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형제복지원들’…여기, 또 지옥이 있었다

전지현 기자 2024. 9. 9.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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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 인권침해 판단…진실규명 결정
20여년간 부랑인 시설에 강제 수용됐던 피해자 이영철씨(가명)가 9일 진실화해위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갱생원 등 4곳 수용됐던 13명
“구타·가혹행위·강제노동 만연”
시신은 해부용으로 병원에 넘겨
“16년 지내는 동안 100명은 죽어”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성인 부랑인 수용시설 4곳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 끝에 해당 시설들에서 강제수용과 폭행·가혹행위, 강제노역과 같은 인권침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6일 제86차 위원회를 열고 서울시립갱생원·대구시립희망원·충남 천성원(성지원·양지원)·경기 성혜원에 수용됐던 신청인 13명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9일 밝혔다.

1970~1980년대에는 ‘부랑인’으로 지목된 불특정 민간인을 적법 절차 없이 단속한 뒤 수용시설에 보내는 일이 횡행했다. 이번 조사 대상이 된 시설들은 ‘한국판 아우슈비츠’라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과 같이 정부 시책(당시 내무부 훈령 제410호 등)을 근거로 운영됐다. 진실화해위는 이들 시설에서도 “구타와 가혹행위가 만연했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1987년 인권침해가 폭로된 형제복지원은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이 시설들은 어떠한 조사도 받지 않고 이름을 바꿔가며 부랑인 수용 업무를 이어왔다.

1987년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이 충남 천성원을 방문해 조사를 진행하려 했으나 시설 측이 정문을 막고 국회의원과 기자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진상규명이 흐지부지됐다. 그 후 37년 만에 이 시설들의 인권침해가 처음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수용자들이 자의와 무관하게 시설에서 시설로 넘겨진 이른바 ‘회전문 입소’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청인 13명 중 6명이 형제복지원에서 타 시설로 강제전원된 경험이 있었다. 3명은 형제복지원에서 퇴소한 후 다시 단속돼 다른 시설에 강제수용됐다.

성혜원 수용자 박모씨는 “부산 형제원에서 폭행을 많이 당해 몸이 시퍼렇게 된 사람들이 성혜원에 와서 한 달 있다가 대구 희망원으로 가고, 희망원에서 있다가 폭행을 심하게 당하면 인천 ○○원에 보내는 식으로 ‘뺑뺑이’를 돌렸다”고 진술했다.

20여년간 강제수용된 이영철씨(66·가명)는 이날 진실화해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15세 때인 1973년 가을 대구역 대합실에 앉아 있는데 대구시청 직원이 따라오라 해 갔더니 탑차에 실어 대구시립희망원에 입소시켰다”며 “그 이후로 총 5개 시설에 강제입소됐다”고 밝혔다. 그는 충남 양지원에서 16년 지내는 동안 “죽은 사람을 100명은 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1998년 양지원에서 풀려난 뒤 서울역 등에서 노숙을 하다 2016년에야 서울시 임시주거비 지원제도를 통해 고시원에 들어갔고 2022년 임대주택 입주대상자로 선정됐다고 했다. 이씨는 “처음 시설에 끌려간 뒤 49년 만에 집에서 살게 됐다”며 “하루빨리 수용시설들의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신과 신생아를 대상으로 한 만행도 다수 있었다. 충남 천성원 산하 성지원은 1982년부터 10년간 시설 사망자 시신 117구를 해부실습용으로 한 의과대학에 내준 사실이 드러났다. 진실화해위 조사관은 “돈을 받고 팔아넘긴 행위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충남 천성원과 대구시립희망원 등 수용시설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출생 직후 해외 입양 목적으로 홀트아동복지회 등 입양 알선기관으로 전원 조치된 것도 확인됐다.

이번 조사에선 부랑인 단속 정책 및 시설 운영 지원에서 국가의 전반적인 책임을 규명할 수 있는 자료도 다수 확인됐다.

부랑인 단속 및 강제수용의 근거 규정이던 1975년 ‘내무부 훈령 제410호’에 대해 서울시가 관할기관에 보낸 세부처리 지침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지침에는 “구청장과 경찰서장은 수용시설에서 순회하는 수송차량에 (부랑자를) 인계인수할 때까지 도주·폭행 등의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호한다”는 등 내용이 담겼다.

진실화해위는 “정부가 사회정화라는 명목으로 합동단속반에 의한 불법적 단속을 지속했고, 민간 법인에 운영을 위탁하면서 감금·폭행·강제노역 등 여러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것을 방치했다”고 판단하며 국가가 피해자에게 공식 사과하고 실질적인 피해 회복 조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추가로 확인되는 피해자에 대한 조사활동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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