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어른의 역할은 죽는 것이다
“인류 모두에게 300년의 생명을 주소서!”
카렐 차페크의 희곡 <마크로풀로스 사건>에서는 불로불사의 약을 두고 논의가 벌어진다. 법무사 비테크는 먹으면 영원히 살 수 있는 이 약을 모두에게 주자고 한다. 그는 인생이 너무 짧아서 기뻐할 틈도 사색할 틈도 없다고 말한다. 사람이 300년을 살 수 있다면 처음 태어나 100년 동안 배우고 익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누구나 현명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면 “빵 한 조각을 위해 악착같이 달려드는” 데서 해방된 인간은 더 정신적인 일에 애쓰게 된다. 공포도 사라지고, 전쟁도 없어진다.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영생의 존재 ‘스트럴드블럭’은 좀 다르다. 스트럴드블럭은 여든 살이 되면 평범한 다른 노인들처럼 늙는다. 오히려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통의 사람보다 더 많은 결점을 보여준다. 독선적이고 탐욕스럽고 심술궂다. 아는 건 젊은 시절 배우고 본 것이 전부다. 아흔이 넘으면 식욕도 없으면서 뭐든 먹고 마시려 한다. 앞 문장이 무슨 내용이었는지 계속 잊어버리기 때문에 독서조차 못한다. 200년이 지나면 바뀐 말을 알아듣지 못해 다른 세대와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헌법재판관이란 높은 지위를 누리고도 구태여 어울리지 않는 인권위원장에 다시 오른 이와, 국회의원 세 번에 경기도지사를 두 번이나 지냈고 노동자를 모욕하면서 굳이 고용노동부 장관이 된 사람을 보면서 생각한다. 아마 인간이 영생한다면 스트럴드블럭 쪽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한편에는 진짜 불사조들도 있다. 데이터팀이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주요 공직자들을 추적해보니 10명 중 7명이 특별사면을 받았다. 그들 중 정호성, 김태효 등은 다시 이 정부에서 일한다.
그렇지만 결국, 모든 인간은 죽는다. 백세시대라지만 평균 건강수명은 고작 70세 남짓이다. 탐욕에 분노하기에 앞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따져보게 된다.
“어른의 역할은 죽는 것이다.” 천문학자 이명현의 말이다. 생을 다한 별들은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고 많은 원소를 남긴다. 세월이 지나면 그 자리에서 이 원소들을 재료로 새로운 별이 탄생한다. 우리는 모두 별의 후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렇게 “자기가 가진 걸 크든 작든 뿌리는 것”이다. 그가 지난해 환갑이라는 생의 전환점을 맞아 도서평론가 이권우, ‘각종 과학관장’ 이정모와 함께한 전국 순회 토크쇼도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이정모는 말했다. “보통 동물들은 생식이 끝나면 죽는다. 고래나 코끼리처럼 수명이 긴 동물들은 생식능력이 없어지면 손자, 손녀 혹은 무리의 다른 어린 생명들을 돌본다.”
후지하라 다쓰시의 <분해의 철학>은 차페크의 희곡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생명은 배턴처럼 다음 세대, 또 다음 세대로 건네지는 공유물이기에 한 세대의 개체가 독점할 수 있는 사적 소유물이 아니다.” 차페크의 희곡에서도 생명은 아이에게 전해져가는 것이니 그것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로 논쟁이 끝맺음된다. 어렵게 대선 후보를 사퇴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좋은 사례다. 그는 사퇴 연설에서 말했다. “나는 앞으로 나아갈 가장 좋은 방법이 새로운 세대에 횃불을 넘기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황경상 데이터저널리즘팀장 yellowpi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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