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미술품 렌털료 年 8% 지급” 유혹… 1600억 ‘폰지 사기’ 의혹 [심층기획-아트테크 투자 사기 기승]
신규고객 유치해 현금 돌려막기 정황
“빌려줬다는 그림들 전부 창고에 쌓여”
400여명 피해 추정 … 1인당 최대 3억
2023년 청담동 갤러리서도 유사 사건
최소 200명에 돈 못 돌려줘 고소당해
미술품 가격 평가기준 없어 사기 취약
전문가 “아트테크 시장 전체 불신 우려”
갤러리 관계자, 자격증 운영 협회 설립
자사 직원 전문가 둔갑시켜 영업 활동
‘정부 인증’ 강조해 유망 직업으로 홍보
느슨한 제도 탓 과장광고 등 문제 지적
유명 배우를 광고모델로 내세워 미술 투자 상품을 판매한 연매출 500억원대의 A갤러리가 ‘폰지 사기’ 논란에 휩싸였다. 서울 동대문구에 본사를 둔 A갤러리는 고객이 미술품을 구매하면 이를 필요로 하는 곳에 대여해 매달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는 투자 상품을 중개했는데, 대규모 미정산 사태를 일으키고도 이를 숨긴 채 신규 고객을 유치해 현금을 돌려막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달 청담동 모 갤러리 대표가 유사수신 및 사기 혐의로 구속 송치된 데 이어 또다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전문가들은 ‘아트테크(아트+재태크)’ 시장 전체의 신뢰가 의심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7월 갤러리 김모 대표를 사기 및 유사수신 혐의로 동대문서에 고소한 직원 B씨는 “갤러리가 외부에 경영 악화 사실을 숨긴 채 직원들에겐 ‘영업만이 살길’이라며 새 고객 유치를 강권했다”며 “최근까지도 밀린 대금을 15개월 뒤 150%로 지급하겠다는 둥 핑계를 대며 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고 털어놨다. B씨는 직원이면서 이곳에서 미술품 투자 계약을 맺은 고객이다.
A갤러리는 애초에 고객들에게 렌털료를 지급할 만큼 충분한 대여 계약을 맺지 않았다. 내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하반기 갤러리에서 미술품 357억원이 판매되는 동안 갤러리가 벌어들인 대여료는 1억1100만원에 그쳤다. 실사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기준 거의 1년치 판매분에 해당하는 114억원의 상품이 재고로 남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B씨는 갤러리의 주식 판매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갤러리 내부 자료에 따르면 A갤러리는 올해 미정산 사태를 숨긴 채 회사가 100억원 상당의 투자를 유치했다는 대외비 자료를 만들고, 개인 투자자들에게 “공모가보다 저렴하게 주식을 살 수 있다”며 미상장 주식을 판매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작성된 실사보고서에는 지난해 7월 D투자조합으로부터 2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는 내용뿐이다. 정황상 정확하지 않은 투자 규모가 담겼고, 공모가 자체도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D투자조합 대표이사 김모씨는 지난해 7월부터 A갤러리 이사로 취임했다.
실제로 이렇게 A갤러리의 주식을 산 김모(48)씨는 매매계약을 체결했지만 주권미발행확인서를 받지 못했고, 자신이 주주현황에 등재되지 않은 것을 보고 비정상 거래로 의심하고 있다.
갤러리가 애초에 부풀린 가격으로 그림을 판매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갤러리는 투자상품을 홍보하면서 그림 판매가는 업계에서 인정받는 한국미술협회(미협) 호당 가격대로 책정된다는 점을 내세웠다.
