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직하고픈 마음, 비워내는 게 답일까[인스피아]

김지원 기자 2024. 9. 9.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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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저장강박의 시대: 잡동사니와 기억
노트북 바탕화면에 파일들이 잔뜩 흩어져 있다. ‘디지털 저장강박’은 디지털 저장 장치가 급격히 발전하고 저장 비용이 낮아지면서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위키피디아
SNS·인터넷 서핑 중 ‘공유’와 ‘북마크’를 누르는 게 일상인 현대인들
철저히 개인의 취향인 ‘수집’…때론 그것들의 증식이 ‘애증’이 되기도
호기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잡동사니와의 투쟁’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각자 방식으로 ‘유지 보수의 곤란’을 잘 헤쳐나갈 수 있는지가 관건

‘디지털 저장강박(Digital hoarding)’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디지털 환경에서 수많은 기사, 음악, 영상들의 북마크, 메모, 사진 등을 잔뜩 모아두어 골치를 앓는 행동을 뜻하는데요. 정식 병명은 아니지만 근래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증상이라고 합니다.

멍하니 SNS나 사이트를 보면서, 계속 ‘공유’나 ‘북마크’를 누르는 건 일상입니다. 사진과 동영상을 나노 단위로 찍고, 기억하고 싶은 것은 메모를 해두기도 하지만 이 중에 나중에 진짜 살펴보는 것은 아주 조금이고요. 눈에 보이질 않으니 얼마나 되는지 감도 잡히지 않습니다. 깜깜한 ‘블랙홀’ 같은 느낌이랄까요. 방대하고 성능이 좋은 ‘제2의 뇌’를 만들어주겠다는 효율적인 노트 기록 앱이나 강좌 등은 넘쳐납니다.

하지만 문득 생각했습니다. 디지털 공간에서 우리가 한정 없이 수많은 것들을 저장할 수 있다는 환상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디지털 저장강박’에 시달리는 건 우리가 엉망진창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애초에 ‘무한정, 더 많이 잔뜩 쌓아두자’라는 방향 자체가 틀렸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레터에선 ‘수집과 저장’에 대해 해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장강박은 나쁜가?

한 번쯤 TV 등에서 집이 잡동사니 더미에 파묻혀버리고만 풍경을 보신 일이 있으실 텐데요. 너무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물건이 집의 주인이 되고만 경우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저장강박 환자’라고 하는데요.

이들은 실체가 있는 물건을 수집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만, ‘디지털 저장강박자’와 핵심적인 공통점이 있습니다. 많은 것을 사랑할 줄 알고, 또 버리지 못한다는 점이죠.

<잡동사니의 역습>은 ‘저장강박’ 전문가인 저자들이 직접 1000여명의 저장강박 환자들을 만나고 이들을 연구, 관찰, 치료한 생생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쓴 책입니다. 넓은 저택 몇개를 모조리 잡동사니 무덤으로 만들어버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5년 전에 쓴 꼬깃꼬깃한 은행 돈봉투, 쓸데없이 자리를 차지하는 인형들마저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죠.

이렇게 말하면, 이 사람들이 얼마나 깜짝 놀랄 만큼 정신이 없고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룰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요약하자면 ‘저장은 인간의 본성이자 중요한 욕구이며, 이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자는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일반인’과 ‘저장강박자’ 사이의 경계는 아주 모호하다고 강조하는데요.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수집가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삶의 일부를 저장, 각별한 물건을 주변에 두고 싶어하죠. 두고두고 어떤 순간을 추억하고 싶고, 혹은 왠지 모르게 내게 와닿은 재미나고 마음에 든 독특한 물건들을 고집을 부리며 구해서, 아끼고 또 주변에 두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다만 문제는 이것이 ‘정도’를 넘어서는 순간이죠.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저장강박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특징은 ‘섬세함’과 ‘박애주의’입니다.

우선, 이 책에 따르면 저장강박자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대체로 섬세하고 관찰력이 뛰어납니다. 예를 들어 이 책에 등장하는 한 여성(아이린)은 통상 저장강박을 가진 이들이 사회와 단절되어 외롭고 무기력하게 살아간다는 편견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그는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했고 사서로 일하기도 했으며, 수많은 친구들이 있고, 가족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많은 것들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지적인 호기심이 뛰어난 사람이었죠. 그리고 한 물건, 기사를 보더라도 사려 깊게 살피고 곧장 핵심, 연관관계를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과해지다 보니’ 그의 집엔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물건들이 넘쳐나게 되고 말았죠.

그녀는 심지어 고양이를 기르지 않으면서도 ‘고양이에게 약 먹이는 법’ 기사를 스크랩해 보관하고 있었다고 하죠.

