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배민·쿠팡 갑질 못 잡는 플랫폼 사후규제, 너무 헐겁다

2024. 9. 9.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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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국민의힘이 9일 국회에서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 및 티메프(티몬+위메프) 재발 방지 입법 방향’을 위한 협의회를 열고,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갑질 행위를 규제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맞춰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장지배적 플랫폼 사업자의 자사 상품 우대, 끼워 팔기, 경쟁 플랫폼 이용 방해, 타사 플랫폼보다 유리한 거래조건 강요(최혜대우 요구) 등 4대 행위를 규제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윤곽을 공개했다. 당초 불공정·반칙 행위들을 폭넓게 규율하는 별도 입법에서 기존 법 개정으로 후퇴한 형식도 문제지만, 그에 담긴 내용 역시 기대에 못 미쳐 약발이 먹힐지 우려스럽다.

빅테크 등 거대 플랫폼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문제는 그간 제재에 걸리는 시간까지 너무 길어 ‘제재의 신속성’이 핵심 관건이었다. 이에 공정위는 주요 플랫폼을 ‘지배적 사업자’로 미리 지정해 사전 관리할 수 있는 ‘사전지정제’를 검토했지만, 이번 개정안에는 또 빠졌다. 이미 유럽연합(EU)의 디지털 시장법(DMA)에 도입된 사전지정제는 거대 플랫폼의 남용 행위 입증 전 단계인 시장 획정 등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무죄 추정 원칙에 어긋난다는 플랫폼 업계 반발이 커지자 도입 발표를 미루더니 결국 포기했다.

공정위는 또 연간 매출액 4조원 이하 플랫폼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쿠팡이나 배달의민족 등은 빠지게 된다. 쿠팡은 자체 브랜드(PB) 상품 판매를 늘리기 위해 검색 순위를 조작하고, 임직원들을 동원해 자사 상품에 7만개가 넘는 후기를 달아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한 업체다. 음식 배달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한 배민은 지난달 배달 중개수수료를 갑자기 올려 중소상인과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나아가 티메프 사태를 막기 위해 이날 함께 발표된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에서도 티메프가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대규모 유통업자 지정 기준이 ‘연간 중개거래수익 1000억원’으로 될 경우, 매출액이 1000억원 넘는 티몬과 위메프라도 중개거래수익은 명확하지 않아 제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의 물을 흐리는 대어들이 이렇듯 눈앞에서 빠져나가는데 제도의 성과가 있겠는가.

미국 정부는 구글도 반독점법 위반으로 제소했다. 시장지배력을 악용해 경쟁자들을 배제하고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했다면 기업 분할도 불사하는 게 자본주의 본고장 미국의 확고한 원칙이다. 또 고삐 풀린 빅테크 횡포를 막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다. 한국도 플랫폼 기업 혁신의 싹을 자르지 않으면서 그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틀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9일 국회 국민의힘 회의실에서 열린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 및 티몬·위메프 사태 재발방지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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