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당장 학교에 가지 않게 된다면

한겨레 2024. 9. 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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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메일함을 열자 이런 사연이 도착해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자퇴하고 싶어요.' 메일을 읽고 있자니 학교를 갓 떠났을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내일 당장 학교에 가지 않게 된다면, 당신이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될 적은 자기 자신일 거예요." 이 무시무시한 적은 우리의 약점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며, 손쉽게 우리를 무력화시키고, 절대 곁을 떠나는 법이 없다.

그러니 내일 당장 학교에 가지 않고 싶다면, 이것 하나만큼은 꼭 알아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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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ㅣ 학교 밖의 빛과 그림자
게티이미지뱅크

아침에 일어나 메일함을 열자 이런 사연이 도착해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자퇴하고 싶어요.’ 메일을 읽고 있자니 학교를 갓 떠났을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늘 지내던 집, 똑같은 방 안에 있는데도 모든 게 생경하게만 느껴지던 그날이.

평소대로라면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길을 지나, 정해진 시간표대로 하루를 보냈을 터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어떤 제약도 없이 늘어지게 잠을 자고, 질리도록 책을 읽고, 멍하니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학교를 오가며 지내던 나날이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빈틈없이 행복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났을 무렵, 거대한 진실 하나가 내 행복에 균열을 만들었다. 끝도 없이 쏟아지는 자유 속에서 내 인생을 망칠 수 있는 건 나 하나뿐이라는 걸 자각하게 된 것이다. 학교를 떠나고 나니 내 앞에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스승도, 규칙도, 의무도 사라지고 나 혼자만 오롯이 남은 것이다.

어느새 이 모든 자유가 족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무서운 일이었다. 막연한 두려움을 타파하고자 한 시간 단위로 시간표를 짰다. 마치 학교 시간표처럼, 오전에는 국어와 수학, 오후에는 영어와 과학을 공부하는 식이었다.

학교에 다닐 때보다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하리라 다짐했건만, 몇 주가 지나지 않아 다 그만두게 되었다. 학교와 맞지 않아 떠난 것이면서 학교의 방식을 고스란히 따라 하려 들었으니, 실패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청소년들이 자퇴 후 가장 처음 겪게 되는 어려움은 보통 시간 관리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자유 앞에 어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어떤 규제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다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자퇴하고 싶다는 청소년들에게 내가 전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조언은 바로 이것이다. “내일 당장 학교에 가지 않게 된다면, 당신이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될 적은 자기 자신일 거예요.” 이 무시무시한 적은 우리의 약점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며, 손쉽게 우리를 무력화시키고, 절대 곁을 떠나는 법이 없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학교 밖에는 시행착오를 거칠 시간이 넘쳐난다. 시간표를 따르는 데 실패한 나는 이내 그 계획을 모두 버리고 할 일 목록을 적기 시작했다. 목록에 적은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날 모두 마쳤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과목을 공부하고, 가끔은 이론서 대신 관련 서적을 읽으며 지식을 익혔다. 교칙이 사라진 나의 세상에서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물론 변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은 끝내 만들지 못했다. 아침마다 나 자신과 전쟁을 치르며 수없이 좌절했지만, 이내 내 패배를 받아들였다. 무리하게 일찍 일어나기보다는 할 일을 해내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학교 밖에서 나 자신과 싸우는 일은 지난하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마음껏 헤매고 실패하던 그 시간이, 내 삶에서 가장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러니 내일 당장 학교에 가지 않고 싶다면, 이것 하나만큼은 꼭 알아두기를. 나 자신과의 전쟁에는 끝이 없지만, 운이 좋다면 언젠가는 그 적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송혜교 홈스쿨링생활백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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