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당시 '혁명방해죄'로 옥고 치른 헌병대장, 62년 만에 '무죄'

서어리 기자 2024. 9. 9.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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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 재판부 "'혁명 방해 '고의' 아냐"…유족 측 "소급입법 문제 안 다뤄 아쉽지만 명예 회복 의미"

5.16 쿠데타 당시 쿠데타 병력을 저지해 이른바 '혁명방해죄'로 징역 15년 선고를 받은 후 2년여 옥고를 치른 고(故) 방자명 전 헌병 범죄수사대장이 62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관련기사 : 박정희 거듭 구한 은인, 제대로 뒤통수 맞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2형사부(재판장 권성수)는 지난 5일 방 전 대장의 유가족이 제기한 재심 1심 사건에서 방 전 대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위시해 이뤄진 군사 쿠데타 당시 육군 헌병대 제15범죄수사대 대장이었던 방 전 대장은 혁명 행위를 적극적으로 제지‧방해했다는 이유로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 위반, 이른바 '혁명방해죄'가 인정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가 인정한 방 전 대장의 혐의는 크게 두 가지로, △쿠데타 세력이 한강을 넘어오지 못하도록 방어하면서 부하들에게 '발포해서라도 막으라'고 지시했다는 점, △쿠데타 이후 중앙정보부 습격을 모의했다는 점이다. 당시 혁명재판소 1심 재판부는 징역 15년형을 선고했고, 당시 최고심이었던 상소심(2심) 재판부는 방 전 대장의 상소를 기각함으로써 원심 내용을 확정했다.

문제는 방 전 대장에 대한 유죄 판결 근거가 된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은 재판부가 문제 삼은 방 전 대장의 '혁명 방해 행위' 이후인 5.16 쿠데타 이후인 1961년 6월 22일 제정됐다는 점이다. 사후에 제정된 법규범을 과거의 행위에 대하여 소급 적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소급효금지의원칙'을 거스른 판결인 셈이다.

방 전 대장에 대한 인신 구속 절차는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방 전 대장은 1961년 7월 중앙정보부에 연행된 후로 불과 석 달 만인 1961년 10월 기소돼 이듬해 1월 15년형이 확정돼 징역을 살게 됐다. 그 후로 2년 만인 1963년 8월 특별사면됐다.

방 전 대장의 유족은 방 전 대장 사망 후 부친의 명예 회복을 위해 지난 2022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는 한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도 진실규명을 요청했다.

진화위는 당시 정보‧사법기관의 연행 및 유죄 판결의 문제를 너르게 지적했다. 진화위는 지난해 2월 결정문을 통해 "중앙정보부가 영장 없이 불법 체포, 감금하고 구속기간을 초과해 구속 상태로 수사함으로써 영장주의를 위반했다"면서 "당시 군인으로서 상관의 지시에 따라 정당하게 적법하게 행위했음에도 법을 소급 적용하는 등 부당하게 기소됐으며 2심제로 유죄 판결이 확정돼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받았다"고 했다.

나아가 "당시 박정희 등 일부 군인들은 헌법에서 정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군인으로서 응당 상관의 지시에 따른 방자명에게 '반혁명행위'라는 오명을 씌워 유죄 확정을 받게 함으로써 그의 명예와 인격권을 크게 실추시켰다"며 "중대한 인권 침해 사건임이 인정된다"고 했다.

아울러 국가와 중앙정보원의 후신인 국가정보원에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유족에 사과하고 화해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번 재심 재판부는 영장주의 위반‧소급효금지의원칙' 위반 등을 지적한 진화위 결정과 달리 '고의 여부'에 초점을 뒀다.

재판부는 "범행의 대상이 되는 '혁명 행위'의 범위가 불분명하다"면서, "이 사건 당시 피고인에게 자신의 행위가 혁명 행위를 방해하는 것이라는 점에 대한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설사 혁명 행위를 방해하는 행위를 한 것이라고 보더라도 당시 피고인은 군인으로서 상관의 명령에 따라 그 명령을 수행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이상 피고인이 상관의 명령을 수행한다는 인식을 넘어 군사혁명위원회의 혁명 행위를 고의로 방해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과 용인이 있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고 판시했다.

방 전 대장 유족의 법률대리인인 범유경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이번 재심 판결에 대해 "망자에게 적용된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의 위헌성을 정면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은 다소 아쉬운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피고인은 군인으로서 쿠데타를 막으라는 상관 지시에 복종하였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선고받고 파면됐다는 점에서 이번 무죄 판결은 평생 불명예를 안고 살아야 했던 피고인과 그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방 전 대장의 유족 측은 <프레시안>에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24년이다. 아버님이 살아계셨을 때 무죄 판결을 받았다면 무척 기뻐하셨을 텐데 무척 아쉽다"면서도 "아버님이 하신 행동이 정당했다고 법원이 인정했다. 올바른 판결을 해주신 사법부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1961년 5.16 당시 박정희 소장과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의 모습. ⓒ연합뉴스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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