저는 이런 대목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 역시 쓸모없는 재미난 이야깃거리들을 모으는 것에 비상한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침 직전에 저는 “내 이름은 그냥 돌”로 시작하는 제목의 재미난 기사를 클립해두었던 차였습니다. ‘그냥 돌’이라는 말이 재밌어서요. 아마 인터넷 시대가 아니라면, 저는 이 기사를 신문에서 읽고 오려뒀겠고 자리를 차지했겠죠. 어쩌면 저곳에서 신문 더미를 머리에 인 채 꾸중을 듣고 있어야 할 사람은 아이린이 아니라 바로 저일지도 모릅니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정보나 물건을 단순히 뚱한 덩어리로 바라볼 뿐 아니라, 연결을 찾아내고 또 그걸 어디에 활용할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섬세함’은 아주 위태로운 것이라, 조금만 과해져도 삶을 무너뜨리는 것이 되었는데요. 왜냐면 애초에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섬세하게 보고 기억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자신의 삶에 유의미하도록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결국 이들의 ‘섬세함’은 시간이 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나쁘게 발전하게 됩니다. 너무 많은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다 보니 나중엔 그냥 그 물건들의 가능성에 짓눌린 채 ‘회피’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정보광’인 아이린은 실제로 수많은 책과 기사, 잡지의 더미에서 모두 섬세하게 의미를 찾으려고 하다 보니 나중엔 아예 읽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냥 쌓아두기만 하는 거죠. “시간이 흐르면서 신문을 보유하는 행위가 읽기를 대체해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데요. 오스트리아 철학자는 이처럼 우리가 오늘날 직접 무언가를 체험하고, 읽는 대신 저장이나 대리체험을 통해 만족하는 경향에 대해 ‘상호수동성(interpassivity)’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죠.

이어 모든 것을 똑같이 사랑하는 ‘박애주의’는 뒤집어 말하자면, 어느 것도 버릴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즉, 가치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를 일컫는 거죠. 많은 저장강박자들은 물건들 간의 우선순위를 파악하기 어렵고, 이 때문에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게 됩니다. 심지어 한 여성은 딸의 사진과 신문 광고가 똑같이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했죠.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책에서 유일하게 저장강박자들 가운데에서 물건과 의미 있는 경험을 하는 대목이 등장하는데, 그게 바로 ‘버리는’ 장면이었다는 겁니다. 낡은 노랑 백조 인형을 버리면서 한 저장강박자는 인형을 애도하고,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상실’의 힘이죠.

잡동사니와의 분투

설령 적당한 수준의 잡동사니를 유지한다고 해도, 결국 그 산더미를 뭐에 써먹을 것인지의 문제도 남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우리의 ‘삶의 상자’ 속 물건, 조각들에 주목하고 또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는 윌리엄 데이비스 킹이라는 ‘잡동사니’ 수집광·예술가의 자서전인데요. 책 내용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 고집쟁이 수집광이 30년간 부들부들한 돌멩이, 병뚜껑, 과자봉지, 광고 전단, 젓가락 포장지 등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잡동사니들만 몇톤이나 모아왔으면서도, 어떻게 그 잡동사니에 깔려 죽지 않고 살아남아 결국 이런 책까지 써냈는지에 대하여.”

책의 어조는 꽤 비장합니다. 보통 수집가들이 자신의 수집품들을 소중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것과는 달리, 그에게 있어서 수집품 더미는 ‘애증’의 대상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는 시종일관 ‘증식하는’ 잡동사니 더미와 분투를 하고요.

이 책은 단순히 ‘잡동사니 수집’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우리가 어떻게 ‘정보(혹은 물건)의 홍수’ 시대에 나에게 의미 있는 정보나 볼거리 등을 찾고 또 그것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우선 이 책의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이 책이 여타 수집 관련 책들과 관련해서 가장 큰 차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 그야말로 잡동사니들을 수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철저히 ‘나한테만 의미 있는 것’이라는 점이죠. 예를 들면 신문에서 오려낸 가장 이상한 홍보 문구들, 30년 전 정치인의 선거 유세 구호가 적힌 배지, 중국음식점에서 주는 젓가락 사용하는 방법 안내 종이, 싸구려 백과사전에 들어 있는 작자 미상의 조잡한 삽화 등입니다. 저자는 “내 컬렉션은 나를, 나만을 반영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수집 활동의 핵심은 실은 ‘획득’이 아니라 ‘저장과 유지 보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컬렉션을 어떻게 채워가고, 또 분류하고 정리할지에 대한 내용이 자주 등장합니다. 만약 어떤 종류의 각별한 수집을 해보았거나 오랫동안 자료를 모아왔다거나, 식물, 책 등 무언가를 돌봐 본 경험이 있으시다면 이해가 빠르실 텐데요.

우리는 흔히 어떤 사람이 엄청난 컬렉션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우와… 그걸 언제 다 모았어?’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곤 하는데요. 실은, ‘모으는 것’은 수집의 시작 혹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거죠.

