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약 만드는데 왜 토끼를 쓰나요…“동물실험, 이미 대체 가능”
라우라 비비아니 휴메인소사이어티(HSI) 백신 분과 총괄
“유럽 ‘토끼 발열성 실험’ 금지…한국도 대체시험 노력 필요”
“토끼의 ‘사형’ 집행이 취소되었습니다.”
지난 6월 유럽연합(EU)이 의약품 제조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요구하던 ‘토끼 발열성 실험’(RPT)을 ‘약전’(의약품의 제조·성능·품질 및 저장방법을 정한 기준)에서 완전히 삭제했다. 이로써 유럽은 내년 7월부터 백신 등 의약품의 안전성을 검사할 때는 반드시 살아있는 토끼가 아닌 ‘대체시험법’을 활용해야 한다. 살아있는 토끼를 대상으로 발열 여부를 시험하는 방법은 1912년 만들어져 사용되어 왔고, 1986년부터는 유럽연합 약전에까지 의무 사항으로 포함됐다. 오랜 기간 관행적으로 이어져 온 동물실험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유럽평의회는 이 소식을 전하며 ‘토끼들의 사형 집행이 취소되었다’(Rabbit Reprieve)고 표현했다.
그저 먼 나라만의 이야기일까. 국제동물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이하 HSI) 라우라 비비아니 백신분과 총괄은 지난 3일 한겨레에 “글로벌 제약 업계는 동물을 사용하지 않는 새 기술을 도입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며 “한국도 이러한 국제적 기준에 맞추기 위해선 대체시헙법 도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4~6일 서울 강남에서 열린 ‘2024 글로벌 바이오 콘퍼런스: 바이오의약품 동물대체시험법 워크숍’에 발표자로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워크숍에 앞서 지난 3일 비비아니 총괄과 서보라미 HSI 정책국장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 사옥에서 만나 동물 대체시험법의 필요성과 해외 도입 사례 등에 대해 들었다.
-‘백신분과 총괄’이란 직함이 낯섭니다. 단체 내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라우라 비비아니(이하 비비아니) “전 세계 백신 생산 기업들과 각각 나라 정부기관과 협력해 백신 제작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없애고, 새로운 기술이 이를 대체할 수 있도록 돕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의약품, 생리용품 각종 연구 등 여러 분야에서 동물실험이 진행되잖아요. 백신 영역에 특히 집중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비비아니 “백신을 만드는 과정은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살아있는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이용해야 하죠. 그러다 보니 ‘안전성’과 ‘유효성’을 중요하게 검증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이 각각 실험을 진행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실험보다 두 배의 동물실험을 하게 되는 겁니다. 저희는 이 과정에서 동물의 수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어요.”
비비아니 총괄은 2011년부터 ‘노바티스’,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등 여러 국제제약업체의 의약품연구소에서 일했으나 2017년 HSI로 자리를 옮겨 동물대체시험법의 확산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 “제약업체에서는 세분화된 제한적인 일을 하지만, 엔지오(NGO)에서는 더 다양한 이해 관계자와 국제 규제기관들을 만나 동물대체시험법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백신 실험에 동원되는 동물에는 어떤 동물들이 있나요?
비비아니 “주로 쥐(마우스, 랫트)와 기니피그, 그리고 토끼가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백신의 발열성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에는 살아있는 토끼가 이용돼요. 토끼 귀 혈관에 생산된 백신을 주입하고 체온이 많이 변하지 않으면 백신이 안전하다고 보는 거예요. 이 과정에서 토끼는 채혈과 체온계 삽입을 위해 케이지에 갇혀 있게 되죠. 유럽에서는 내년 6월까지 토끼 발열성 실험을 비동물성 실험인 ‘단세포 활성화 시험’(Monocyte activation test, MAT)으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이 시험법은 사람의 세포를 이용해서 발열성을 확인하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 더 정확하고 안전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전히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으면 안전하지 않다는 통념이 있기도 한데요?
서보라미 국장(이하 서보라미) “지금 해오고 있는 많은 동물실험은 수백 년 전부터 관행적으로 이어져 온 것들입니다. 오히려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다른 종인 동물을 실험해 사람의 반응을 알아본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들어맞지 않잖아요. 최근에는 실제 사람의 피나 세포를 이용한 ‘세포 기반 시험법’이나 컴퓨터로 화학 구조를 알아보는 ‘컴퓨터 모델링’, 사람 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하는 ‘오가노이드’ 혹은 ‘장기칩’ 기술 등 다양한 시험법이 개발돼 있어요.
다만, 실제 기술이 개발되었더라도 활용으로 이어지지 않아 안타깝죠. 코로나19 백신 독성 검사에 투구게의 혈액이 사용되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실제 투구게 혈액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독성을 실험할 수 있는 유전자 재조합방식(재조합 C인자)의 실험법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활용이 잘 안 되고 있어요.”
지난해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대한민국약전’을 개정해 투구게 혈액 사용을 최소화하는 시험법을 신설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 제품 승인을 위해 이 대체시험법을 활용하고 있는 국내 기업은 한 곳도 없다는 것이 서보라미 국장 설명이다.
-동물대체시험법을 약전에 포함한 것은 굉장히 혁신적인 일 아닌가요? 그런데도 잘 활용되지 않는 이유가 뭔가요?
비비아니 “기업이 새로운 시험법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노력뿐 아니라 정부의 협동이 필요합니다. 기업으로서는 대체시험법을 도입하려면 새 실험실과 생산 공정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러한 시험법이 정부의 규제·인증에서도 문제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죠. 때문에 기업이 동물대체시헙법에 대한 투자를 준비할 때 정부 또한 이 방법이 얼마나 정확하고 활용 가능한 것인지 계속 소통하고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고통받는 동물의 수를 줄인다는 의미 이외에, 또 다른 이점이 있을까요?
비비아니 “장기적으로 보면 동물대체시험법은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을 거예요. 또 ‘글로벌 규제 조화’라는 측면을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약·화학업계는 이제 한 나라에서만 제품을 판매하고 생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나라에서는 대체시험법으로 요구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동물실험을 하고 있다면 각국의 규제에 어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이미 글로벌 제약 업계는 동물을 사용하지 않는 대체시험법 도입에 앞장서고 있어요. 한국도 의약품, 화학물질, 백신 등에 무역 장벽을 겪지 않으려면, 이러한 세계적 추세에 맞출 필요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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