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딥페이크 성폭력, 가해자에게 한없이 너그러운

오세진 기자 2024. 9. 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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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허위영상물 편집·반포 등’ 기소 판결 분석해보니 대부분 ‘집행유예’
불법영상물 저장 매체·범죄수익 몰수 의무화 등 제도 개선 진전 없어
2024년 8월27일 진보당원들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해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연일 쏟아지는 불법합성물(사람 얼굴과 신체 사진을 성적인 사진·영상물과 합성) 성범죄 뉴스에 많은 여성이 분노하고 있다. 여성들은 그러면서도 두렵다. 언제 피해자가 될지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스엔에스)에 올린 얼굴 사진 삭제와 에스엔에스 계정 비활성화가 예방법으로 통용된다. 하지만 폭력 예방은 가해자가 할 일이다. 가해가 없다면 피해도 발생하지 않는다. 가해 예방과 재발 방지를 위해 형사사법제도가 있고 성교육이 존재한다. 그런데 지금의 형사사법제도가 가해자를 제대로 벌하고 있을까. 성교육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

대부분 신상 정보 포함 유포… 제작 의뢰받아 수익도 챙겨

불법합성물 성폭력 처벌 조항이 새로 담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이 시행된 건 2020년 6월25일. 법에서는 불법합성물을 ‘허위영상물’로 쓴다. 그 뒤로 2024년 9월3일까지 지난 4년 동안 가해자가 ‘허위영상물 편집·반포 등’이라는 단일 죄명으로 기소된 사건은 22건이다. 한겨레21은 이 사건들의 1심 판결문을 분석했다. 단일 죄명으로 좁힌 이유는 판결에 영향을 미친 요인이 무엇인지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기 위해서다. 표본 크기가 작긴 하지만 ‘허위영상물 편집·반포 등’ 사건 판결문 22건을 ‘카이제곱 검정’ 방식을 활용해 유포 위험, 피해의 심각성, 피고인의 동종 전과 유무 등의 변수와 형의 종류(형종)와의 연관성을 들여다봤다. 카이제곱 검정은 통계학에서 성별과 같이 여러 유형과 범주로 나눌 수 있는 데이터끼리 서로 연관돼 있는지를 분석하는 방식이다.

분석한 사건들을 종합하면 우선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다. 가해자들은 자신과 아는 사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여러 여성의 이미지로 불법합성물을 만들었다. 지인, 걸그룹 아이돌을 포함한 연예인, 인터넷 방송인(BJ), 교사, 옛 연인, 학교 동창, 모르는 사람 등이 피해자가 됐다. 가해자들은 자신이 가입했거나 운영하는 텔레그램 대화방과 엑스(X·옛 트위터)에 불법합성물을 퍼뜨렸다. 피해자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 거주 지역, 다니는 학교 등도 함께 유포했다.

또 ‘지인·스트리머(인터넷 방송인) 합사(합성사진의 줄임말) 판매합니다’라는 식의 글을 에스엔에스에 올려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불법합성물을 팔았다. 불법합성물 제작 의뢰도 받아 돈을 챙겼다. 가해자들은 아이패드에 설치된 영상물 편집 애플리케이션(앱), 컴퓨터 편집 프로그램, 텔레그램 딥페이크 합성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불법합성물을 손쉽게 만들었다. 대표적으로는 육군 제6사단 소속 군인이 2023년 1~3월 군부대 안에서 엑스에 광고 글을 올려 그걸 보고 연락한 의뢰인들한테 여성 연예인과 일반인 얼굴 사진을 받아 아이폰으로 불법합성물 970장을 만들어 판 사건(인천지법 김샛별 판사 2024년 4월17일 선고)이 있다. 이처럼 수많은 가해자가 거미줄같이 연결돼 성폭력을 거래한다. 이들 중 일부만이 재판에 넘겨졌다.

