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선 노역, 죽어선 카데바… 37년 만에 드러난 부랑인 인권유린
서울시립갱생원·충남천성원…
정부 정책으로 운영됐던 시설
감금·구타 등 37년 만에 드러나
시설 간 수용자 ‘회전문 입소’도
당시 수용 13명 피해사실 인정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6일 제86차 위원회에서 이런 내용의 ‘서울시립갱생원 등 성인부랑인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을 결정(피해사실 인정)했다고 9일 밝혔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수용자들은 경찰·공무원 등의 불법 단속으로 연행된 뒤 지방자치단체나 민간법인이 위탁 운영한 부랑인 수용시설에 강제 입소됐다. 이들은 돈도 받지 않고 쉬는 날 없이 강제노동에 동원됐다. 지자체는 이들을 유휴 노동력으로 봤고 서울시립갱생원 수용자들은 도시건설사업에도 강제동원됐다.
부랑인수용시설에서 빈번하게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 ‘회전문 입소’ 실태도 처음으로 확인됐다. 수용자들을 다른 시설 증축 공사에 투입하거나 인원 충원·규칙 위반자 처벌 등을 위해 시설끼리 강제 전원하는 방식이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수용 기간을 장기화해 평생에 걸쳐 시설 수용의 삶을 살게끔 하는 게 회전문 입소의 출발점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진실규명 대상자보다 실제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형제복지원의 경우 피해자들이 직접 농성을 벌이고 권리구제 운동을 통해 사건이 널리 알려졌다. 이번 시설 4곳은 인권침해 실상이 잘 알려지지 않아 신청인이 적었다고 한다. 수용인원은 서울시립갱생원이 약 1900명, 대구시립희망원 1400명, 충남 천성원 1200명, 경기 성혜원은 520명으로 추정된다. 가장 큰 규모였던 형제복지원엔 3100명이 수용됐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이번 위원회 결정을 통해 더 많은 피해자가 결집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부산형제복지원은 1987년 폭행치사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이들 시설 4곳은 아무런 조사를 받지 않았다.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이 성지원을 대상으로 현장 조사를 벌이려고 했으나 시설 측이 조사하러 온 국회의원과 기자들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무산됐다.
진실화해위는 유엔고문방지위원회 권고에 따라 피해자가 개별 소송 없이도 보상을 받을 수 있게 집단수용시설 피해 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 실질적인 구제 조치를 권고했다.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과와 트라우마 치료, 실태조사 등도 국가에 권고했다.
이정한 기자 h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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