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광장] 미국에 한국의 핵능력 강화 설득해야

파이낸셜뉴스 2024. 9. 9.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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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민주·공화 양당이 발표한 정강에서 '북한 비핵화' 목표가 명시되지 않아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8월 공개한 민주당의 정강은 '북한의 핵미사일을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적시했지만, 북한 비핵화가 최종 목표라는 점을 밝히지 않았다.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발표한 정강에서는 '비핵화라는 장기적 목표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앞서 7월 공개된 공화당의 정강에는 비핵화뿐 아니라 북한에 대한 언급 자체가 아예 없다. 이는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으며 불가역적인 핵폐기(CVID)'를 북핵 정책의 목표로 못 박은 2016년과 2020년 공화당 정강과 분명 온도 차이가 난다.

민주당 정강 작성에 참여한 콜린 칼 전 국방부 차관은 "비핵화는 목표로 남아 있으며, 해리스 행정부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지만 "단기간에 비핵화할 수 있다고 보는 전문가는 없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북한 비핵화가 미국의 대외정책 목표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당장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 억제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사실 북한 비핵화가 비현실적이라는 인식은 미국 내에 오래전부터 팽배해 있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정보국장(DNI)을 지낸 제임스 클래퍼는 재직 당시인 2016년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가망이 없다(lost cause)'"며 현실적인 방안은 북한의 핵능력을 "제한(cap)하는 것"이라고 발언해 국내에 큰 파장을 일으켰는데, 정작 미국 내 많은 전문가는 정확한 현실 인식이라는 반응이었다.

북한 비핵화가 비현실적인 이유는 우선 핵무기가 유일한 생존의 보장인 북한 체제의 특성 때문이다. 둘째, 북한 정도의 핵무기 능력을 보유한 어떤 국가도 이를 포기한 전례가 없다는 사실이다. 셋째, 신냉전의 '진영(鎭營)화'가 심화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핵미사일 질주를 비호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비핵화라는 현실성 낮은 정책 목표를 반복해 제시한다면 유권자의 피로감만 증폭시킬 수 있다. 양당의 정강에는 이런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차기 미국 행정부의 대북 핵정책은 상황의 '관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카멀라 해리스가 당선된다면 북한 핵을 동맹과의 협력을 통한 '억제'로 관리하려 할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시즌2'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 바이든 행정부의 북핵 정책 연장선에서 이해하면 될 듯하다. 그러면서 대북정책은 미국의 외교정책 우선순위에서 계속 뒷전으로 밀릴 것이고,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고 계속 증진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복귀한다면 김정은과의 개인적 관계를 통해 북핵 문제를 관리하려 할 것이다. 만약 김정은과 군축협상이라도 벌인다면, 이는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며 문제를 관리하는 정책이기 때문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한국의 핵무장 여론은 더 비등할 것이고 한미동맹 무용론까지 불거질 수 있다.

한국의 북핵 정책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한미 당국은 확장억제 개선과 강화를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고, 이러한 노력은 적지 않은 성과로 이어졌다. 미국의 핵전략자산 전개에 한국의 참여를 제고할 수 있는 유의미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조차도 확장억제 강화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 비핵 동맹국들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핵정책에 대한 논의가 수면으로 부상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핵보유국이 된 북한, 세계 최강 핵무기 국가의 길을 가고 있는 중국, 핵 선제공격을 위협하는 러시아. 이 세 국가가 상부상조하며 '다중(多重) 핵 위협'을 가하는 시나리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차기 행정부에 한국의 핵 능력 강화를 설득할 논리는 상당히 강력해 보인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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