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잊히기를 거부한 '바람의 아들' 양용은
[골프한국] 최경주(54)가 한국 남자골프의 개척자라면 양용은(52)은 반항아다.
1993년 KPGA 회원이 된 최경주는 1999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물설고 낯선 PGA투어에 진출, PGA투어 통산 8승을 거둔 뒤 만 50세가 넘어 참가할 수 있는 챔피언스투어에서도 2승을 거두었다. 그는 KPGA투어 17승을 포함해 프로 통산 27승으로 한국 남자골프의 프론티어 역할을 해내고 있다.
양용은은 최경주보다 3년 늦은 1996년 KPGA에 들어와 3승을 거둔 뒤 일본투어(JGTO)와 아시안투어, 유러피안투어를 오가며 경험을 쌓다가 2006년 유러피언투어 HSBC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를 꺾고 우승하면서 PGA투어 직행카드를 쥐는데 성공, 무대로 PGA투어로 옮겼다.
PGA투어 데뷔 3년 만인 2009년 혼다클래식에서 첫 승을 거둔 그는 역시 같은 해 8월 미국 미네소타주 채스카의 헤이즐틴 내셔널GC에서 열린 제91회 PGA 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에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를 꺾고 우승, 지구촌을 깜짝 놀라게 했다.
세계 4대 메이저대회 중 하나인 PGA 챔피언십을 동양인으로서는 처음, 그것도 자타가 인정하는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를 꺾고 우승했다는 사실은 한국 골프사는 물론 세계 골프사에 획을 긋는 대사건이었다. 그것도 메이저 대회 14승을 올리는 동안 4라운드를 선두로 시작해 단 한 번도 역전패를 당한 적이 없는 우즈에게 역전패의 치욕을 안기면서. 지금도 타이거 우즈는 자신의 골프 생애에서 가장 가슴 아픈 순간으로 PGA 챔피언십에서 양용은에게 당한 패배를 꼽을 정도다.
KPGA투어에서 3승, 일본투어 5승, 유러피언투어 2승, 아시안투어 2승, PGA투어 2승에 이어 이번에 PGA 챔피언스투어에서 1승을 보태 양용은의 프로통산 승수는 14승으로 늘어났다.
최경주와 양용은의 공통점은 열악한 환경에서 골프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골프채를 잡을 기회를 얻은 최경주에 비해 양용은은 더 불리했다.
제주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건설 현장 일자리를 얻기 위해 굴착기 기술을 배우다 무릎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포기하고 친구의 소개로 골프장 볼 줍는 일을 하다 골프를 터득한 그의 골프는 '야생마'라는 별명답게 정통적인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는 제주도의 야생마답게 어느 곳에서든 자신만의 야성 넘친 골프를 포기하지 않았다.
유러피언투어 HSBC챔피언십이나 PGA챔피언십에서 모두 타이거 우즈를 상대로 대결을 벌여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은 기존 질서에 복종하지 않는 그의 야생마 기질을 빼곤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만의 독특한 잡초 근성도 한몫 했으리라 짐작된다. 보통 선수 같았으면 15년간 2승밖에 거두고도 PGA투어에서 퇴출당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쉽사리 뿌리 뽑히지 않는 끈질긴 잡초 근성이 그를 PGA투어에서 시니어투어까지 징검다리를 놓아 잊히지 않는 선수로 만든 것 같다.
앙용은은 9일(한국시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노우드 힐스CC(파71)에서 열린 PGA투어 챔피언스 어센션채리티클래식 최종일 경기에서 최종합계 13언더파 200타로 베른하르트 랑거(67·독일)와 동타를 이룬 뒤 펼쳐진 첫 번째 연장전에서 버디를 성공시켜 챔피언스투어 데뷔 3년 만에, 72번째 출전 경기에서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2009년 PGA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를 물리치고 포효했던 그는 이번에도 시니어 투어의 전설 랑거를 제치는 이변을 일으켰다. 챔피언스에서 한국 선수 우승은 최경주(2승)에 이어 양용은이 두 번째다. 위창수는 공동 51위(1오버파 214타), 최경주는 공동 60위(3오버파 216타)에 그쳤다.
1980년과 1993년 마스터스 토너먼트에 우승하면서 명성을 날린 랑거는 PGA투어에선 3승밖에 거두지 못했지만 2002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2007년 시니어투어인 챔피언스투어로 옮긴 뒤 타의 추종을 불허, '시니어 황제'라는 별명을 듣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시니어투어에서 거둔 승수는 모두 46승으로, 골프계는 앞으로 아무도 이 기록을 깰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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