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의시읽는마음] 짐

2024. 9. 9.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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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다 실었니? 짐은 다 실었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일찍이 짐을 다 실어 두었다고 말하는 시 속 사람은 누구일까.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짐은 실었다고?" 출발만 있고 도착은 없는 상황이라니.

이미 이런 사실을 짐작하기 때문인지 그는 쉽사리 출발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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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균
짐을 다 실었니? 짐은 다 실었어. 그러면 지금 출발해도 괜찮겠니? 출발해도 좋아.
 
어디로 갈 건지 정했니? 아직 잘 모르겠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짐을 실었다고? 그래서 최대한 많이 실었어.
 
(중략)
 
실은 나도 아직까지 잘 모르겠어. 혼자서 얼마나 있다가 오게 될지…. 그래서 최대한 많이 실었어. 지금 출발하는 거야? 출발할 거야. 그러면 이제
 
혼자서 어디로 갈지 다 정한 거야? 글쎄.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짐은 실었다고? 짐을 아까 전에 다 실었어. 그래서 최대한 많이 실었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일찍이 짐을 다 실어 두었다고 말하는 시 속 사람은 누구일까. 어떤 이별 중일까. 알 수 없지만, 그는 지금 혼자다. 혼자서 어딘가로 향하려 하고 있다. 출발을 앞두고 있다.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짐은 실었다고?” 출발만 있고 도착은 없는 상황이라니. 이제 곧 출발하면 그는 혼자서 이곳저곳을, 재재소소를 헤매게 될 것이다. 어쩐지 두 번 다시 여기로 돌아오지는 못할 것 같은 예감.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여정. 이미 이런 사실을 짐작하기 때문인지 그는 쉽사리 출발하지 못하고 있다. 같은 문답만을 반복하고 있다. 짐을 다 실었니? 다 실었어. 어디로 갈 건지 정했니? 잘 모르겠어.

짐, 혼자, 모른다, 짐, 혼자, 모른다…. 시를 다 읽고 난 뒤에도 몇 가지 단어가 교차하며 뇌리를 맴돈다. 이들 단어가 부딪쳐 빚어내는 쓸쓸함은 무겁기 그지없다. 이 또한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할 것이다. 쓸쓸함이라는 짐, 떨칠 수 없는 삶의 책무.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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