컬렉션이 커질수록 빈자리에 무엇을 채울지, 어떻게 분류하고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돌볼지, 기회가 되면 무엇을 가장 뽐내며 자랑할지, 무엇을 버릴지,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 등의 문제는 사실상 수집 행위의 핵심이 됩니다.

잡동사니는 살아 있습니다.

계속 쓰다듬고, 살펴보고, 분류하고, 뒤적이고, 돌보아주는 과정에서 비로소 잡동사니들은 의미와 생명을 얻는 거죠. 아무리 고급스러운 수집품과 각종 메모가 잔뜩 쌓여 있어도 그것 자체로 생명, 의미를 얻을 순 없듯요. 저자는 책에서 많은 분량을 할애해 ‘컬렉션 뒤적거리기’의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하기도 하는데요. 그 일부를 소개해봅니다. “(컬렉션의) ‘유지 보수’는 영구적인 골칫거리이다. […] 꿀은 ‘단것’에 포함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기본 재료’에 포함되어야 하는가? […] 새로운 라벨을 그 컬렉션 속에 삽입하기 위해서는 다른 라벨들을 이리저리 재배치해야 한다.”

이처럼 무언가를 잔뜩 쌓아놓는 과정에서 그것을 나중에 의미 있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계속 새롭게 분류해가고, 또 그것들을 살펴보며 꾸준히 자기만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강아지, 식물에게 사랑을 주고 돌보듯이요.

어쩌면 수많은 메모 강좌와 앱들이 홍보하는 자동화된 ‘말끔한 분류’라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것 혹은 가능하더라도 불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결국 저자는 어릴 때 한때만이 아니라, 수십년에 걸쳐 계속 수집을 지속하는데요. 그것은 결국 ‘예술’의 영역에 도달합니다.

그는 <잡동사니의 역습>에서 저장강박자들이 어느 순간, 자신의 모음집들을 외면하고 그것으로부터 도피한 것과는 반대로 - 그 많은 것들을 계속 성찰하고, 버리고, 분류하고, 반성하고, 재조직하고, 정리하고, 분투합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컬렉션은 영영 잊혀지기도 하지만 어떤 컬렉션은 새롭게 탄생하고, 또 버리기도 하죠. 즉 저자는 ‘강박인 상태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 역시 저장강박으로 유명했다. 그가 죽고 난 뒤 전단부터 가면, 공짜 판촉물 등을 모은 ‘타임캡슐’은 617개에 달했고, 아카이빙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digital history

맺음말

마음에 드는 잡동사니를 모으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하지만 단지 모으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는 애초에 왜 보고 또 저장하려고 하는 걸까요?

간단합니다. 짧은 삶 동안 의미 있게 살고,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서죠. 그렇다고 할 때 어떤 것을 더 많이 저장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 어떻게 삶의 시간을 재미나게 채워나가고, 또 메모를 통과하는 동안 우리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 그 순간에 무엇을 주목할 것이며, 무엇을 버릴 것인지, 사랑하는 잡동사니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나갈지 등일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쏙 빼놓은 채, 단지 도토리를 모으는 것처럼만 모든 것을 바라볼 때 우리는 더 많은 것에 손을 뻗치지만 우리가 더 많은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는 없게 될 것입니다. 마치 <잡동사니의 역습>에 나온 저장강박자들처럼요.

어쩌면, 우리가 그 모든 잡동사니에 짓눌리지 않고, 디지털 시대에 부담 없이 무한히 그리고 영원히 그 모든 것과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계적 환상이 - 오늘날 저장강박의 해결책이 아닌 핵심 원인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잡동사니의 역습>에서 저자는 집의 크기나 재력은 저장강박 문제를 전혀 해결해주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저장강박 증상자들은 갖추고 있는 저장소의 수나 크기에 개의치 않고 거주 공간을 채운다. 우리는 소유한 주택이 네다섯 채나 되는 증상자들도 보았다….”

- <잡동사니의 역습>

호기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잡동사니들과의 투쟁은 당연한 것입니다. 어쩌면 곤란을 겪는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어떻게 ‘나름의 방식으로’ 그 곤란을 ‘잘’ 헤쳐나가는가가 관건이겠죠.

이 글을 읽으실 독자님들께서도, 각자 다양한 환경에서 글을 읽고, 넘치는 호기심을 갖고, 이런저런 것들을 사랑하고 계실 텐데요.

‘저장강박’과 ‘메모/기억’에 대해 제일 수상한 말들만 늘어놓고 있는 오늘 편지를 계기로, 내가 어떻게 앞으로 사랑하는 골칫덩이, 잡동사니들과 투쟁해갈 수 있을지를 한 번쯤 생각해보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뿌듯하고 의미도 있고, 재밌는 방식으로요.



이 글은 인문교양 뉴스레터 <인스피아>에 실린 내용을 수정한 것입니다. 더 많은 글을 보고 싶으시다면 오른쪽 QR코드를 촬영하거나, 포털에 ‘인스피아’를 검색해서 구독해주세요.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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