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흘러야 강이다

기자 2024. 9. 9.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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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은 대체로 수력 발전과 연관되어 있어 뭔가 긍정적인 시설로 생각한다. 댐 건설을 통한 수력 발전이 친환경적인 대안으로 부상한 적도 있다. 그런 시대는 이미 갔다. 거대한 댐뿐만 아니라 작은 댐도 여러 가지 반환경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댐 건설과정에서 생기는 이산화탄소가 문제이고 게다가 메탄도 다량으로 반출된다. 둘 다 ‘기후 위기’에 이바지하는 물질이다. 댐 주변에 생기는 안개 등도 생태계 교란을 일으켜 근처 지역 농사를 망치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가 주도한 4대강 ‘살리기’ 캠페인은 수많은 문제를 드러냈고 중간중간에 세운 일종의 미니 댐인 ‘보’는 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차단하여 녹조의 원인이 되었다. 또한 펄, 악취, 수질 오염 등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보 근처 물속에서는 오염수의 지표인 실지렁이와 깔따구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윤석열 정부의 환경부는 지난해에 댐 건설을 공식화하기는 했다. 그러다 올해 7월 말 갑자기 전국 14개 지역에 댐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해당 지역이나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감정이 격해져 벌써 반대 집회를 열었다. 무엇보다도 발표일까지 주민들과 댐 건설에 대한 아무런 협의도 없었고 공청회도 없었다고 한다.

명분은 홍수 및 가뭄에 대비, 미래산업 용수 공급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자연을 파괴하고, 농업용수 확보로도 적합하지 않은 댐 건설에 지역주민들이 예전 수몰의 트라우마를 연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몰은 주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미래다. 삶의 터전을 깡그리 파괴하고 그와 함께 마을의 역사를 지워버리게 된다. 환경부는 이게 얼마나 폭력적인 일인가를 알고 있을까?

무엇보다도 댐 건설은 ‘동강댐’ 반대운동(1997~1999)에서 드러났듯이 상류와 하류 주민들, 이해당사자, 자치단체, 정부 부처 간의 복잡하고 심각한 견해차를 유발한다. 결국은 평화로운 공동체를 깨뜨리고 주민들 사이에 반목할 수밖에 없는, 심지어 원수지간이 되는 상황을 초래한다.

이런 댐만이 문제가 아니다. 4대강 사업을 벌이면서 세웠던 16개의 보는 이제 ‘애물단지’가 되었다. 그런데도 현 정부-환경부는 보를 철거하기는커녕 보를 닫아서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공주시는 시민들과 환경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지역 축제를 명분으로 삼아 환경부에 금강 공주보의 수문을 닫아달라는 요청을 했다. 환경부는 그 과정에서 반환경적 선택을 했다. 세종보는 현재 열려 있기는 하다. 하지만 환경부-세종시가 보를 ‘재가동’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활동가들과 시민들은 보 바로 옆에서 상주하며 넉 달 넘게 ‘천막 농성’ 중이다. ‘물 정책 정상화’를 외친다.

만약 세종보를 닫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녹조는 전면화되고 물의 흐름이 회복되며 모래톱이 복원되기 시작한 강에 터를 잡은 각종 동식물, 그중에서도 멸종위기종과 습지 등이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다. 악취 및 소수력발전으로 인한 소음 등도 큰 문제다. 7년간 수리 및 유지 비용만 116억원에 달했다고 한다. 정부는 무슨 생각으로 보를 ‘재가동’하려 하나? 수문 닫기가 공업단지를 위해서라면 특정 지역 공동체는 깨져도, 소멸해도 무방하다는 생각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마치 송전탑 건설을 위해서 희생된 밀양 주민들의 처지와 유사하다. 송전탑은 단순화해서 이야기하면 지방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에 ‘배달’하려는 계획에 의해서 발생한 문제다. 정부가 그 많은 송전탑과 전선들을 자연 파괴와 지역주민 저항을 무릅쓰고 설치하려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배달’ 사고가 날까봐서다).

20세기 초 미국 지질조사국 책임자 포웰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거대한 강이 아름다운 수로를 따라 꾸불꾸불 흘러서 바다로 간다면 그것은 우리의 정의감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강들이 바다로 흐르는 것은 물의 낭비다.” 자연을 ‘비생산적인’ 것으로 보고 그것을 인간의 ‘인위적인’ 기획에 따라서 조종, 변형해야 한다는 근대주의적인 발상이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다. 지구 곳곳에서 댐 건설과 핵발전소 등은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댐과 보의 해체는 세계적인 추세다. 한국의 경우 과거처럼 주민들이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다수 시민들의 환경 의식이 높아지고 ‘기후 위기’와 관련하여 국제사회가 합의한 목표에라도 도달하기를 진심으로 원하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열렸던 ‘기후정의행진’ 등이 점점 빈번해지는 게 그 증거다. 흘러야 강이다!

권혁범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권혁범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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