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자영업을 하던 장애인이 지난 5년 동안 받은 활동지원사 지원 내역 일부가 법이 정한 범위를 넘어섰다며 2억원 가량을 환수하겠다는 지방자치단체의 경고를 받고 압박감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었다. 유족과 활동지원사, 시민단체는 “일하는 장애인을 지원하는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일어난 참극”이라고 비판했다.
경기 의정부시에서 안마소를 홀로 운영하던 장성일씨(44)가 지난 4일 자신의 사업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장씨의 휴대전화 메모장에는 짤막한 유언이 적혀 있었다. 장씨는 “삶의 희망이 무너졌네. 장애가 있어도 가족을 위해 살았고 남들에게 피해를 안 주려고 노력했는데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 하니 너무 허무하네”라는 글을 남겼다.
지난 8일 장례식장에서 만난 유족들은 잘못된 행정이 장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입을 모았다. 장씨는 서른 살 이후 시각장애를 갖게 된 후천적 장애인이었다. 혼자서 두 아들을 키우고 부모를 부양하기 위해 안마사 자격증을 따고 점자를 익힌 그는 안마소에 취직해 일해오다 5년 전 직접 사업장을 차렸다. 장씨는 주말도 없이 거의 매일 일했는데 오전 8시가 되기 전 출근해 저녁 8시 넘어 퇴근하는 게 다반사였다. 그가 숨진 날도 퇴근 시간까지 연락이 되지 않자 가족들이 “너무 힘들어서 과로로 쓰러진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에 사업장을 찾았다가 숨진 그를 발견했다고 했다.
지난달 8일 의정부시청이 장씨의 사업장으로 감사를 나온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장씨는 사업장을 운영하며 활동지원사로부터 일부 잡무에 대한 도움을 받아왔다. 시청 측은 “활동지원사가 생업을 도와주는 것은 위법”이라며 장씨가 사업장을 운영하는 5년 간 받은 활동지원급여 2억여원을 환수조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행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은 활동지원사가 수급자의 생업을 지원하는 활동보조 행위는 금지하고 있다. 혼자서 일상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의 활동보조 지원이 생업 지원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법률로만 보면 시청 측이 장씨에 대해 했던 경고와 환수조치는 정당한 것으로 보인있다.
하지만 유족들은 억울해했다. 위법하고 문제가 있다면 지난 5년 동안 왜 활동지원사를 지원해줬느냐고 따졌다. 장씨의 매형은 “설령 위법한 부분이 있었다면 사업장을 연 지 1년째 되는 해에 분명히 감사가 있었을 것”이라며 “시청 측이 그때 당시에 지적하기만 했어도 바로 변상할 수 있었을 텐데 5년이라는 세월 동안 계속 지원을 해주다가 이제 와서 환수조치를 하겠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시청 측은 장씨에게 2억여원에 대해 분납 등 구체적인 안내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과 시민단체 측은 장애인 사업자에 대한 부족한 지원과 제도적 허점 등도 장애인들의 생업을 곤란하게 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올해 5월부터 ‘장애인기업활동촉진법’을 시행하며 일부 1인 중증장애인기업들의 업무 지원을 시범사업으로 실시하기 시작했다. 한쪽에선 장애인기업을 지원하면서 다른 한쪽에선 생업 지원은 안된다며 환수조치에 나선 것이라 제도 사이 간극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장씨도 유서에서 “현실과 행정이 하나도 안 맞네”라고 썼다.
최선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정책팀장은 “지원인을 장애인에게 연계하는 부처별 서비스가 일원화돼 있지 않아 생기는 문제”라며 “혼자서 안마소를 운영하는 시각장애인이 매우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러한 사각지대를 메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씨의 여동생은 “오빠는 거의 전맹 수준이라 익숙한 공간 외에서는 도움을 받지 못하면 생활을 못 하는 수준이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려 하는 것은 장애인들이 경제활동은 하지 말고 나라에서 주는 보조금 정도만 받고 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씨의 누나는 “결론은 사회적 제도의 구멍, 불합리함이 내 동생을 죽음으로 내몬 것 아니겠냐”며 “제2의 장성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싶어서 동생의 사연을 알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시청 측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 통화하면서 “감사는 매년 있었지만 그동안은 누락되는 등의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며 “사실상 환수조치는 장씨가 아니라 활동지원사가 소속한 업체에게 이뤄지는 것인데 이에 대해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 저희도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