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플랫폼 업계에 ‘백기’…구글 등 4개 기업만 규제 전망
공정위원장 “사전 지정 방식
사업주 부담, 역효과 우려”
반칙행위 항변권 ‘충분 보장’
소비자 권리 보호는 없어
“법 실효성 없어질 우려도”
공정거래위원회가 9일 그간 추진해왔던 ‘온라인 플랫폼 경쟁촉진법’ 제정을 사실상 포기한 것은 플랫폼업계의 거센 반발에 백기투항한 결과로 풀이된다.
공정위가 이날 공개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시장지배적 온라인 플랫폼의 자사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경쟁 플랫폼 이용) 제한, 최혜대우 요구 등 4대 반경쟁 행위를 ‘사후 추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정위는 별도의 온라인 플랫폼법 제정을 통해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과 비슷하게 거대 플랫폼 사전 지정 제도를 도입하려 했으나 사실상 포기한 것이다.
사전 지정 방식에선 법 위반행위 이전에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돼 공표된다. 지배적 사업자로 최종 지정되면, 위법행위 발생 시 ‘경제분석 과정’을 건너뛰고 불법행위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 조사와 심의가 이뤄진다.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경제분석 과정이 사라지는 만큼 신속한 사건 처리가 가능하다. 반면 사후 추정 방식에서는 불법행위로 인해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되는 업체가 불복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사후적으로 추가 경제분석이 진행되면서 신속한 사건 처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브리핑에서 “당초 사전 지정 방침을 발표했으나 사전 지정 방식이 행정비용과 사업자 부담을 늘릴 수 있다는 전문가·업계·관계부처의 의견이 많았다”며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사후규제) 방식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개정안은 ‘시장지배적 플랫폼’ 기준을 기존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사업자’ 기준보다 사실상 후퇴시켰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1개 회사의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이거나 3개 회사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75% 이상인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시장지배적 플랫폼’ 기준을 1개 회사의 시장점유율이 60% 이상이고 이용자 수 1000만명 이상인 경우, 또는 3개 이하 회사의 시장점유율이 85% 이상이고 각 사 이용자 수가 2000만명 이상인 경우로 완화했다. 이 모든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연간 매출액 4조원 미만 플랫폼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기준대로라면 배달의민족·쿠팡 등이 ‘시장지배적 플랫폼’에서 빠진다. 배달의민족·요기요·쿠팡이츠 배달 3사의 시장점유율은 96%가 넘지만, 배달의민족은 지난해 연 매출액 3조4155억원으로 ‘연 매출액 4조원 초과’에 해당되지 않는다. 쿠팡은 지난해 매출액이 30조원을 넘겼지만, 시장점유율 조건에 미달이다. ‘시장지배적 플랫폼’ 기준을 충족하는 기업은 구글, 애플, 네이버, 카카오 등 소수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지배적 플랫폼 기업에는 ‘반칙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입증책임을 부과한다. 다만 공정위는 “경쟁 제한성이 없는 경우 등에 대한 항변권을 충분히 보장하겠다”고 했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은 “항변권을 충분히 보장한다면 제재까지 걸리는 시간이 기존과 비슷해져서 법의 실효성이 없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소비자 권리 보호와 입점업체의 집단교섭권 보장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김 팀장은 “정부안은 시장지배적 지위에 있는 상위 4개 기업 정도만 규제하고 나머지 플랫폼들은 현행 공정거래법으로 규제할 수 있는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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