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우키시마마루호 폭침 사건
1945년 8월15일 한반도 인구 8%에 해당하는 약 210만명의 조선인이 일본에서 해방을 맞았다. 이들 중 70만명이 일본에 남았고, 140만명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들의 귀향길은 순조롭지 않았다. 귀환 수단은 선박이 유일했고 그마저도 자리를 얻기 어려웠으며 항해 도중 숨진 이도 많았다. 가장 비극적 사례는 ‘우키시마마루(浮島丸)호 폭침 사건’이다.
그해 8월22일 일본 본섬 최북단 아오모리현 오미나토에서 조선인 강제동원 노무자 수천명을 태운 일본 해군 수송선이 출발했다. 이 배는 이틀 뒤 교토 앞바다에서 폭발로 침몰했다. 당시는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하지 않은 때로 일본 군부가 수송 책임을 졌다. 하지만 이 사건의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이 배가 미군이 설치한 기뢰에 부딪쳐 폭발해 승선자 3735명 중 524명이 숨졌다고 하면서도 승선자 명부는 침몰 당시 상실돼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재일 사학자 김찬정의 <우키시마마루, 부산항으로 향하지 않았다>(1984) 등 많은 의혹이 제기됐다. 2014년엔 승선자가 8000명에 달했다는 외무성 자료가 발견됐고, 2016년 이 배가 폭탄을 싣고 출항했다는 방위성 자료가 나오며 고의 폭침설도 제기됐다. 유족과 한·일 시민사회의 진상규명 요구에 일본 정부는 응답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최근 기시다 후미오 총리 방한을 앞두고 우키시마 승선자 명부 일부를 한국 측에 제공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지난 3·5월 일본 언론인의 정보공개 청구 후 명부 존재를 마지못해 인정했고, 그중 일부를 이번에 내놨다. 퇴임하는 일본 총리의 이례적인 방한을 앞두고 ‘방한 선물’로 포장하자는 쪽으로 사고 회로가 작동한 듯하다. 하지만 많은 유족이 부모·형제를 불귀의 객으로 보내고 그 진상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일본 정부가 자발적으로 이 자료를 내놓은 게 아니어서 향후 책임 인정과 배상 문제에 협조할지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명부 제공은 한·일 간 새로운 갈등의 시작일 수 있다.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사람이 거의 남지 않았지만, 그 시대가 남긴 고통과 상처는 후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고 깊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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