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남성과 여성의 ‘도피 없는 사랑’…“울고 싶으면 크게 우세요”
신작 ‘67번째 천산갑 ’ 들고 첫 방한
“대만은 동성혼 합법, 한국보다 낫긴 하지요”
올초 소설 ‘귀신들의 땅’으로 한국 독자와 벼락처럼 만난 대만 작가 천쓰홍(48)이 처음 방한했다. 지난 5월 판권 계약 뒤 석 달 만에 번역을 끝내고 막 국내 출간된 2023년 최신작 ‘67번째 천산갑 ’이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국내 첫 소개된 작품이 9개월 만에 1만5000부 판매된 데 힘입었으나, 작품은 이미 12개 언어로 읽히고 있다. ‘죽이겠다’ 협박하는 독자도 있지만, ‘위로받았다’는 독자들은 한국으로부터도 많았다고 한다.
“33살 때 쓰기 시작했는데 성숙지 않구나, 눈물을 덜 흘렸구나, 아직 쓸 때가 아니구나 싶었다. 그리고 43살 됐을 때 눈물도, 슬픔도, 뱃살도 충분하다, 나이 든 것 같다 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완성한 소설이 ‘귀신들의 땅’(2018)이다.”
말마따나 ‘귀신들의 땅’도, ‘67번째 천산갑’도 울고 울자는 소설이다. 작가의 처지와 감정이 공히 ‘원료’인 탓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실패자”로 소개한다. ‘귀신들의 땅’의 일화대로 지구본에도 표시되지 않는 작은 나라 타이완, 그중 도시 타이베이도 아닌 시골 용징 출신의, 가부장제와 남존여비가 공고한 문화권에서 서른살 커밍아웃을 한 소수자 중 소수자, 더군다나 직업이 ‘작가’ 아니냔 것이다.
“청소년 시절 슬픔을 많이 겪었고 자주 죽고 싶었지만 성장하면서 자신감을 얻게 됐다. 어렸을 때 수학책에 쓴 시를 친구들이 보고 게이라고 소리치기도 했는데…. 난 색깔도 목소리도 풍부한 편인데 생존하려고 나 자신을 숨기고 평범해지고자 노력해야 했다.”
‘흑백’의 천쓰홍을 천연색으로 복원한 건 다름 아닌 예술이었다. 9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작가는 말했다.
“세계문학과 별의별 영화를 보면, 다양한 세계가 있고 나의 색채도 드러낼 수 있구나 생각했다. 특히 고등학생 때 본 이안 감독의 동성애 영화 ‘결혼 피로연’(1993)은 대만인들의 사고방식과 영화 생태계를 많이 바꿨다. 보수적 사회에서 영화나 문학은 청춘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
이제 그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구원이 되는 이야기를 지어 전하고 있다. ‘귀신들의 땅’은 작중 누나만 다섯인 대만 시골 마을 출신 천톈홍을 통해 가부장·성·국가 질서로 억눌린 민중사를 풀어낸다. 제목의 뜻(‘열악한 땅’)처럼 주인공에게도, 저자에게도 대만은 떠나고 싶은 ‘황무지’였다.
“자유 없는 (국가 통제) 시스템 아래 흘렸던 눈물, 웃음 모두 연출, 연기이고 가짜다. 정상성이 부여되지 않은 사람, 성소수자나 억압받는 이들은 자신들 내면을 드러낼 수 없고, 시스템에 부합하도록 연기해야 했다. 그런 역사적 환경에서 사람도 사람이 아니고 귀신도 귀신답게 살 수 없다.”
‘귀신들의 땅’이 억압·비애의 역사소설이라면, ‘67번째 천산갑’은 욕망과 치유의 연애 소설로 거칠게나마 구분되겠다. 전자가 ‘어제’라면, 후자는 ‘오늘’이고 ‘내일’이다. 게이 남성(‘그’)과 이성애자 여성(‘그녀’) 사이 오랜 사랑과 우정, 헌신, 도달하진 못해도 도피할 필요 없는 세계에 대한 욕망으로 점진한다. 멸종위기종 천산갑은 소설의 현재와 과거를 잇는 장치이면서, 남자 주인공의 성정으로 빗대어진다. “작가의 성 정체성을 전면으로 내세운 작품”이 이번 소설이다.
“‘귀신들의 땅’ 경우 출판사는 안 팔릴 것 같다고 했어요. 제가 누나만 7명이라 10권씩만 사도 70권은 된다고 했죠. 한국 도처의 성소수자들도 연락을 많이 줬는데, 우리들 상황이 전세계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대만은 동성혼 합법(2019년)이라 한국보다 낫긴 하지요. 실패한 작가가 실패한 소설을 썼으니, 실패한 사람들에게 좀 더 자유롭게 다가가길 바랍니다.”
한낮의 슬픔, 당당한 슬픔을 꿈꾸는 작가는 기자회견 1시간 반 동안 웃고 또 웃으며 말했다.
“눈물의 힘, 슬픔의 힘을 믿어요. 울고 싶으면 크게 우세요, 그렇게 말하고자 하는 소설입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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