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숲] 구태여 태극기가 아니더라도
참여 겨우 522명… 전 국민 0.001%가 대표성 있나
구심점 간절하겠지만… 광장의 정체성이 무엇일까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바실리 성당을 배경으로 외국인 여학생이 셀피를 찍는다. 손에 흰 종이가 들렸고, 거기 ‘THE’라고 적혔다. 그렇다. 여기가 바로 러시아의 ‘그곳’이다.
이반 뇌제가 바실리 성당을 세우고 그 앞에서 법령을 선포한 16세기 이래 붉은 광장은 러시아제국, 사회주의 소연방제국, 포스트 소비에트 제국이 민중과 만나는 역사 현장 1번지였다. 기념일 열병식, 지도자 장례식 같은 국가 행사도, 각종 대규모 집회, 시위, 대중 퍼포먼스도 거기서 열린다. 한겨울이면 거대한 스케이트장이 되기도 한다. 애초 시장터에서 출발한 자발적 민중 집결지이자 동시에 제국주의 국가 정체성의 공식 전시장이다. 두 얼굴을 가졌다.
그런데 붉은 광장은 나라의 상징적 아이콘일 뿐, 공식 국가상징물은 따로 있다. 크렘린궁 지붕 위의 삼색 국기, 스파스카야 종탑 위의 붉은 별, 그리고 2차 세계대전 희생 용사의 ‘꺼지지 않는 불꽃’을 말한다. 이태준은 1946년 소련 기행문에서 ‘모스크바의 모든 길은 붉은 광장에 통한다’고 썼다. 북한의 공식 사절단 일원으로 2개월간 소련을 ‘황홀하게’ 둘러본 그가 가장 감격스럽게 묘사하는 곳이 붉은 광장인데, 그의 황홀은 혁명의 상징인 붉은 별과 붉은 깃발에 꽂혀 있었다.
소련의 붉은 별과 붉은 기는 북한 국가상징물의 모태다. 모란봉에 건립한 해방탑 꼭대기에 붉은 오각별이 달리고, 대동강 근처 중심 대로는 ‘스탈린 거리’로 명명되었다. 그러나 스탈린이 죽고 김일성 체제가 확립되면서 소련의 자취는 지워져야만 했다. “망각이 국가를 창조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요소”라는 E. 르낭의 역설적 명제를 주체사상의 역사만큼 잘 보여주는 예는 없다. ‘스탈린 거리’는 ‘승리 거리’로 개명되고, 붉은 광장을 본떠 만든 대동강변 광장은 ‘김일성 광장’이라 이름 붙여졌으며, 강 건너 맞은편에는 붉은 별 대신 붉은 횃불을 얹은 170미터 높이의 주체사상탑이 세워졌다. 미국 내셔널 몰의 워싱턴 기념탑보다 1미터 더 높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이 초대형 주체탑도 모스크바의 오스탄키노 탑(540미터)과는 상대가 안 된다. 소련이 10월 혁명을 기념하며 미국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보다 높게 세웠다는 탑이다. ‘가장 높이, 가장 크게!’ 이것이 전체주의 이념의 표준 슬로건이다. 우월감과 자긍심의 개념 같지만, 열등감과 호전성의 발로인지 모른다. 최상급은 과시와 강박의 언어여서 폭력적이면서도 유치하게 느껴진다.
최근 광화문 광장의 초대형 태극기 설치안이 등장했을 때 엄습해온 불편한 기시감은 이런 일련의 상징물에 대한 기억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붉은 광장, 북한의 김일성 광장은 일례에 불과하고, 원래 모든 공간의 이념화는 억압적이며 아름답지 않다. 자유와 평화를 구현한다지만, 그 발상 자체가 자유롭지도, 평화롭지도 않다. 개발경제시대와 군사정권 시대의 문화기획이 바로 그랬다. 그때 만든 대형 기념물들의 기본 틀은 전체주의 선전 양식과 하나도 다를 바 없었다. 길을 걷다가도 일정 시각에 애국가가 나오면 멈춰 서 있어야 했던 시절이다. 왠지 그 기억의 장으로 되돌려지는 듯한 느낌은 나 자신의 이념, 애국심, 태극기 사랑과는 전혀 무관한 문제다.
100미터짜리 빛기둥 국기 게양대 설치안이 논란에 부딪히자 서울시는 한 달간의 시민 의견수렴 절차를 거쳤다. 서울시 홈페이지에 의견을 낸 522명 가운데 59%는 찬성(그중 거의 대부분 태극기 게양 찬성), 40%는 반대였다. 이런 결과에 따라 국가상징공간을 2025년 가을까지 조성하는 것으로 확정했다. 그런데 의견을 낸 522명은 5000만 국민의 단 0.001%. 이 세 자리 소수점 숫자에 “시민들의 제안과 아이디어” 청취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다. 행정 주체의 선의와 고충도 충분히 이해되지만, 국가상징물 설치가 왜 필요한가, 무엇을 상징으로 삼을 것인가는 보다 긴 숙고와 합의를 요구하는 질문이다. ‘상징’ 자체가 통합의 메시지이며, 광장은 모든 시민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공간의 정신(genius loci)’을 숭앙했다. 광화문 광장은 2009년 조성되었으나, 그곳의 정신은 ‘육조거리’ 이전부터 어리어왔다. 지금은 고성과 독설이 오가는 그곳에서 시민들이 또 유유자적 책도 읽고, 아이들과 물놀이도 하고, 벼룩시장도 연다. 분열 속의 무관심, 질서 속의 무질서라는 기괴한 조화가 오늘 이 광장, 이 사회의 정체성이다. 그 현장에 어떤 구심점이 간절할 수는 있겠다. 다만 하루아침의 유형물이 그 역할을 해낼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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