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가 세운 기업, 작년 466곳… 5년 전보다 2배 늘었다

김민기 기자 2024. 9. 10.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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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서 쌓은 기술로 창업 열기
헬스케어 스타트업 '티로흐' 대표인 예성준(왼쪽에서 셋째)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와 직원들. /티로흐

스타트업 ‘티로흐’는 암(癌) 방사선 치료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업체다. 암세포 파괴를 위해 외부 방사선이 몸속으로 들어갈 때, 암세포 주변 피부색이 변하거나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 부작용이 있다. 티로흐는 방사선이 들어가는 최적의 경로를 인공지능(AI)으로 찾아 정상 조직의 방사선 피폭을 줄이고, 방사선도 80% 수준만 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한다. 47억5000만원 규모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원 사업에 연구 기관으로도 참여 중이다.

올해 초 티로흐를 창업한 이는 예성준(59) 서울대 교수다. 원자핵공학 전문가인 예 교수는 2000년부터 미국에서 교수로 일하다 2006년 입국해 서울대 의대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서 연구를 이어 갔다. 20년 동안 방사선의학물리 분야에서 숱한 논문들을 냈으며, 이 분야 국내 석학으로 꼽힌다. 그간 창업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주변 교수들의 창업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예 교수는 “실험실 연구가 아니라, 일반인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연구의 정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하경

◇“김 교수는 창업 안 해요?”

교수들이 학계에서 쌓은 기술로 기업을 설립하는 ‘교수 창업’ 열기가 뜨겁다. 국내에서 2000년대 들어 IT 붐과 함께 교수 창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최근 2~3년 사이에 그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2018년 239개였던 전국 교수 창업 기업 수는 지난해 466곳으로 거의 배로 늘었다.

최근 창업이 활발한 건 AI와 바이오 등 최첨단 기술이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면서, 교수들이 가진 전문 지식과 기술이 산업적으로 더 유용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기술을 깊게 파고드는 ‘딥테크(deep tech) 기업’에 대한 수요와 맞물려 10~20년 동안 각 분야를 연구한 교수들의 원천 기술은 차세대 ‘먹거리’로 평가받고 있다. 목승환 서울대 과학기술지주 대표는 “교수들이 연구 목적으로 쌓은 지식들이 실생활에 쓰일 가능성이 2010년대에 비해 최근 크게 늘었다”고 했다.

교수 사이에서 창업에 대한 심리적 허들이 낮아진 측면도 있다. 창업을 준비 중인 한 교수는 “동료 교수 중에 창업하는 사람이 늘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실제 주변에서 ‘왜 그런 좋은 기술을 묵히느냐’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교수 창업 기업 중 성공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오준호 카이스트 교수가 창업한 로봇 전문 스타트업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삼성전자 등의 투자를 받으며 2021년 코스닥에 상장됐다. 데이터센터에 특화된 데이터 처리 가속기(DPU)를 만들기 위해 서울대 김장우 교수가 창업한 ‘망고부스트’는 창업 2년 만에 86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문과 교수, AI 배워 창업

창업이 이공계 교수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창업을 염두에 둔 문과 교수들이 ‘늦깎이 AI 대학원생’이 되기도 한다. 개인의 역량·적성 등을 연구해 온 오헌석(58)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안식년이던 2022년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인공지능 석사 과정에 등록했다. 그렇게 올해 초 창업한 기업이 ‘앱티마이저’다. 학생을 대상으로 적성에 맞는 전공을 찾아주는 서비스를 한다. 오 교수가 그간 연구 자료로 추린 문항은 4500여 개에 이르지만, 이를 모두 개인에게 질문하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오 교수는 답변자의 반응을 바탕으로 다음 질문을 AI로 자동 제시하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설문 시간을 20분 안팎으로 줄였다.

교수 창업은 연구 과정에서 축적한 데이터가 많고, 상대적으로 인재 채용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교수들은 학교 연구실의 장비와 대학원생을 활용해 수준 높은 연구를 할 수 있다”며 “석박사 과정 제자와 함께 창업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교수 창업 열기가 활발한 만큼, 초기 단계에서 제도 정립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수들이 기업 경영까지 하면서 본업인 학생 교육에 소홀할 수 있고, 연구 과정에서 획득한 기술에 대한 소유권 등도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현재 서울대·카이스트 등은 학교 시설을 이용해 개발한 기술로 창업한 경우, 교수와 학교가 일정 비율로 나누게 돼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학교도 이름을 알리고 재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만큼 교수 창업을 환영하는 입장”이라며 “다만 교수가 기업 운영에만 몰두할 수 있어, 가이드 라인을 만드는 작업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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