디지털성폭력은 지속적인 가해가 특징이다. 피해 촬영물이 한 번 퍼지면 완전한 삭제가 어렵다. 이 점에 착안해 판사가 형을 선고할 때 불법합성물 유포 위험성을 얼마나 고려했는지 알아봤다. 분석한 판결문 22건 가운데 불법합성물의 추가 유포 가능성을 양형 이유로 제시한 판결문은 8건(36.4%)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판사가 징역형을 선고한 사건은 5건이고, 나머지 3건은 징역형 집행유예(집행유예) 사건이었다. 반면 판사가 추가 유포 위험성을 언급하지 않은 나머지 14건에서는 집행유예 사건(11건)이 많았다. 징역형을 선고한 사건은 3건에 그쳤다.

정리하면 판사가 불법합성물이 널리 퍼져 피해자가 지속해서 2차 피해를 당할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을 때 가해자에게 징역형보다 가벼운 집행유예를 선고할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일부 판사는 “편집물이 전시된 시간이 길지 않고 곧바로 편집물을 삭제한 후 현재까지 편집물이 추가로 유포된 정황은 발견되지 않는다”(서울북부지법 임민성 판사 2021년 11월26일 선고)는 점을 형량 감경 요소로 고려했다.

2021년 10월2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열린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 제2차 권고안 발표 자리에서 서지현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 태스크포스(TF) 팀장(오른쪽)이 발표 화면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디지털성범죄 전문위’ 권고안 반영률 0%

그래도 되는 걸까. 디지털성폭력 피해자 상담, 피해영상물 삭제 지원 등을 하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2019~2020년 공론화된) ‘텔레그램 엔(n)번방 성착취 사건’ 피해영상물 삭제 건수는 2022년 기준 3만4094건이었고 지금도 유포가 지속하고 있다. 디지털성범죄가 더욱 위험한 이유는 인터넷이라는 초국가적 환경에서 어떤 제약도 없이 피해영상물에 접근할 수 있고, 언제든 소지하고 게시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삭제 지원 종료 후 1년이 지나 (피해영상물이) 갑작스럽게 재유포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성폭력 가해를 막아야 할 형사사법 시스템은 법률에 기초한다. 법률을 만드는 곳은 국회다. 그런 국회 역시 이 범죄에 손을 놓고 있다. 많은 전문가가 모여 밥상까지 차려줬는데 그 밥상을 걷어찼다. 문재인 정부 때 법무부가 만든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전문위)가 제시한 권고안이 제21대 국회 임기(2020년 5월30일~2024년 5월29일) 만료 전까지 단 하나도 법률에 반영되지 않은 일이 대표적이다.

2021년 8월 출범한 전문위는 현 정부가 2022년 5월 활동을 중단시킬 때까지 9개월 동안 성폭력 대응체계 전반에 대한 개선안을 11차례 발표했다. 전문위가 구체적인 안까지 내보이며 선보인 법령 개선안만 60여 개. 그중엔 디지털성폭력에 사용된 저장 매체의 몰수·폐기와 디지털성범죄로 벌어들인 범죄수익의 몰수·추징을 의무로 하는 규정을 법에 신설하는 권고안, 성범죄 구성요건을 ‘성적 수치심’으로 하지 않고 가해자 행위에 초점을 맞춘 ‘사람의 신체를 성적 대상으로 하는’으로 바꾸는 성폭력처벌법 개정 방안이 포함돼 있었다. 현행 성폭력처벌법이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는지 아닌지를 성범죄 성립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어 피해자가 부끄러운 감정 또는 심한 모욕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가해자의 성폭력이 죄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마련된 것이다.

2021년 7월 휴대전화 앱으로 피해자 사진을 다른 여성의 나체 사진과 합성해 유포하고 피해자 인적사항까지 공개한 피고인에게 판사는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인천지법 부천지원 김태현 판사 2022년 10월12일 선고). “합성사진이 다소 조잡한 점”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됐다. ‘조잡하다’는 것은 판사의 견해다. 범죄 구성요건이 ‘사람의 신체를 성적 대상으로 하는’으로 바뀌었다면, 즉 가해자가 피해자를 성적 대상으로 하는 합성물을 만든 사실만으로도 범죄 요건이 성립하도록 법을 고쳤다면 ‘조잡하다’는 판사 주관이 양형에 개입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2024년 9월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개원식에서 국회의원들이 선서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불법합성물 성범죄 피의자 대부분 10대

정부는 2024년 8월30일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 범부처 대책 회의’를 열고 몇 가지 대책 방향을 발표했다. 수사 강화, 피해자 지원 강화, 불법영상물 탐지기술 고도화가 핵심이다. 하지만 사후 조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야 성폭력을 막을 수 있다. 남성들 사이에서 여성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만연하고 그게 돈벌이까지 되는 건,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오히려 정상적인 것으로 감싸는 성폭력 문화 탓이다.

