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몰 쇼핑하고 CGV서 영화… “여긴 베트남입니다”
지난달 29일 오후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 쇼핑몰. 한글로 ‘요리하다 키친’이라고 쓰인 지하 1층 롯데마트 푸드 코트에는 한국식 치킨과 피자, 초밥을 사먹는 현지 쇼핑객들로 꽉 차 빈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작년 9월 문을 연 이 쇼핑몰은 현재 베트남의 모든 백화점과 쇼핑센터 중 매출 1위다. 개장 9개월 만에 매출 2000억원을 돌파했다.
베트남에선 요즘 CGV에서 영화를 보고,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고, 집 앞 GS25 편의점에 들르는 베트남인의 생활이 낯설지 않게 됐다. 1990년대 삼성·LG 등이 공장을 짓고 현지 근로자를 채용하며 시작된 한국 기업의 베트남 공략이 ‘생산기지’에서 ‘소비 시장’으로 진화한 것이다. 평균 연령 32.5세의 젊은 베트남 국민이 한국 소비재에 큰 호감을 가지게 된 게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생산 전초기지에서 주요 소비 시장으로
베트남 현지에서 분야별 1~2위에 오른 한국 기업은 계속 늘고 있다. CJ CGV와 롯데시네마는 한국식 ‘멀티플렉스’(상영관이 여럿인 대형 영화관)를 베트남에 적극 이식하며 현지 영화관 수 1, 2위다. CJ CGV가 83곳, 롯데시네마가 45곳이다. CGV 관계자는 “베트남 전체 영화 관람객의 절반 정도는 CGV를 이용한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패스트푸드에선 롯데리아가 지난달 말 기준 총 252점포를 운영하면서 KFC·파파이스 같은 글로벌 프랜차이즈를 제치고 1위에 올라 있다. 편의점 분야에서도 GS25가 상반기 기준 점포 수 289곳으로 미국의 서클K에 이어 2위다.
중소기업이 베트남 현지에 진출해 두각을 나타낸 사례도 있다. 침구류 전문 기업 ‘에버피아’는 1998년부터 베트남에서 이불, 베개 등을 생산하며 현재 공장 3곳과 350여 매장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매출은 약 450억원. 이재은 대표는 “과거보다 현지 경쟁 업체가 많아졌지만, 여전히 베트남 침구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한국 소비재나 유통 기업이 베트남에서 약진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기업은 과거 인건비가 저렴하고 노동력이 풍부한 베트남을 주요 생산 기지로 활용했다. 삼성전자는 1995년 호찌민 TV 공장을 시작으로, 지난해 말까지 총 114억달러(약 15조원)를 투자해 총 6만명을 고용하고 있다. 통 큰 투자를 하는 한국 기업의 이미지가 음악·드라마 등 한류(韓流) 인기와 결합해 베트남 현지 소비자에게 호감을 더했다. 한국 기업과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믿고 살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곳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현지에서 사업을 하는 한 기업인은 “베트남은 전 세계에서 한국 이미지가 가장 좋은 곳 중 하나”라고 했다.
◇프리미엄 이미지로 베트남 청년층 공략
내수 시장에서 성장의 한계를 체감한 국내 기업은 2010년대부터는 베트남의 성장 잠재력에 주목하며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베트남 인구는 2023년 기준 1억31만명에 달하고, 소득수준도 빠르게 늘고 있다. 베트남 통계총국에 따르면, 베트남의 1인당 월평균 소득은 2018년 159.8달러(약 21만원)에서 2023년 204.7달러(약 27만원)로 5년 만에 28% 증가했다.
국내 기업들은 중·고급 브랜드와 화려한 매장을 내세워 베트남 젊은 소비자를 공략하며 시장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는 전체 매장 233곳 중 40%를 그동안 하노이에 없던 브랜드로 채웠다. 현지 소비자의 구매력을 감안한 코치 같은 명품 브랜드와 샤넬 뷰티·랑콤 등 고급 화장품도 입점했다. 김준영 롯데 해외사업부문 법인장은 “앞으로 루이비통 등 핵심 명품도 입점시킬 계획”이라고 했다.
극장, 편의점 등도 고급화 전략이 먹혔다는 평가다. 베트남 GS25 매장은 국내보다 넓어 식당·카페·휴게 공간 기능도 한다. CGV·롯데시네마도 현지에서 보기 어려웠던 아이맥스 같은 특별 상영관에 힘을 쏟고 있다. 코트라 하노이 무역관 관계자는 “베트남 젊은 소비자들은 가처분소득은 낮아도 해외 브랜드를 좋아하고, 과시성 소비를 하는 경향이 있다”며 “한국 기업들이 프리미엄 이미지를 내세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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