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도 해리스도 “팁 면세”… 종업원 ‘한표’가 승부처
[5] ‘팁 근로자’ 집결한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는 팁 위에 지어진 도시예요.”
‘신 시티(sin city·죄악의 도시)’라 불리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한 호텔 식당에서 지난 7일 만난 종업원 소피아 로드리게스씨는 “운 좋은 날엔 팁 수입이 일당의 두 배도 된다”며 “이곳은 나처럼 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도시”라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받은 계산서에는 음식 값 38달러 외에도 팁 선택지가 따로 제공됐다. 가장 낮은 18%를 선택했는데도 내야 할 돈은 순식간에 44.84달러(약 6만원)로 올라갔다. 전국레스토랑연합에 따르면 미국 요식업 종사자는 전체 노동 인구의 10% 정도다. 네바다에서는 요식업 일자리 비율이 이보다 높은 전체의 15%를 차지한다.
이곳 서비스 종사자의 일당은 200달러(약 27만원)가 채 안 되지만 업종에 따라 팁은 하루 수백 달러도 벌 수 있다. 카지노 딜러 데이브 오웬스씨는 “도박으로 일확천금한 고객이 딜러들에게 수천 달러씩 팁을 뿌리기도 한다”며 “야간 근무로 건강이 나빠지지만 여기처럼 인종, 나이, 학력에 상관없이 집을 사고 ‘중산층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곳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한 지난 4년간 경제난으로 크게 바뀌었다. 인플레이션으로 물가, 기름 값, 집세 중 어느 하나 전국 최고 수준으로 오르지 않은 것이 없다. 코로나 이전에 음식 값의 15% 정도였던 팁 하한선이 18%로 상향되는 ‘팁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식당을 찾는 대신 테이크아웃(포장)을 하는 소비자도 늘었다. 가게들은 앞다퉈 종업원을 줄였고 네바다의 실업률은 미국에서 둘째로 높은 5.4%로 치솟았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생계난에 내몰린 팁 근로자들의 성난 민심을 잡는 후보가 경합주 네바다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네바다는 민심을 가장 예민하게 나타내는 곳으로 꼽힌다. 네바다가 선택한 대선 후보는 1900년대 이후 90%에 가까운 확률로 당선됐다. 선거인단이 6명으로 적은 편에 속하는데도 대선 후보들마다 네바다를 집중 공략하는 이유다.
이번 대선에선 양당 후보 모두 네바다 공략의 키를 팁에서 찾았다.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6월 라스베이거스를 찾아 팁에 대한 연방 세금을 없애는 ‘노 택스 온 팁스(No tax on tips)’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역시 지난달 라스베이거스에서 “팁에 세금을 매기지 않겠다”며 사실상 똑같은 공약을 들고나왔다. 극좌파라는 비판을 의식해 ‘큰 정부’를 지향하는 민주당의 기조와 거리를 두고 ‘우클릭’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네바다 최대의 정치 세력으로 꼽히는 요식업 노조는 트럼프의 팁 공약이 공허하다고 지적한 반면 해리스의 정책엔 지지 의사를 내비쳤다. 배서니 칸 노조 대변인은 본지 통화에서 “팁에 세금을 면제하는 것도 좋지만 궁극적으로 법적 최저임금 자체를 올리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했다. 그는 “트럼프는 팁 얘기만 하지만 해리스는 최저임금 인상까지 고려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네바다에는 서비스를 소비하고 팁을 주는 중산층·부유층도 팁 근로자 못지않게 많다. 이들의 강력한 ‘트럼프 지지’ 목소리가 네바다를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퍼플 스테이트’로 만들고 있다. 뉴욕타임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말 이후 네바다에서 해리스·트럼프 지지율은 각각 48%로 동일하다.
이날 라스베이거스 시내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대형 인공 호수 ‘레이크 미드’에는 이른 아침부터 성조기와 트럼프 지지 깃발을 내세운 ‘보트 부대’가 줄지어 나타났다. 사업가 톰 애스버리씨는 “4년 전에도 트럼프 지지를 위해 보트 퍼레이드를 했고, 이번에도 이렇게 목소리를 내러 왔다”고 말했다. 플래밍 라슨씨도 “라스베이거스에서 12년째 살고 있지만 대출 이자가 널뛰어 사업을 하거나 집을 사는 게 이토록 어려워진 건 처음”이라며 “이는 민주당의 잘못”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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