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는 감금·강제노역, 죽어서는 해부용 실습 주검으로

고경태 기자 2024. 9. 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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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대전의 부랑인수용시설인 성지원이 사망한 부랑인 주검을 의과대학 해부실습용으로 무단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충남대로부터 제출받은 '천성원 사건 사망자 해부실습용 교부 현황'을 보면, 사회복지법인 천성원 산하 성지원이 부랑인 수용 업무를 시작한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충남대 의과대학에 넘긴 해부용 주검은 113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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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신병각서 (충남 천성원 산하 양지원). 진실화해위 제공

1980년대 대전의 부랑인수용시설인 성지원이 사망한 부랑인 주검을 의과대학 해부실습용으로 무단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부산 형제복지원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기록으로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충남대로부터 제출받은 ‘천성원 사건 사망자 해부실습용 교부 현황’을 보면, 사회복지법인 천성원 산하 성지원이 부랑인 수용 업무를 시작한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충남대 의과대학에 넘긴 해부용 주검은 113구다. 이 시기 충남대가 인수받은 해부용 주검 117구의 97%에 이른다.

충남 천성원 산하 성지원 사망자 시신에 대한 사체교부신청서(왼쪽)와 사체교부증명서. 진실화해위 제공

살아서는 부랑인 수용소에 강제수용당하고 가혹 행위와 독방 수용, 강제노역 등에 시달렸던 이들이 죽어서도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해부실습용으로 넘겨지는 인권침해를 당한 셈이다.

진실화해위는 “대부분 사망 당일 또는 그 다음날 사체교부신청서가 의과대학으로부터 대전시에 접수되어 곧바로 시체가 교부된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진실화해위는 “성지원은 수용자 중 사망자가 발생하면 이들을 신속하게 ‘무연고 추정 시체’로 분류하여 의과대학에 넘기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며 “성지원처럼 사망자 대부분을 무연고 시체로 분류하여 의과대학에 신속하게 이송한 것은 의도적으로 연고자 인계 노력을 방기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처럼 시설 수용자 주검을 무연고 주검으로 일괄 분류해 해부실습용으로 넘기던 관행은 주검 처분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점에서도 문제라는 게 진실화해위의 설명이다. 헌법재판소는 2015년 11월, 시체해부보존법을 이어받은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 12조 1항(인수자가 없는 시체의 제공 등)에 대해, 생전에 본인의 주검이 해부용으로 제공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의사 표시를 명시적으로 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지 않아 침해의 최소성 원칙 및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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