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큘라와 옥중 사과 편지 [서아람의 변호사 외전]

2024. 9. 9.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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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갈 방조 혐의 구속된 유튜버
피해자에 구구절절한 자필 편지
원치 않는 일방적 사과는 강압
제3자 낀 용서 있어서는 안 돼

“그 드라큘라 유튜버 있잖아.”

변호사 친구들끼리 대화를 하다가 툭 튀어나온 한마디에, 모두가 어리둥절했습니다. 웬 드라큘라? 알고 보니 친구가 말하고 싶었던 건 ‘카라큘라’였습니다. 유명 먹방 유튜버인 ‘쯔양’을 구제역과 전국진이라는 사이버 레커, 그러니까 유명인들의 추문이나 확인되지도 않은 가짜 뉴스를 퍼뜨려 유튜브 조회수를 올리는 것으로 먹고사는 개인 방송인들이 과거를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하여 몇천만원씩 갈취해 갔고, 쯔양 측이 구제역, 전국진 등을 공갈로 고소하면서 이 사건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습니다. 구제역과 전국진이 구속당한 이후, 드라큘라 아닌 ‘카라큘라’라는 유튜버도 수사 물망에 올랐는데요. 카라큘라는 쯔양에게 직접 연락하거나 쯔양을 직접 협박한 적이 없어 처음에 고소 대상에서는 제외되었지만, 수사 과정에서 나온 녹취록에서 구제역과 전국진이 자신들의 금품 갈취 계획에 대해 카라큘라의 의견을 듣는 부분이 있어, 이후 카라큘라 또한 공갈 ‘방조’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즉, 공갈을 주도한 것은 아니지만, 공갈범이 공갈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범행 전이나 후에 이를 도와주었다는 혐의인 것입니다.

서아람 변호사
바로 그 카라큘라가 피해자 쯔양에게 보낸 다섯 장짜리 자필 편지가 언론에 공개되었는데요. 카라큘라는 문제의 편지에서 자신을 소개하고, 공갈 방조 혐의가 너무 억울하다고 토로하면서, 쯔양의 가슴 아픈 사연과 고통의 시간에는 위로를 전한다는 말을 적었다고 합니다. 과연 그 말이 피해자에게 위로가 되었을까요? 글쎄요, 몇 년간 주변 사람들로부터 언어적, 신체적 폭력과 성폭력을 당하고 경제적으로 착취당했던 피해자로서는 공갈범이나 방조범이나 거기서 거기고 죄다 이름조차 듣기 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감옥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범죄 피해자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는 건지, 법원에서 피해자의 주소를 가해자에게 공개해주는 건지, 혹시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는데도 일방적으로 편지를 보냈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마음대로 형량을 깎아버리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하는 댓글들이 기사에 달렸습니다.

재소자의 편지라고 하면, ‘더 글로리’ 드라마가 떠오릅니다. 그 드라마에서는, 잔혹한 살인범에게 아버지를 잃은 남자 주인공이 해마다 그 살인범에게 편지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살인범은 표면적으로는 용서를 비는 척하면서 끔찍한 살인의 디테일을 늘어놓아 남자 주인공을 절망과 분노에 미치도록 만들고, 심지어 남자 주인공이 이사 가거나 직장을 옮겨도 뒷조사를 통해 어떻게든 새 주소로 편지를 보내고야 맙니다. 피해자가 원치 않는데도 가해자가 편지나 물건을 보내는 일이 정말 가능할까요? 만일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피해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괴로워만 해야 할까요? 가해자에게는 편지를 쓸 자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로서는 그런 편지를 받지 않고 ‘잊힐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형사사건을 다루는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형사 재판부에서는 절대 피해자의 동의 없이 피해자의 인적 사항을 피의자 또는 피고인에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피의자나 피고인이 자기 변론을 위해 사건 기록이나 증거를 등사 신청 또는 정보공개 청구하면, 수사기관이나 법원은 법률에서 정한 특정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허가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록을 내주기 전에 숙련된 실무 직원이 피해자의 인적사항 또는 인적사항을 짐작할 수 있는 모든 단서를 블라인드 처리하는 작업에 들어갑니다. 약 15년 전쯤 피고인에게 피해자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던 법원 직원이 수사받은 사건 이후로, 법원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그 어떤 정보조차 본인 동의 없이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극도로 주의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이 아무리 사과 편지를 전하고 싶다고 요청한다고 하더라도, 법원이 편지 보낼 주소를 피고인에게 알려줄 가능성은 0퍼센트입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피고인이 “내가 피해자에 대하여 이렇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편지를 썼습니다”라고 어필하면서 사과 편지를 피해자가 아닌 재판부에 양형 자료로 제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마디로 반성문의 변형된 형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피해자는 피고인이 제출한 자료를 열람 등사하는 형태로 편지를 읽어볼 수는 있겠지만, 딱히 읽고 싶을 내용은 아니기에 대부분의 피해자는 ‘사과받아야 할 사람은 여기 있는데 뭐하자는 건가’ 하고 어이없어할 뿐 굳이 편지를 복사해와서 읽지는 않습니다.

