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계로 뽑혔다" 선 넘은 조롱…'감사한 의사' 블랙리스트 퍼진다
복귀 전공의, 병원에서 일하는 전임의, 학교로 돌아간 의대생 등 2500여명의 실명과 학번, 근무지 등이 담긴 블랙리스트 '감사한 의사' 명단이 또다시 업데이트됐다. 복귀 의사 수 십명의 전화번호를 공개하는가 하면 응급실 근무 의사마저 '부역자'라며 명단에 추가해 조롱거리로 삼는다. 장기화하는 의료공백으로 국민과 환자의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 블랙리스트 작성자는 점차 교묘하고 악랄하게 '현장 의사 이탈'을 부추기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9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7일 온라인 아카이브 사이트에 '감사한 의사' 명단이 올라왔다. 이번이 벌써 3번째 업데이트다. 작성자는 의사 커뮤니티 플랫폼인 메디스테프, 총 4000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텔레그램 채팅방에 '감사한 의사' 명단을 지난 20일부터 아카이브 사이트를 통해 일반인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배포하고 있다.
현재까지 블랙리스트에는 복귀 전공의 800여명, 병원에 몸담은 전임의 1200여명, 학교로 돌아간 의대생 220여명과 촉탁의, 군의관, 공보의 등 2500여명의 명단이 담겨있다. 불과 보름도 채 안 돼 규모가 2배 이상 늘어나며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피해도 일파만파 커지는 상황이다.
작성자는 최초 블랙리스트에 실명과 학번, 근무지를 공유한데서 최근에는 의사면허, 전화번호, 이메일, 인스타그램과 카카오톡 아이디까지 올리며 '저격'을 유도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가정의학과 전공의는 3년 차 19명, 2년 차 3명의 실명과 생년월일, 이메일주소, 전화번호, 출신 학교가 무차별적으로 유포되고 있는 실정이다.
작성자는 명단에 올라간 전공의, 전임의 등에게 사직 후 이를 인증하면 블랙리스트에서 빼주겠다며 '협박'을 일삼고 있다. 그러면서 " 발기부전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탈모가 왔다고 함", "미인계로 뽑혀 교수님과 연애" "외상 환자 방치해 숨넘어갈 뻔" 등 확인되지 않는 정보를 마치 '사이버 렉카'처럼 퍼트린다. 실제 "회개한 자(모든 내용 삭제)"라며 블랙리스트로 인해 사직한 의사가 있다는 점을 암시하기도 했다.
특히, 최근 업데이트된 명단에는 '응급실 부역'과 '씹수(교수를 비하하는 은어)'를 추가해 현장 의료진의 힘을 빼놓고 있다. 작성자는 "복지부 피셜 '응급실 의사가 부족한데도 응급의료는 정상 가동 중' 이를 가능하게 큰 도움 주신 일급 520만원 근로자분들의 진료 정보"라며 근무 교수와 전임의, 전공의의 실명을 적었다. 또 PA(진료 지원) 간호사와 전공의 확대 등에 찬성했다는 이유로 서울대, 고려대구로병원, 여의도성모병원 의대 교수 3명을 공개 저격하기도 했다.
'감사한 의사'에는 의대 정원을 추진한 공무원과 이를 옹호한 대학 총장과 국회의원, 의료계 비판 의견을 낸 일부 기자에 대해 이름, 기사 제목, 취재 활동 등도 함께 공개됐다. 최근 머니투데이가 작성한 블랙리스트 기사는 "왜곡 보도 사실을 숨기기 위해 업데이트 파트만 캡처하는 악질"이라고 소개하는 식이다.
익명을 요구한 의대생 A씨는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의대생, 전공의가 한두 명이 아닌데 다 블랙리스트 때문에 못 돌아가고 있다"며 "의대 정원을 되돌려도 안 돌아올 거라면서 이런 짓을 자행하는 게 사람인가"라고 분개했다.
그는 "퇴사하고 나서도 원래 다니던 직장 사람들을 테러하는가. 퇴사자가 직장에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요구하고 요구조건 들어주면 복귀해준다고 말하는 게 정상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응급실 파행을 막기 위해 열심히 근무하는 의사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게 인간이 할 짓이냐"며 "(선배들은) 벌써 내년도 신입생이 들어오면 협박해 같이 눕겠다는 생각뿐이다. 타인의 자유를 누구보다 억압하면서 본인들의 자유를 주장하는 파렴치한 집단은 내가 떠나겠다"고 했다.
블랙리스트의 파장이 커지고 있지만 대한의사협회는 "현황을 파악하고는 있다. 그런데 협회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회원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는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경찰에 해당 사이트 작성자의 수사를 의뢰했다. 교육부도 "해당 부서에서 경찰에 수사 의뢰하는 등 조처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A씨는 "전임의·전공의·의대생 블랙리스트가 이 정도로 광범위해진 건 수백 명이 리스트 작성에 열을 쏟고 있기 때문"이라며 "관련자가 다수로 추정되는 만큼 서둘러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유효송 기자 valid.s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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