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쓰홍 “보수적인 사회에서 영화나 문학은 청춘의 구원”
“<귀신들의 땅>이 한국에서 출간된 후, SNS를 통해 한국의 성소수자 분들로부터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대만의 농촌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작품 속에 담긴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었다는 말을 전해주었죠.”
지난해 말 출간돼 국내에서만 1만5000부가 팔리며 ‘타이완 문학 붐’을 일으켰던 <귀신들의 땅> 천쓰홍 작가가 ‘2024 서울국제작가축제’ 참석 및 최신작 <67번째 천산갑>의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귀신들의 땅>은 타이완의 양대 문학상인 금장상 문학도서부문상과 금전상 연도백만대상을 수상했고, 12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는 등 세계 각국에서 호평을 받았다.
그는 9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전작 <귀신들의 땅>에 대한 한국 독자의 반응을 소개하며 “타이완에서는 동성혼이 합법화돼 한국보다 좀 더 상황이 나을 거로 생각하겠지만,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대도시를 제외하고 농촌 등에서는 여전히 성소수자가 생존하기가 힘든 환경이다”라고 말했다.
타이완 문학계에는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동지(同志) 문학’이라는 말이 존재할 정도로 많은 성소수자 작가들이 활약하고 있다. 천쓰홍 작가 역시 그들 중 하나다.
전작 <귀신들의 땅>이 타이완의 ‘백색 테러’(1949~1987년 계엄령이 내려졌던 대만의 국민당 독재 시기) 당시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시골 마을 용징을 배경으로 한 일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억압받는 여성들과 동성애자의 고통과 슬픔을 그렸다면, 신작 <67번째 천산갑>은 ‘백색 테러’ 이후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은 유년 시절에 만나 평생에 걸쳐 우정과 헌신, 상처를 주고받은 한 동성애자 남성과 이성애자 여성의 관계를 고독과 치유라는 면모에서 그려낸다. 그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동성애자 남성과 이성애자 여성은 가부장제 관점에서 볼 때 특이한 관계다. 하지만 여성과 남성 성소수자 모두 가부장제 하에서 이등 시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작품은 가부장제 체제에서 여성이기에 겪어야 했던 수모와 고통, 성소수자가 겪는 트라우마 등을 아프게 드러낸다. “이 작품은 슬프고 어두운 내용의 소설이에요. 저는 눈물의 힘을 믿어요. 울음은 절대 창피한 일이 아니에요. ‘울고 싶으면 크게 우세요’라고 독자들에게 말하는 소설입니다.”
현재 그는 독일 베를린에 거주 중이다. 유년 시절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은 이안 감독의 영화 <결혼피로연>을 본 후, 언젠가 베를린에 가겠다고 결심했다. <결혼피로연>이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것을 알고 성소수자를 받아들이는 사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존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숨기느라 노력해 온 그에게 세계문학과 영화는 구원이었다. “제 고향 용징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 다른 세계에서 나의 색채를 드러내며 살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지요. 보수적인 사회에서 영화나 문학은 청춘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그럴 것이라고 믿습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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