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 해부실습까지…집단수용시설 특별법 만드나

신심범 기자 2024. 9. 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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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 충남 100여구 확인

- 전국 생존 13명 진상규명 결정

- 그중 9명 형제복지원 수용 경험

- 국가 인권유린 밝힐 法제정 권고

- “시설단위 아닌 통합 피해조사를”


권위주의 정권기에 자행된 부랑인 집단수용시설 내 인권유린은 특정 시설의 일탈이 아닌 국가폭력이란 사실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 그 시절 부랑인으로 낙인 찍힌 아동은 시설을 ‘뺑뺑이’ 돌며 지옥과도 같은 삶을 견뎌야 했으며, 어느 시설이든 형제복지원과 다를 바 없었다는 점이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화위)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조사 결과를 토대로 진화위는 시설 단위를 넘어 “모든 집단수용시설 피해자 아우르는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1966년 새서울건설단 발족식 및 도로 정비공사 모습. 이 공사에 서울시립갱생원 수용자가 투입돼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한 수용자는 “급여를 모아 통장을 만들어 준다고 했으나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진화위 제공

9일 진화위는 전국 성인 부랑인 집단수용시설 4곳의 피해생존자 13명에 대한 진상규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진화위는 지난 6일 제86차 위원회에서 서울시립갱생원·대구시립희망원·충남 천성원(산하 양지원·성지원)·경기 성혜원에서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한 점이 인정됐다며 이처럼 전했다.

조사에 따르면 이들 시설에서는 강제수용과 강제노역, 감금, 폭행 등 가혹행위가 일어났다. 일례로 서울시립갱생원 수용자들은 서울시 조례로 만들어진 ‘새서울건설단’의 도시 재건 사업에 무급으로 투입됐다. 또 천성원 산하 성지원은 1982년부터 10년간 시설 사망자 시체 117구를 해부실습용으로 한 의과대학에 교부한 사실이 드러났다. 천성원과 대구시립희망원 등에서 태어난 아이 중엔 출산 직후 해외 입양 목적으로 홀트아동복지회 등 입양 알선기관으로 전원조치된 점도 드러났다.

▮‘성인 시설’에 아동 마구잡이 수용

애초 이들 시설은 성인 부랑인 시설로서 입소자의 자활을 목적으로 운영됐다. 실상은 10대 아동 또한 구분 없이 수용했고, 억지로 노역시켰다. 시설 중간관리자로부터 폭행당해 목숨을 잃기도 했다 특히 양지원·성지원은 형제복지원 사건이 불거진 1987년 당시 시설 내 가혹행위 등이 사회문제로 대두해 신민당이 현장 조사를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시설 측이 국회의원과 기자를 폭행해 가며 출입을 저지해 조사가 좌절됐다. 시설들은 부산 형제복지원과 마찬가지로 1975년 내무부훈령 제410호 등을 근거로 운영됐다.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을 계기로 이 훈령은 폐지됐으나, 같은 해 보건사회부령 제523호로 대체되며 치안유지 목적의 부랑인 단속이 계속됐다.

이번에 확인된 피해자 13명 중 9명은 부산 형제복지원에 갇혔던 경험이 있었다. 이 중 5명은 1987년 형제복지원 검찰 수사 이후 소년의집을 거쳐 서울시립갱생원으로 강제 입소됐다. 2명은 대구시립희망원에 재차 수용됐다. 1명은 형제복지원 퇴소 뒤 천성원과 서울시립갱생원을 ‘뺑뺑이’ 당했고, 다른 1명은 형제복지원에서 경기 성혜원으로 강제 전원됐다. 다수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다른 시설로 옮겨졌으며, 어느 곳에서든 형제복지원과 유사한 인권침해를 겪어야 했던 ‘집단수용 디아스포라’(국제신문 지난 7월 2일 자 1면 등 보도)였다.

▮시설 맘대로 ‘뺑뺑이’…파탄난 가정

전원은 명목상 ‘연고지 이송’ 차원에서 이뤄졌다. 실제론 연고와 무관한 곳으로 옮겨가는 일이 잦았다. 시설 내 규칙 위반을 벌하려고 소년의집이 10대 아동을 서울시립갱생원으로 보낸 사례도 발견됐다. 수용 인원 조정과 노동력 동원에 더해 사적 제재를 목적으로 시설끼리 수용자를 돌리는 ‘회전문 입소’가 이뤄졌던 셈이다. 성혜원 피해자 박모 씨는 “형제원에서 폭행을 많이 당해 몸이 시퍼렇게 된 사람들이 성혜원에 와 한 달 있다가 대구 희망원으로 가고, 희망원에서 있다가 폭행을 심하게 당하면 인천에 보내는 식으로 ‘뺑뺑이’를 돌렸다”고 진술했다.

일단 부랑인으로 낙인찍혀 수용 체계로 빨려 오면 이를 벗어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진화위 한 조사관은 “피해자 대부분이 첫 번째 입소는 형제복지원이지만, 이곳만 머물지 않고 중간에 타 시설로 전환돼 경기·대구 등으로 갔다. 또 1987년 문제로 사람들을 퇴소시켰으나 한 번 수용시설 생활을 겪으면 자립해서 생활을 하는 게 굉장히 어려웠기 때문에 다른 수용시설에 갈 수밖에 없었다”며 “특히 천성원은 규모나 내부 규율이 형제복지원과 거의 유사했다”고 설명했다.

집단수용 체계가 부자(父子)를 ‘억지 부랑인’으로 전락시킨 사례도 확인됐다. 박경보(60) 형제복지원피해자협의회장과 그의 아버지가 겪은 비극이다. 서울 태생인 아들 박 씨는 쌀을 팔러 나간다던 아버지가 며칠째 귀가하지 않자 행방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 수용된 뒤 형제복지원으로까지 옮겨졌다. 당시 아버지는 서울시립갱생원에 수용돼 그곳으로 유명을 달리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족은 이를 최근까지도 몰랐다. 박 씨는 “당대 집단수용이 차림새 같은 임의적 기준에 따라 자행됐으며 그 결과 멀쩡한 가정이 파괴됐다”고 호소했다.

▮“모든 피해자 아우르는 특별법을”

이번 조사를 근거로 진화위는 ‘모든 집단수용시설 피해자 아우르는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진화위가 시설 단위를 넘어서 집단수용 체계 자체의 조사 필요성을 주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개별 시설이 아닌 여러 시설을 묶어 조사를 진행한 것도 최초다. 진화위 관계자는 “애초 이번 조사도 개별 사건 단위로 접수됐다. 이번에 처음으로 전국에 걸친 시설을 묶어서 조사했다. 집단수용시설은 서로가 (피해 양상이나 피해자의 수용 이력 등) 공통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를 포괄하는 특별법을 권고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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