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발빼는 유럽, 가스 발전소 짓고 항공세도 폐지
스웨덴 정부는 2025년 7월부터 ‘항공세’를 폐지한다고 지난 3일 밝혔다. 항공세란 스웨덴 공항에서 출발하는 10석 이상의 모든 상업용 여객 운송 항공편에 대한 세금으로, 기후 변화에 대응하자는 취지에서 탄소 다배출 기업인 항공사에 2018년부터 부과해왔다. 그러나 이 세금은 그간 “스웨덴 공항과 자국 항공사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IATA(국제항공운송협회)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뒤 세계 항공업계가 회복세에 접어들었지만, 스웨덴 공항의 노선 수 회복이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스웨덴 정부가 기존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조치가 스웨덴 항공에 대한 투자를 가능하게 하고 스웨덴을 더 경쟁력 있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탈원전에 이어 온실가스 ‘순배출량(이산화탄소 배출량에서 제거량을 뺀 것)을 0′ 등을 내세워 탄소중립을 가장 앞장서 주창해 온 유럽이 슬그머니 탈원전은 물론 탄소중립 정책에서 뒤로 물러나고 있다. 달성 목표치를 내리거나, 기존 규제를 풀거나, 다시 화석연료 사용을 늘리는 식이다. 최근 AI(인공지능)·데이터센터 급증 등에 따라 전력 수요가 늘어난 것이 핵심 원인으로 분석된다.
◇탄소중립 강력 추진하던 유럽이 바뀌었다
유럽은 적어도 2050년엔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며 여러 중간 목표를 세워 이행해왔다. 유럽연합(EU)이 2025년 7월 배기 가스 규제 기준을 강화하는 ‘유로7′을 도입하기로 했고, SAF(친환경 원료로 만든 항공유) 사용을 2025년부터 의무화하는 ‘리퓨얼EU’ 법안도 발효됐다. 영국도 2030년 경유·휘발유 신차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밝혔었고, 스웨덴에서 2045년 ‘탄소중립’ 달성을 법제화하는 등 여러 국가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촘촘하게 정해놨다. 그러면서 국제사회에 이런 움직임을 ‘강요’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지금 유럽은’ 2050년 탄소중립’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세워둔 여러 중간 목표도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침공 전후로 ‘에너지 대란’을 겪은 뒤 에너지 안보 중요성을 크게 자각했고, 수소 발전, CCUS(탄소 포집·저장·활용) 등 탄소 저감 기술 개발과 상업화는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수입은 많아지는데 경제 불황이 길어지고, 에너지 가격 변동성은 커졌다. 유럽은 부랴부랴 ‘탈(脫)탈원전’을 통해 에너지 확보에 나섰지만, 대형 원전을 짓는 데는 최소 10년 가까이 걸리는 데다 그마저도 계획대로 진행되기가 난망한 게 현실이다.
◇슬그머니 목표치 낮추고, 화석연료로 ‘유턴’
이에 유럽에선 최근 자신들이 강력 추진했던 탄소중립에서 ‘슬그머니’ 후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먼저 화석연료로 돌아가고 있다. 독일 정부는 12.5GW(기가와트) 규모 가스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은 화석연료인 가스 발전량을 줄여 2045년 가스 난방을 전면 금지하고,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했었는데, 전력 수요가 늘고, 천연가스 수입량이 늘면 ‘제2의 에너지 대란’이 일어날 우려도 있어 자국에 가스 발전소를 짓는 것이다. 영국도 지난 3월 총리가 직접 “에너지 안보를 위해 가스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고 밝혔고, 오스트리아·네덜란드 등은 겨울철 에너지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석탄 발전소를 일시적으로 재가동하거나, 석탄 사용 제한을 해제해 화석연료 사용을 늘릴 수 있는 길을 열어 놨다.
목표치를 낮추기도 한다. 유럽은 지난 3월 배출 가스 관련 규제인 ‘유로7′의 규제 수준을 완화했다. 초안은 디젤차의 질소산화물 배출을 2025년까지 기존보다 20mg/km로 줄이는 것을 의무화했었는데, 회원국들의 거센 규제에 부딪혀 목표치를 내렸다. 영국은 경유·휘발유 신차 판매 금지 시기를 5년 미뤘고, 프랑스도 올해 환경 규제에 반발하는 농민 시위가 벌어지면서 일부 규제를 완화했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애당초 유럽이 ‘탄소중립’을 외친 것 자체가 제조업이 약한 자신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란 경제적인 이점을 노린 측면도 있었다”며 “아직도 말로는 탄소중립을 외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에너지 수급에 문제가 생기고 있어 목표 달성이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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