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호정의 컬쳐 쇼크 & 조크] <190> 밴드의 시대는 어쩌면 시작되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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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고갤 돌렸다.
콜드플레이만큼이나 장수하는 넬부터, 실리카겔, 새소년, 혁오, 잔나비 등 언론은 클리셰로 느껴질 만큼 '밴드의 시대가 올 것인가?'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지만, 어쩌면 밴드 시대는 이미 시작됐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고 멀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어쩌면 먼 훗날 후손들은 지금을 밴드의 시대로 기억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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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고갤 돌렸다. 체육복을 입고 책가방을 멘 여중생 두 명이 스피커폰으로 크게 노래를 틀고 합창하듯 따라 불렀다. “아름다운 청춘의 한 장 함께 써내려가자….” 최근 역주행하는 밴드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였다. 행인의 시선에도 꿋꿋하게 노래하며 멀어지는 어린 학생들 뒷모습은 말 그대로 여름이었다. 데이식스도 무려 데뷔 10년차이고 세계 만방에 유명세를 떨치는 아이돌 그룹들과 치열하게 1위 다툼을 하고있는 중이다. 여러모로 놀랍다.
흔히들 ‘여캠’이라 부르는 활동을 하던 인플루언서들로 구성된 밴드 ‘QWER’도 대형 록페스티벌에 참가하며 무수한 논란을 일으켰다. 밴드가 논란이 된다는 것 역시 생소하다. 문득 생각하니 현재 대한민국에서 대규모 공연장을 가득 채울 만한 인기와 역량을 가진 밴드가 수두룩하다. 콜드플레이만큼이나 장수하는 넬부터, 실리카겔, 새소년, 혁오, 잔나비 등 언론은 클리셰로 느껴질 만큼 ‘밴드의 시대가 올 것인가?’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지만, 어쩌면 밴드 시대는 이미 시작됐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노인과 바다’라는 밈으로 조롱받는 내 고향 부산의 인디 씬만 해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음악 하는 이들은 어느 정도 다들 안면이 있을 만큼 끈끈하고 그만큼 애증도 있던 분위기였으나, 이젠 그러기엔 생소한 팀이 너무 많다. 공연 좀 보러 다녔다고 아는 척하기엔 너무 커져버린 것이다. 인근 창원(마산) 울산 대구 밴드도 상당수 있다. 부산 인디씬의 고인 물들조차 ‘요즘엔 듣도 보도 못한 밴드들이 하나같이 잘한다’고 얘기한다. 양은 물론 질적으로도 성장해 상향평준화됐다.
이제 잘하는 건 그냥 기본 값이 돼버린 것 같다. 그건 그 나름대로 밴드 하기에 상당한 고충일 수 있겠다. 세이수미, 보수동쿨러, 소음발광, 해서웨이, 미역수염 같은 부산의 인기 밴드 공연을 보려고 기차·비행기를 타고 오는 외지인 역시 공연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고 멀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어쩌면 먼 훗날 후손들은 지금을 밴드의 시대로 기억할지 모르겠다. ‘노인과 바다’라는 오명을 벗어날 방법은 어쩌면 ‘록앤롤’ 아닐까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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