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시각] 오염수 괴담과 아버지의 폐업
지난 3월 아버지가 가게를 접었다. 2010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혼자서 15년간 일궈온 전복 가게였다. 아버지의 생애로 보면 50여년을 투신한 수산업에서의 은퇴였다. 아버지는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 때문인지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새벽이면 일어나 완도나 흑산도로 작업을 가는 것도, 수족관 수조의 물갈이를 하는 것도 힘에 부치다”고도 했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예전같지 않은 수입도 폐업의 원인이 됐다. 전복 양식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공급이 급증했는데, 수요가 따라가지 못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와 이어진 방사능 괴담으로 전복 수요가 급격히 떨어졌다. 대목인 설 명절, 선물로 많이 찾던 전복이 예년만큼 팔리지 않았고, 이는 아버지가 폐업을 선택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지난해 8월 24일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 처리수 방류를 전후로 야당에선 각종 괴담을 생산했다. ‘핵 테러’ ‘세슘 우럭’ ‘방사능 소금’ 등 해괴한 발언이 쏟아졌다. 원자력 과학자들이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해도 괴담은 끊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전문가들을 향해 “돌팔이”(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과학적 검증을 제쳐둔 채, 괴담을 앞세운 공포 정치는 효과적이었다. ‘소금에 방사능이 축적될 수 있다’며 소비자들이 소금 사재기에 나서면서 천일염 가격이 50% 이상 폭등했다. 장기 보관하며 간수를 빼야 하는 천일염을 일반 가정집에서 쓸 일은 거의 없다. 괴담이 만들어낸 해프닝이었다. 방사성 원소인 삼중수소는 물에 ‘삼중수소수’로 존재하고, 삼중수소수는 햇빛을 받으면 증발하기 때문에, 소금에 남을 수 없다는 과학자들의 설명은 ‘우이독경’이었다.
진상(眞相)이 없는 괴담과의 전쟁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쓴 돈만 1조6000억원이다.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달 23일 브리핑에서 “지난 1년 동안 국내 해역, 공해 등에서 시료를 채취해 4만9600여건의 검사를 진행한 결과 안전기준을 벗어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면서 “핵폐기물, 제2의 태평양전쟁 같은 야당의 황당한 괴담 선동이 아니었다면 쓰지 않았어도 될 예산 1조6000억원이 이 과정서 투입됐다”고 했다.
정 대변인은 “야당이 과학적 근거를 신뢰하고 민생을 위한 정치를 했다면 바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쓰일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국민 공포감 증가와 국민 분열로 인해 들어간 사회적 비용은 돈으로 환산할 수조차 없다. 괴담 피해는 어민, 수산업 종사자 그리고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고 덧붙였다.
괴담을 유포한 장본인은 당당하다. “후쿠시마 오염수가 우리 해역에 유입되는 데에는 4~5년에서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1년이 지났는데 아무 일 없지 않냐고 들이대는 것은 무지와 경망의 비논리”(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라고 주장한다. 김 최고위원의 말대로라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바다로 유입된 방사성 물질이 진작 우리 해역에서 검출됐어야 한다. 김 최고위원의 발언은 평가 시기를 먼 미래로 미뤄 괴담 정치를 계속 하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 ‘광우병 괴담’ 때도, ‘사드 참외 괴담’ 때도 이랬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괴담 정치의 끝은 씁쓸하다. 분명 괴담의 진상은 밝혀질 것이다. 괴담에 휘청였던 국내 어업도 생산량과 소비량 등 통계적으로 회복 탄력성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통계 수치는 ‘개인의 삶과 고통’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한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 처리수 방류 당시 민주당은 어민 지원 등을 담은 ‘후쿠시마 4법’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 법은 21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공언(公言)은 공언(空言)이 됐다. 22대 국회에서 추진할지도 미지수다. 괴담으로 여론을 호도해 정치적 이익만 노릴 뿐, 민생은 뒷전인 공당의 씁쓸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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