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삶에 파스텔 위로···'파티'가 열린다
18세기 유행한 파스텔화 재해석
동양적·몽환적 초상화로 유명세
리움 소장 고미술품과 컬래버 등
호암미술관서 4개월간 68점 전시
6개월간 용인서 신작벽화 제작도
금속 테를 두른 아치형의 캔버스 속에서 빨간 머리의 여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면을 응시한다. 여인의 상반신은 뱀처럼 똬리를 튼 7~8마리의 사슴이 감싸고 있다. 사슴들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친숙하다. 이 사슴은 조선 18세기에 그려진 ‘십장생도 10곡병’에 등장하는 이미지 중 하나다. 또 다른 캔버스에서는 초록색 숲을 배경으로 한 여성을 만나볼 수 있다. 여성의 상반신은 신선 이철괴의 호리병과 리움 미술관의 소장품인 ‘청자 동채 연화문 표형주자’를 모티브로 한 비색 호리병이 대신한다.
비현실적이면서도 동양적이고 몽환적인 이 초상화들은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스위스 출신 스타 작가 니콜라스 파티(44)의 신작 ‘사슴이 있는 초상’과 ‘청자가 있는 초상’이다.
파스텔을 활용해 상상으로 가득한 세계를 표현하는 니콜라스 파티의 대규모 개인전 ‘더스트’가 경기도 용인의 호암 미술관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파티는 미술사의 다양한 작품을 일종의 ‘보물창고’로 여기며 이를 샘플링해 자신 만의 독자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스타 작가다. 그는 18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이후 잊혀진 파스텔화를 소환해 풍경, 정물,초상 등 회화의 전통 장르를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동시대 미술계에서 크게 주목 받고 있다. 지난 2022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그의 대형 작품이 약 88억 원에 낙찰 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4개월 이상 진행될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구작 48점과 신작 20점,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6개월 여간 용인에 머물며 제작한 벽화 5점 등을 선보인다. 전시의 제목 ‘더스트(먼지)’는 한 번 사용하면 먼지처럼 가루를 만들어내고 언젠가 흩어져 사라져 버리는 파스텔 고유의 특성을 회화적 재현의 주된 방식이자 주제로 받아들이는 파티의 작품 세계를 상징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파스텔이라는 재료를 인간과 비인간 종, 문명과 자연의 지속과 소멸에 대한 사유로 확장하는 도구로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의 시작은 미술관 로비 중앙계단에 설치된 벽화 ‘폭포’다. 구불구불한 붉은 산 사이를 가로지르는 기이한 물줄기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향하는 동굴처럼 관람객을 신비한 세계로 인도한다. 실제로 미술관은 동굴을 상상할 수 있는 아치형 문을 전시장 곳곳에 설치했다. 문은 한쪽 전시실에서 다른쪽 전시실로 연결돼 있는데, 각 전시실이 미로처럼 흩어져 있어 관람객들은 필연적으로 한 번쯤 길을 헤매게 된다.
겨우 찾아간 전시실에서는 거대한 벽화와, 리움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미술품을 모티브로 한 신작 초상들을 만나볼 수 있다. 작가는 지난해 전시 준비를 위해 리움 미술관 수장고를 직접 방문해 작품의 아카이브가 될 미술관의 고미술 소장품을 둘러봤다. 그는 “전시 기획 초기 단계부터 한국의 예술품을 전시에 함께 포함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았다”며 “처음엔 낯설기도 했지만 굉장히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됐고, 잘 알지 못했던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같은 절차를 거쳐 선정된 문화유산은 장생과 불멸의 염원을 담아내는 ‘십장생도 10곡병’과 김홍도의 ‘군선도’ 등이다. 작가는 이들을 재치있게 샘플링해 상상 속 여덟 신선(팔선)을 형상화 한 신작 초상 8점을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다.
작가가 콜라주로 활용한 고미술 작품을 실제로 전시실에 비치한 미술관의 기획력도 눈 여겨 볼 만하다. ‘동굴’ 그림 앞에는 실제로 조선시대의 ‘백자 태호’가 놓여 있고 ‘공룡’ 연작은 청동운룡문 운판에 재현된 용(龍)의 이미지와 함께 놓인다. 또한 '주름'과 '곤충' 연작은 겸재 정선의 '노백도'와 함께 전시돼 있어, 파티가 호암 미술관에서 자신 만의 파티를 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전시는 내년 1월 19일까지 유료 관람.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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