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정 협의체도 한계 있을 것···수시모집 시작에도 의료계 “백지화”
여야가 ‘여·야·의·정 협의체’를 구성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협의체가 현재의 의·정 갈등을 봉합하는데 극적인 역할을 해내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전문가 의견이 나온다. 2025학년도 의대 증원 결정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가 여전히 팽팽히 맞서고 있는 데다, 의료계도 직역마다 입장이 다 달라 대표성을 가지고 협의체에 참여하는것 자체가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협의체를 통한 대화는 그것대로 진행하되, 결국 대통령실의 적극적인 의지와 의료계의 입장 변화 없이는 사태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다.
여야는 9일 의대 증원 등 의료 개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협의체에 의료계가 참여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국회가 중심이 되어 의·정 갈등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과거 사례와 의료계 의사결정 구조 등을 감안했을 때 정치권이 중심이 되는 협의체 구성이 애초에 어렵다고 보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다른 해법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 의사 집단행동을 경험한 의사 출신 신현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0년 의·정합의를 통해서 의사 집단행동이 마무리될 때 의협회장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회장의 리더십과 신뢰도가 추락했다” 며 “의료계에서는 그같은 합의를 실패사례로 보고 있기 때문에 대표 1명이 들어가서 정부와 협의하는 구조 자체를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계는 결국 의대 증원 문제는 대통령실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대통령실이 전면에 나서서 뭐라도 하겠다는 메시지를 주면서 신뢰를 보여주지 않으면 의료계와의 대화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도 여·야·의·정 협의체를 통해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원장은 “대표성을 가지는 1인을 뽑을 수도 없을 것이고, 그 사람이 들어가서 의대증원을 일부라도 찬성하면 난리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조 원장은 “여야가 나서서 의사 수 증원이라는 기본 원칙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는 모습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협의체의 의미가 있다”며 “내년도 의대증원 철회같은 의료계 주장을 정부가 절대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계는 무조건 거부만 할 것이 아니라 의대 교수 몇 사람이라도 참여해서 왜 의대 증원이 비과학적인지 말하고, 2026년도 증원 분에 대해서 의견을 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이날부터 2025학년도 수시모집 원서 접수가 시작됐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내년도 증원도 백지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의협은 이날 ‘의료정상화를 위한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정부가 2025년과 2026년 의대증원을 취소하고, 2027년 정원부터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위기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전공의들의 복귀”라며 “그들(전공의들)은 떠나면서 7가지 요구를 했는데, 그중 첫번째가 의대 증원 및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전면 백지화”라고 했다.
의협은 “정부는 수험생의 혼란을 얘기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증원 취소는 수험생과 학부모님들도 이해해 주실 것이라 믿는다”라고 말했다.
서울 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도 성명을 내고 정부가 의대 증원의 근거를 공개하고, 사태를 봉합할 ‘합리적인 단일안’을 먼저 제안해달라고 했다. 비대위는 “사태의 본질은 의대 증원이 아니라 2020년 의·정 합의안의 일방적인 파기로 대표되는 신뢰의 붕괴”라고 말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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