콜롬비아 같은 ‘주요 마약 생산국 및 경유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미국 내 펜타닐 중독을 둘러싼 미-중 갈등은 미-중 관계의 숨은 뇌관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미 의회, “중국 공산당이 배후다”
“만석인 보잉 737 비행기가 매일 추락하는 것과 같다.”
마약은 미국의 오랜 골칫거리지만 펜타닐은 급이 다르다. 만들기 쉽고 값이 싼데, 치명적이다. 헤로인보다 약 50배, 모르핀보다 약 100배 강력해 소량만 복용해도 사망할 수 있다.
미 하원 미-중 전략경쟁 특별위원회가 지난 4월 발표한 ‘펜타닐 위기에서 중국 공산당의 역할’ 보고서는 펜타닐 위기를 “미국이 이제껏 맞닥뜨린 위기 중 가장 끔찍한 위기 중 하나”로 정의하면서 하루 평균 200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이 위기의 원인으로 ‘중국 공산당’을 꼽았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중국 공산당이 불법 펜타닐 제조 및 수출 산업을 세금 환급 등을 통해 직접 지원하고 있다면서 “마약 밀매와 연루된 중국 기업 여러 곳을 중국 공산당이 소유하고 있다. 미국 법 집행기관의 협조 요청이 오면 마약 밀매업자에게 귀띔해주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당국이 인터넷에서 국내 마약 판매 관련 콘텐츠만 검열한다고도 꼬집었다. “중국 인터넷은 철저히 감시되고 통제된다. 그런데도 펜타닐의 전구체(펜타닐로 변환되기 전 단계의 화학물질)의 공개적인 판매가 허용돼 있다. 전자상거래 사이트 7개만 검토했는데도 마약 밀매와 명백히 관련된 불법 화학물질을 중국 기업이 판매 중인 사례가 3만1천건 이상 발견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 공산당이 마약 밀매로 전략적,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다. 펜타닐로 중국의 화학산업은 부유해졌고, 미국인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다”며 “모든 비군사적 국가 권력을 집중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중국 탓, 중국은 미국 탓
‘중국이 펜타닐로 미국을 공격하고 있다’는 미국. ‘미국이 국내 의약품 관리에 실패한 것이 원인’이라는 중국. 각자의 시각은 절반씩의 진실을 담고 있다.
합성 오피오이드(아편성 진통제)는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 퍼졌다. 옥시코돈과 하이드로코돈이 대표적이다. 특히 퍼듀 제약사가 옥시코돈을 안전하고 효과적인 장기 통증 관리책으로 적극 홍보하면서 대중적으로 처방되기 시작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 과정에서 제 역할을 못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합성 오피오이드 의존과 남용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자 미 식품의약국은 2010년께부터 처방 지침을 강화했다. 처방약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암시장이 등장했고, 이 시장을 장악한 게 합성 오피오이드 중 저렴하고 효능이 강력한 중국산 펜타닐이었다.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중국산 펜타닐이 국제우편, 밀수입 등을 통해 미국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관련 지표는 2014년부터 최악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미국 법 집행 기관이 압수한 약물 중 펜타닐이 검출된 제품의 건수는 2013년 1015건에서 2014년 5343건으로 426% 늘었다. 펜타닐 등 합성 오피오이드 관련 사망자는 2013년 3105명에서 2014년 5544명으로 79% 늘었다. 2010~2014년 인구 100명당 펜타닐 처방률이 1.6% 안팎으로 큰 변동이 없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었다. 합법적으로 처방된 양은 비슷한데, 시장엔 펜타닐이 급증했다는 뜻이다.
미국은 중국을 출처로 지목하고 줄기차게 단속을 요구했다. 중국은 2019년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2019년부터 당시 펜타닐의 모든 변종을 통제 물질 목록에 추가했다. 미국 마약단속국(DEA)은 2020년 보고서에서 “2019년 이후 중국에서 미국으로 직접 공급되는 펜타닐 양이 상당히 감소했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의 조처가 효과를 냈다는 뜻이다.
미국외교협회가 지난달 8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12월 기준 중국에서 펜타닐 생산 허가를 받은 제약회사는 5개뿐이다. 이들 회사가 생산할 수 있는 펜타닐은 의료용 주사제와 패치뿐이다. 게다가 이들 다섯 업체의 제품은 모두 미 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지 않았다. 미국 시장에 펜타닐 제품을 수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완제품 막히자 원재료 밀수
문제는 ‘완제품’만 막는다고 펜타닐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펜타닐은 합성 마약이다. 펜타닐의 재료인 전구체를 조합해 펜타닐을 합성해낼 수 있다. 전구체는 그 자체로 약물이 아니고, 합법적 용도로도 쓰이는 물질들이다. 펜타닐보다는 규제가 느슨하다. 화학공장에서 얼마든지 생산이 가능하다. 미국외교협회 자료를 보면, 2022년 말 현재 전구체를 생산하는 소규모 화학회사가 중국에 최소 16만개가 있다.
펜타닐로 전용될 가능성이 큰 특정 전구체는 규제를 받지만 합성법은 늘 규제를 한발 앞서간다. 주요 펜타닐 전구체를 계속해서 제재 목록에 추가하고 있지만 마약상들은 제재받지 않은 물질로 변종 펜타닐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제재 전구체 목록을 무한정 늘리기도 어렵다. 일부 전구체는 다양한 산업적, 상업적 용도로도 사용된다. 화학산업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중국 입장에서 광범위한 제재는 합법적인 산업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할 수 있다. 중국 화학산업은 2011년부터 매출 기준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 이러는 사이 미국 법 집행 기관이 압수한 알약 중 펜타닐이 검출된 알약 수는 2023년 1억1556만2603정(알)을 찍었다. 2014년보다 2만배 이상 수치다.
‘협력’의 무기화
펜타닐 합성에 이용되는 전구체를 무한정 제재하기 어렵다는 현실론과 별개로 중국이 미-중 관계에서 마약 퇴치를 위한 ‘협력’을 지렛대로 활용하는 측면은 분명 존재한다. 이른바 ‘협력의 무기화’다.
중국은 2022년 8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하자 이를 문제 삼으며 미국과 진행 중인 여러 분야의 협력을 중단했다. 미국과 맺은 마약 단속 협력도 이때 중단됐다. 중단된 단속 협력은 지난해 1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고서야 풀렸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올해 2월 낸 보고서에서 “미국이 중국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중국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할 때, 중국은 펜타닐 관련 단속을 느슨하게 해 미국 내 펜타닐 유통을 증가시키는 경우가 있다”며 중국이 마약 단속 협력을 무기화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비영리 연구소인 랜드연구소도 지난달 “마약 딜러, 다른 범죄자들, 그리고 반체제 인사들에 대해 가차 없이 처벌해온 전체주의 정부가 자국에서 유출되는 마약 흐름을 막는 데에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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