피고인이 이미 피해자의 주소를 알고 있어서 편지를 보낼 수도 있겠지요. 구치소나 교도소 수용자들은 의외로 편지를 열심히 씁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에게 쓰기도 하지만 담당 변호사에게, 형사에게, 가족에게, 친구에게 여러 가지 목적으로 편지를 씁니다. 수용자들이 쓴 편지는 오후 늦은 시각 교도관이 한 번에 걷어가 다음 날 우편으로 발송해 줍니다. 답장도 받을 수 있습니다. 작년 10월까지는 ‘법무부 인터넷 서신’, 이른바 ‘인서’라고 해서, 법무부 민원 웹사이트에 들어가 수용된 시설과 수용자 번호만 입력하면, 이메일을 쓰듯 아주 간단하게 무료로 인터넷 편지를 구치소나 교도소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낸 편지는 A4용지에 프린트되어 다음 날 오전에 수용자에게 전달되는 식이었습니다. 매우 편리했지만, 너무도 편리한 나머지 주식이나 코인 정보 공유나 음란 서신으로 악용되고, 교정본부에서도 일이 너무 많아진다는 지적이 늘어나 지금은 다시 유료로 바뀌고, ‘E-그린우편’이라고 하여 보내는 방식도 조금 복잡하게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가해자가 이렇게 보낸 편지가 감형의 효과가 있을까요? 역으로 피해자를 협박하는 편지라면 어떨까요? 우선 감형의 효과에서는,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미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성문을 써서 내면 도움이 되나요?”라는 질문을 상담하면서 정말 많이 받는데, 그때마다 제 대답은 비슷합니다. “한 장도 안 내면 반성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서 형이 높아질 수는 있겠죠. 그렇다고 해서 낸다고 감형이 될 정도는 아닙니다.” 즉, 반성문은 거의 모든 피고인이 내기 때문에 필수로 내야 하는 수준의 양형 요소이고, 그걸 낸다고 원래 나올 형보다 낮아질 걸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피해자에게 보내는 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양형은 판사의 권한이다 보니 가끔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합의가 되지 않았는데도 어느 정도 감형해주는 판결이 나오기도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가해자가 피해자를 위협하거나 만나자고 조르는 편지는 그것만으로도 별도의 중범죄가 됩니다. 가중처벌되는 중범죄에 대하여 규정한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9에서는 ‘보복범죄’를 규정해, 형사사건의 수사나 재판에 관련되어 수사 단서를 제공하거나 진술하거나 자료제출한 사람을 상해, 폭행, 협박하는 사람을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형사사건의 수사나 재판에 필요한 사항을 알고 있는 사람이나 그 친족에게 협박까지는 아니더라도 면담, 즉 대화하자고 강요하거나 위력을 행사한 사람을 처벌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위력’이란 위세, 사람 수나 주위의 상황에 비추어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 족한 세력을 말합니다. 즉 직접적으로 위협하거나 난동을 부리지 않더라도, 팔에 문신을 한 남성 여러 명을 데리고 가 얘기 좀 하자고 말한다면 이는 충분히 ‘위력 행사’로 해석됩니다.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내용을 적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시뻘건 글씨로 섬뜩한 외관의 편지를 보내 ‘보고 싶다’고 한다면 이 또한 충분히 협박이나 위력 행사가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중범죄 피해자들은 사건에 대해 떠올리는 것 자체를 매우 고통스러워합니다. 실제로 그 반응이 신체적으로 나타나, 호흡 곤란을 호소하거나 쓰러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대방이 원치 않는 일방적인 사과 또는 그 사과를 위한 접촉 또한 피해자에게는 강압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중한 피고인 변호사들은 피해자 변호사 측에 먼저 ‘피해자에게 사과 편지를 전달하고자 하는데 혹시 괜찮을지’, 또는 ‘피해자에 대한 사과 편지를 양형자료로 제출하고자 하는데 피해자가 불쾌해하진 않을지’ 동의를 받고 뭘 전달하든지 제출하든지 하는 것입니다. 잘못했다면, 제대로 사과하는 방법을 아는 것도 정말 중요합니다. 제대로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제3자가 개입하여 마음대로 가해자를 용서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영화 “밀양”의 대사처럼 말입니다.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나밖에 누구에게서 먼저 용서될 수가 있어요? 그럴 권리는 주님에게도 있을 수 없어요.”

서아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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