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2차병원 응급실도 의사 1명에 대기환자 30명… "추석연휴, 1만명은 진료 못 받을 것"

송주용 2024. 9. 10.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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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과부하, 2차 병원까지 확산 추세
전공의 이탈로 의사 근무조 5명→1명
입원환자만 10명, 구급차는 40분째 대기
강원·충북서도 전원 요청 "80%는 거절해야"
4일 오후, 24시간 동안 '나 홀로 응급실 당직'을 서고 있는 이형민 일산백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가 환자 검사 사진을 보고 있다. 송주용 기자

"저 혼자 24시간 응급실 당직을 서야 하는데 벌써 대기환자만 30명이 넘었네요. 119 구급차가 환자를 못 내려서 계속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4일 오후 3시, 응급실 접수환자 목록을 살펴보던 이형민 일산백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이날 오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나 홀로' 응급실 당직을 서고 있었다. 이 교수는 "평소 의료진 5명이 하던 응급실 진료를 혼자서 감당하고 있다"며 "전국 대부분 응급실 상황이 비슷하다"고 토로했다.

경기 고양시에 있는 일산백병원은 2차 종합병원으로 응급의료센터에 14개 일반병상을 보유하고 있다. 기자는 이날 오후 이 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의료진 동의하에 환자 진료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응급실 위기' 상황을 취재했다. 취재하는 동안 허리를 다쳐 찾아온 환자가 2시간 넘게 대기하는 등 응급실은 포화 조짐이 보였다. 전공의 집단 이탈, 전문의 번아웃으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이 중증 위주로 환자를 가려받고 그마저 감당하지 못해 일부 병원이 부분 운영 중단에 들어가면서 그 여파가 2차 종합병원 응급실로 번지는 형국이다.


의사는 1명, 대기환자는 30명

4일 오후 일산백병원 응급실 앞에서 40분 넘게 대기 중인 119구급차. 송주용 기자

일산백병원은 평상시 120~130명의 응급환자를 받았지만, 최근에는 하루 80여 명 수준으로 줄었다고 한다. 환자를 받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그럴 수가 없다는 것. 이날은 중증환자 3명, 경증환자 4명, 격리환자 3명이 동시에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고, 30명 이상의 환자가 진료를 받으려 대기 중이었다. 이 교수는 "의사 1명당 한 번에 감당할 수 있는 응급환자는 경증은 5명, 중증은 2명, 심폐소생술 환자는 2시간 동안 1명이라는 가이드라인이 있다"며 "대부분 응급실이 이 기준을 넘어선 채로 환자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과부하 상태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불리는 응급실 미수용으로 이어진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이 병원 응급실에는 하루 평균 50~60통의 전원 요청이 쇄도한다. 이날 들어온 전원 요청을 살펴보니 경기남부권은 물론 강원과 충북에서도 연락이 왔다. 환자 증상도 대동맥박리 같은 초응급 질환에서 심장시술, 응급외과수술을 필요로 하는 중환자까지 다양했다. 잠시 짬이 난 이 교수와 짧은 대화를 하는 동안에도 전원 요청 전화를 받은 간호사가 "지금 이쪽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다른 병원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안내했다. 이 교수는 "전원 요청이 많게는 하루 100건까지 오지만 10~20%밖에 받아주질 못하는 상황"이라며 "나머지 80%의 환자는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전공의 공백 사태가 길어지면서 응급실 의료진 자체가 감소했다. 평소 전공의 및 인턴 4명과 팀을 이뤄 일했던 이 교수도 지금은 혼자서 업무를 감당하고 있다. 응급처치를 마친 환자를 맡아줄 배후진료 역량도 약화했다. 내과, 소아과, 외과 등 필수과목의 진료 여력은 응급실의 환자 수용도와 직결된다. 일산백병원은 8일부터 응급 산과수술이 불가능해졌다.

병원 응급실 앞에는 119 구급차가 싣고 온 환자를 40분 넘게 내리지 못한 채 대기 중이었다. 이 교수는 "119 구급차가 응급실에 묶여 있으니 다른 환자 이송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추석 연휴, 1만 명 진료 못 볼 수도"

8일 서울 시내 한 응급의료센터에 진료 지연 안내문이 게시돼있다. 뉴시스

응급실 방문 환자가 늘어나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이 교수는 "전국에서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하루 평균 2만 명인데 연휴가 되면 3만 명까지 늘어난다"며 "현재 응급실 상황을 보면 늘어난 환자 1만 명은 물리적으로 응급실 진료를 못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석 연휴 응급실 대란 방지를 위해 내놓은 당직 병원·의원 7,931개(추석 당일 1,785개) 지정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큰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반 병의원은 응급환자를 돌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환자들이 응급실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군의관 250명 투입 대책에는 응급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군의관의 역할은 제한적일 거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정부는 응급실 대란 우려는 과장됐다는 입장이지만 문을 열어둔 응급실도 정상 진료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정확한 현실 파악에 기초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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