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싫어하는 마음이란 곧
“일하기 싫어. 어떡하지?” 친한 친구가 일요일에 이런 말을 했을 때 나는 그에게 어느 책에선가 읽은 표현을 읊곤 했다. “무언가를 싫어하는 마음은 사실 좋아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게 아닐까.” 마음씨 착한 내 친구는 한동안 곰곰이 생각하더니 “어. 정말 세상의 좋고 싫음은 나란히 존재하는 문제 같아”라고 대답하고 좋아하고도 싫어하는 출근을 준비하러 떠났다.
그로부터 얼마 안 지나, 병원으로부터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복막에 암이 전이돼 고통을 호소하던 엄마의 암 수술 일정이 잡혔다는 내용이었다. 오랜 의료대란으로 진료와 수술 일정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들은 값진 소식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각종 원무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병원은 환자의 친자녀인 형과 나를 번갈아 부르기 시작했다. 마음이 복잡했다. 암 전이로 생명이 위급한 엄마에게 수술 기회가 주어진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이와 별개로 평생 정신질환을 앓은 엄마의 가정폭력으로부터 겨우 벗어난 우리 형제가 엄마의 병실생활을 도맡아 책임지기란 쉽지 않았다. 학대의 가해자를 돌보는 업무란 무섭고 화가 나며 겁나는 일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결국 살리고 봐야겠다 마음먹고 병원으로 향한 날. 몇번씩이나 집으로 되돌아갈까 고민했다. 과연 나를 모질게 욕하고 때렸던 사람 곁을 지킬 수 있을까, 당신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까. 아동학대 트라우마를 지닌 나에게 당장 떠오른 위로라곤 단 하나. 언젠가 친구와 장난삼아 나누던 말뿐이었다. 싫다는 마음과 좋다는 마음은 어느 정도 동시에 존재하는 것 아니겠냐는 그 표현. 겨우 도착해 병실 문을 여니, 과거 언젠가 자녀의 마음을 부수려 했던 자녀의 창조자는 너무도 낯선 모습으로 창문 옆 맨 끝 침대의 매트리스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복수로 차오른 배에 깡마른 얼굴. 고통으로 일그러진 뜨거운 표정에 어울리지 않는 서늘한 체온. 얼굴과 몸, 표정과 체온의 결이 맞지 않는 그는 힘없이 나를 손짓하며 내 이름을 불렀다. “재… 재원이 왔니”하고. 학대의 가해자로부터 느껴지는 두려움과 아픈 사람으로부터 비치는 안타까움을 함께 안은 채로 말없이 그의 침대 곁에 앉아 수술 절차를 기다렸다.
머잖아 그를 수술실로 보낸 뒤, 공원 벤치에 앉아 그날의 복잡해진 마음을 돌아보았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약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장 멀리 두고 싶은 사람은 가장 가까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그를 싫어하는 만큼 좋아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아픈 엄마는 내게 그렇게 복잡하게 느껴졌다.
수술 후에도 계속되는 엄마의 끝 모를 투병을 지켜보는 요즘, 때때로 가정폭력 기억이 되살아날 때면 익숙한 불안감이 엄습하곤 하지만, 그의 곁에 머무는 시간이 늘수록 낯선 안정감도 함께 피어난다. 앞으로 우리 사이에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내가 엄마를 용서하고 아동학대의 기억을 정리할 만큼의 시간이 더 주어지면 좋겠다. 내가 엄마를 싫어하는 마음이란 곧 좋아하는 마음으로부터 존재했음을 확고히 확인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더 허락됐으면 좋겠다. 평생 싫어했던 사람을 좋아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부디 생의 마지막에라도 확인할 수 있길 바라며 오늘도 병원을 오간다.
변재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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