세계일보는 해명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갤러리에 통화를 시도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미술 투자를 내세운 갤러리가 억대 미반환 사태를 일으킨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E갤러리는 A갤러리와 거의 유사한 대여 수익 형식의 미술투자 상품을 내세웠다 최소 200명의 투자자에게 돈을 돌려주지 못해 고소당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E갤러리 대표·관계자 등 3명을 사기 및 유사수신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홍 교수는 “미술품의 특성 자체가 조각투자에 적합하지 않은 면이 있다. 규제를 통해서도 풀기 어려운 문제”라면서 “미술품 투자는 특히 조심해서 접근해야 하고, 결국 미술품 투자는 개미들이 할 게 아니라 전문가들이 거래를 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자격증 남발하고 ‘다단계 영업’에 악용도
A갤러리가 민간자격증 제도를 이용해 사실상 건실한 업체로 포장한 정황도 있다. 갤러리 관계자들이 갤러리와 무관해 보이는 협회를 설립하고, 협회에서 민간자격증을 발급해 자사 영업직을 외부 검증을 거친 전문가처럼 둔갑시킨 것이다.
특히 느슨한 민간자격 제도 때문에 최초 심사만 통과하면 누구나 별다른 검증 없이 자격증을 운영할 수 있어 이 같은 악용 사례를 막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9일 취재를 종합하면 A갤러리는 갤러리 영남지역단 부사장 장모씨가 대표로 있는 사단법인 한국아트딜러협회를 통해 사실상 자사 내에서만 통용되는 ‘아트딜러’ 민간자격증을 운영했다. 2019년 A갤러리가 직접 동명의 자격증을 등록했다가, 2021년 협회를 설립해 재차 등록했다. 최근 A갤러리가 대규모 미지급 사태를 일으키면서 현재 협회 홈페이지에도 시험 접수가 잠정 중단된다고 공지된 상태다.
해당 자격증의 실상은 이미 난립해 있는 수많은 민간자격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격시험은 협회에서 제공하는 강의를 수강하면 누구나 손쉽게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민간자격정보서비스에 따르면 A갤러리의 아트딜러 자격은 2022년 2348명이 취득했으며 당시 합격률은 95.4%에 달했다.
자격증 권유 과정에서 다단계 영업이 이뤄진 정황도 드러났다. A갤러리에서 딜러로 활동한 직원 B씨는 “자격증 취득에 필요한 수강료가 36만원인데, 추천인 코드를 입력하면 추천한 사람에게 18만원이 돌아가는 구조”라며 “그림 중개보다도 수익률이 좋아 오로지 자격증 영업만 하는 직원이 있을 정도였다”고 고발했다.
민간자격증에 대한 과장 광고와 허술한 관리는 수년째 지적된 문제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직능원)은 민간자격 최초 등록 시 국가자격 관련 법령 위반 여부만 따지고 이후 민간자격 관리에는 완전히 손을 놓고 있다.
직능원 민간자격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운영되고 있는 민간자격은 총 1만5489개 기관에서 신청한 5만5216개에 달한다. 대부분은 실체 없는 자격증이다.
8일 기준 문체부 산하에 등록된 민간자격 1만8580개 중 응시·취득자가 0명인 ‘유령 자격증’이 1만7410개(93.65%)에 달했다. 이 중 지난해 100명 이상이 응시한 자격은 123개뿐이었다.
윤솔 기자 sol.yun@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처럼 결혼·출산 NO”…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서 주목받는 ‘4B 운동’
- “그만하십시오, 딸과 3살 차이밖에 안납니다”…공군서 또 성폭력 의혹
- “효림아, 집 줄테니까 힘들면 이혼해”…김수미 며느리 사랑 ‘먹먹’
- “내 성별은 이제 여자” 女 탈의실도 맘대로 이용…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단독] “초등생들도 이용하는 女탈의실, 성인男들 버젓이”… 난리난 용산초 수영장
- ‘女스태프 성폭행’ 강지환, 항소심 판결 뒤집혔다…“前소속사에 35억 지급하라”
- “송지은이 간병인이냐”…박위 동생 “형수가 ○○해줬다” 축사에 갑론을박
- “홍기야, 제발 가만 있어”…성매매 의혹 최민환 옹호에 팬들 ‘원성’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