젠더 교육 연구단체 ‘파도’의 대표인 이유진 젠더 교육 강사는 “한국 사회 미디어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적 대상화에 거리낌이 없다. 아이돌 산업이 대표적이다. 10대 여성 아이돌에게 신체 일부가 드러나거나 몸매가 부각되는 옷을 입히고, 신체 일부가 확대된 사진을 상품 홍보에 사용한다. 또 성매매 피해자가 처음 성 산업에 진입하는 평균 연령이 15살 전후임을 고려하면, 미디어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아동·청소년을 성적 대상으로 소비하려는 수요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성교육은 생식기관, 2차 성징 같은 생물학적 성 지식만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다. 또 성폭력 예방교육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성적 행동을 할 권리가 있고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치 않는 성적 행동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 내 권리만큼 다른 사람의 권리도 소중하다는 사실 등을 알리는 것이 성교육이다.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을 이해하고 누구든지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도 가르친다. 성평등 교육이자 민주시민 양성 교육이다.

불법합성물 성폭력 가해자 중 상당수는 10대 청소년이다. 경찰청 자료를 보면 2024년 들어 7월까지 검거된 불법합성물 성범죄 피의자 178명 중 10대가 131명(73.6%)으로 가장 많다. 디지털 공간에서 피해자를 성적으로 모욕하고 괴롭히는 일을 ‘장난’ ‘놀이’로 인식하는 학생들이 있다. 3년째 성평등 강사로 활동 중인 고상균 남다른성교육연구소 소장은 “얼마 전에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특정 여학생의 외모를 비하하고 성희롱한 고교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했다. 그 여학생과 사귀는 남학생도 가해자였다”며 “남학생들이 ‘잘못인 건 알았지만 장난이었다’ ‘당사자는 모르는데 괜찮은 것 아니냐’고 했다. 피해자를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괴롭힌 건 아니니까 괜찮다고 인식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성교육이 이를 바로잡을 수 있다.

내실 없는 학교 성교육

하지만 전국 초중고교에서 하는 성교육 시간은 턱없이 짧다. 일례로 교육부가 2022년 12월22일 고시한 중학교 교육과정에 나오는 국어 수업시간은 1년에 약 147시간(3년간 총 442시간)이고, 영어 수업시간은 1년에 약 113시간(3년간 총 340시간)이다. 반면 초중고교가 교육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 ‘학생건강증진 정책 방향’ 지침에 따라 실시하는 성교육 시간은 1년에 15시간이다. 고상균 소장은 “학생들이 안전한 학교 환경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부가 매년 전국 시·도 교육청에 ‘학생건강증진 분야 주요업무 추진 방향’이라는 이름으로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 그런데 2023년부터 이 지침에서 (학교의 성교육 과정 편성·운영, 성교육 자료 개발 안내사항과 성교육 시 유의사항을 명시한) ‘학교 성교육 내실화’ 내용이 빠졌다”며 “정부가 사태 심각성을 인지하고 성교육이 일반 교과와 같은 교육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유진 대표는 “성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수업이 아닌 보건 또는 기술가정 교과에서 성교육을 일부 다루는 것은 교육 효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성교육은 젠더와 인권, 민주주의를 포괄하는 교육 영역이라는 점에서 국어, 영어, 수학보다 더욱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합성물 성폭력 사태가 10대 청소년만의 잘못은 아니다. 성폭력을 용인하는 남성 중심 사회가 근본적인 문제다. “교실 풍경은 어른들이 만든 사회의 거울이나 마찬가지다.” 이유진 대표의 말이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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