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116> 책거리 8폭 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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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텍스트 힙(Text hip)'이 젊은 세대의 새로운 유행으로 떠오르고 있다.
책거리는 책을 중심으로 문방구 등 여러 가지 사물을 함께 그린 그림인데 병풍 형태로 많이 만들어졌다.
부산박물관 소장 책거리 8폭 병풍(사진)도 책장 없이 모든 사물이 화면 가운데로 집중되어 복잡하면서도 자유분방한 구도를 이룬다.
책거리 8폭 병풍은 현재 부산박물관 부산관 미술실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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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텍스트 힙(Text hip)’이 젊은 세대의 새로운 유행으로 떠오르고 있다. ‘텍스트 힙’이란‘글자’를 뜻하는 ‘텍스트(text)’와 ‘멋있다·개성 있다‘라는 뜻의 은어인 ‘힙(hip)하다’가 합쳐진 신조어이다. ‘텍스트 힙’은 책이나 책 읽는 모습, 자신의 책장 등을 촬영하여 SNS를 통해 타인과 공유하는 새로운 형태의 독서문화로 나타나고 있다.
방식은 다르지만 조선 시대에도 ‘텍스트 힙’이 존재했다. 바로 책거리(冊巨里, 책가도冊架圖로도 불린다)라 불리던 그림이다. 책거리는 책을 중심으로 문방구 등 여러 가지 사물을 함께 그린 그림인데 병풍 형태로 많이 만들어졌다. 놀랍게도 그 유행을 이끈 선두 주자는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正祖, 제위 1776~1800)였다.
독서를 좋아한 정조는 책 읽을 시간이 없을 때 책거리를 보며 마음으로 즐겼다고 한다. 문(文)을 중시하던 정조의 사랑을 듬뿍 받은 책거리는 궁중을 넘어 상류층으로 번졌다. 영·정조 시기 학자인 이규상(李圭象, 1727~1799)이 지은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에는 ‘당시 상류층의 집 벽에 이 그림으로 장식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라고 언급하고 있어 그 유행을 짐작하게 한다.
19세기가 되면 책거리는 궁중과 상류 사대부층뿐만 아니라 민간에까지 확산하면서 민화로 그 저변을 확대하게 된다. 이 시기부터 그림 형식에도 변화가 생긴다. 기존 책거리가 책장 안의 책과 문방구를 그려 학문 숭상의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하였다면, 이때부터는 책장이 생략되고 책의 비중이 줄어들거나 사용자의 취향을 반영한 여러 가지 기물이 등장하는 등 자유분방한 구성으로 변화한다.
부산박물관 소장 책거리 8폭 병풍(사진)도 책장 없이 모든 사물이 화면 가운데로 집중되어 복잡하면서도 자유분방한 구도를 이룬다. 그림 속 책은 화려한 비단 책갑을 두르고 있지만 그림의 중앙이나 앞에 위치하지 않고 측면이나 뒤에 그려져 있다. 그리고 책갑 주위에는 잉어 모양 장식품, 안경, 연꽃·모란 등의 꽃과 포도·참외와 같은 과일 등 사용자의 취향과 염원을 담은 물건이 가득하다. 또한, 활과 화살 등 무(武)와 관련된 사물까지 그려져 있다. 그래서 ‘사용자가 무관이었을까? 혹시 무관이 되고 싶은 사람이었을까?’라는 상상을 하게 한다.
책거리 8폭 병풍은 현재 부산박물관 부산관 미술실에 전시되어 있다. 그 앞에 서서 그림을 보고 있자면 오랜 시간을 건너 이 병풍 주인의 취향과 염원, 방의 분위기까지 전해진다. 마치 누군가의 SNS 게시물을 둘러보는 기분이다. 어쩐지 이 그림 앞에서 인증샷을 찍어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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