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삶을 바꾼 작은 생물들…'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 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 = 고관수 지음.
성균관대 의대 미생물학 교실에서 항생제 내성세균을 연구하는 저자가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생물 이야기를 흥미롭게 소개한다.
미생물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생물이지만 그 중요성을 크기로 판단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인간은 미생물에 의존해 생존했다.
인류는 중요한 먹거리인 빵은 물론, 즐거움을 주고 때로는 각종 사고의 원인이 되는 술도 효모라는 미생물의 활동 덕분에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어떤 학자는 잘 익은 과일에서는 자연 상태에서도 알코올 발효가 일어나기 때문에 이런 음료에 잘 적응하는 원숭이 개체가 과일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고 결국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라며 효모가 인류의 진화에도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반면 미생물은 인류를 위협하기도 한다. 14세기 유럽을 휩쓴 페스트균은 유럽 인구의 3분의 1 정도를 죽음으로 내몰았고 중국 우한의 박쥐와 같은 동물에서 인간에게 전파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세계화 시대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인류의 발을 상당 기간 묶어놓았다.
미생물은 전쟁의 결과에도 영향을 줬다. 1차 대전 때 러시아가 혁명과 질병 등 여러 문제를 겪는 사이에 독일은 서부 전선에서 총공세를 펼칠 수 있었으나 이른바 스페인 독감이 독일 병영을 덮치면서 전황이 뒤집힌 것이다. 독일이 스페인 독감으로 주춤하는 사이 러시아와 손잡은 미군이 유럽에 도착했고 전쟁은 연합국(협상국)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근래에는 미생물을 이용해 암을 치료하는 세균 매개 암 치료법이라고 불리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세균으로 세포의 면역 반응을 활성화하거나, 항암제를 전달하는 벡터로서 세균을 활용하는 방법, 세균의 독소나 효소를 이용해 암세포를 파괴하는 방법 등이 혼용된다. 식중독을 일으키는 세균으로 알려진 리스테리아균이 인체의 면역체계를 활성화해 췌장암을 치료할 가능성까지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미생물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단순하게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 시각인지 돌아보게 한다.
지상의책. 264쪽.
▲ 과학문화, 난쟁이와 거인의 노래 = 김지연 지음.
과학사회학을 전공한 저자가 인류의 세계관 변화를 이끈 과학 지식의 발전 과정을 돌아보고 과학과 인문학의 분절 문제를 돌아보게 하는 16가지 이슈를 소개한다.
책에 따르면 수백 년 전에는 과학과 인문학이 대립하거나 명확하게 구분되는 학문이 아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조각가(1452∼1519)는 화가이자 조각가인 동시에 건축가이며 과학자였다. 하지만 20세기가 되자 과학자와 인문학자는 서로를 멸시하며 대립한다.
책은 과학적인 것과 비과학적인 것의 구분이 실제로는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일깨운다. 예를 들어 산소의 발견자로 흔히 프랑스 화학자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1743∼1794)를 떠올린다. 그는 '산을 생성하는 물질'이라는 의미로 산소라는 명칭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발견자 지위를 선점했지만, 산소가 산을 생성하는 물질이라는 그의 이해는 잘못된 것이었다. 영국 화학자이자 목사인 조지프 프리스틀리(1733∼1804)와 같은 다수의 학자가 산소에 관한 불완전한 발견을 했고 이런 경험이 공유되면서 최종적으로 산소가 등장했다고 책은 지적한다. 산소에 대한 이해는 라부아지에보다 프리스틀리가 더 정확했다고 한다.
열역학 제1법칙, 즉 에너지보존법칙이라는 과학적 이론이 영구동력기관을 만들려는 비과학적인 열망을 포기하도록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와 반대였다. 중세 때부터 영구동력기관을 개발하려고 시도했으나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자 사람들은 이런 시도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달았고 사람들의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설명하기 위해서 과학자들이 정립한 것이 에너지보존법칙이라는 것이다. 비과학이 과학으로 사람들을 유도한 셈이다.
책은 자연에 대한 종합적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과학 기술을 활용하다 위기를 자초한 사례를 통해 인간과 인간이 아닌 생물의 공존이 필요해야 함을 역설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살충제다. 해충이라는 개념은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는데 1940년대 이후 인간의 활동에 방해가 되는 유기체를 인간의 적으로 지목하면서 대두했다. 해충을 없애겠다며 DDT를 비롯한 살충제를 살포했지만, 살충제는 인간이 해충으로 규정한 곤충 외에 익충까지 죽였다. 또 물고기, 새, 포유동물까지 연쇄적인 죽음을 유발했다. 살충제에도 살아남은 모기는 내성을 지니게 됐고 인간은 더 강력한 살충제를 써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1962년 '침묵의 봄'이라는 저서에서 살충제의 위험성을 경고한 미국의 여성 생물학자 레이철 카슨(1907∼1964)은 해충이 인간 행동의 결과로 생겨난 존재라고 규정했다. 논쟁을 촉발한 카슨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폄하당하기도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미국은 결국 DDT 사용을 금지하고 환경보호국을 출범한다.
자유아카데미. 572쪽.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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