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나를 상상하고, 거꾸로 계산하자 [더 머니이스트-이윤학의 일의 기술]

2024. 9. 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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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여섯 번째 이야기
"목표 달성을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실행하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저 역시도 사회 초년병 시절엔 타이틀 중심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1990년대 저의 첫 인생 목표는 '한국 최고의 애널리스트'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삶의 지향점에 대한 고민보다 직위나 타이틀에 대한 동경이 컸던가 봅니다. 사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저는 첫 이직을 결심하게 됩니다. 저의 첫 직장에서 과장 진급을 하던 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쳤지요.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서 부서 통폐합을 하는데, 제가 몸담고 있던 투자분석부와 영업추진부가 합쳐서 큰 부서가 됩니다. 제가 투자분석 과장을 맡게 되었는데, 갑자기 영업 추진 과장이 개인 사정으로 퇴사했습니다. 졸지에 핵심 두 부서의 과장을 겸하게 됩니다.

지점 영업이 증권회사 매출의 대부분이던 시절, 영업추진부는 영업 전략과 기획, 인사, 지점 관리 등 모든 것을 관장하는 핵심 부서였습니다. 반면 투자분석부는 투자자들의 투자 판단에 도움을 주는 투자분석 리포트를 만드는 지원부서였습니다. 낮에는 영업추진과의 일을 하고 저녁엔 투자분석과 일을 챙기는 강행군이 1년간 지속됐습니다. 집에선 옷만 갈아입었을 정도죠. 회사의 관점에서 보면 '돈 안 되는' 투자분석부보다 영업 전반을 챙기는 영업추진부 업무가 훨씬 중요했지요. 그렇다 보니 저는 겸직이지만, 영업 추진에 업무 비중이 더 쏠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부서를 맡기 2년 전 미국 연수를 다녀오며 결심한 게 있었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만난 백발의 시니어 애널리스트처럼 자본시장에 좋은 영향력을 가진 애널리스트가 되겠다, 한국 최고의 애널리스트로 거듭나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업추진과와 투자분석과 과장을 겸직하며 업무의 균형추가 영업추진과로 기울었고, 그 꿈은 멀어져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영업추진부장의 유고로 일개 과장이 '영추부장 대행'을 하면서 분에 맞지 않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점과 지점장을 평가하고, 영업직원의 인사고과를 담당하는 자리의 특성상 '임원급 과장'이라는 원치 않는 별명도 얻게 되었지요. 그럴수록 제 꿈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졌습니다. 결국 그다음 해에 저는 결단했습니다. 애널리스트의 길을 가겠노라고.

회사 내 선배들은 제게 핵심 본부, 핵심 부서의 핵심 과장으로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데 뭐가 아쉬워 '돈 안 되는' 애널리스트 하려고 하냐며 딱하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주변에 많은 사람이 이직을 말릴 것 같아서 먼저 아내와 상의하고, 사표를 낸 그날로 가족과 함께 남이섬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니, 완전히 연락이 두절이 된 거지요. 무슨 일이냐며 사표를 받지 않으시던 담당 임원을 비롯해 부서 직원들까지 난리가 났지요. 사전에 누구에게도 귀띔하지 않았거든요. 후배들에겐 미안했지만, 언젠가 같이 일할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독하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회사에도 미안한 마음이 컸죠. 미국 연수를 비롯해 많은 배움의 기회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널리스트라는 꿈을 포기하기에 당시 33세였던 저는 너무 젊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꿈을 위해 처음으로 이직한 이야기입니다.

사진과 기사 내용은 관계 없음./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저는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를 하면서 첫 2년은 매년 두 번, 이후 3년간은 매년 한 번씩 임원을 제외한 모든 직원과 개인 대화를 했습니다. 제가 미리 질문지를 주고, 서로 편한 시간을 정해 한 시간 정도 이야기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이 시간은 인사팀과도 대화 내용을 공유하지 않는 둘만의 시간으로, 직원들이 제게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시간에 매년, 매번 똑같이 물어봤습니다. "당신의 인생 목표는 무엇인가요? 30년 후에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요?" 처음엔 당황하던 직원들도 제가 매년 반복해서 이 질문을 하니, 한 해 한 해 인생이라는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행복도 연습'이라고 하지요. 매년 직원들의 인생의 꿈, 목표가 조금씩 달라지는 게 보였습니다. 아주 확 바뀌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만큼 생각을 많이 했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소통은 사회초년생이나 과장급 이하 직원들에 특히 중요합니다. 어쩌면 차장, 부장도 늦지 않았지요.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고 도전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큰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10년 단위의 전략을 정하고, 이후 각 전략을 수행할 미세한 전술들을 세우는 게 필요합니다. 삶의 목표를 이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산(逆算)하는 것입니다. 답을 정해 놓고 거꾸로 시간을 계산해 그에 맞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지요.

스무 살의 대학생이 있습니다. 이 학생은 '정의를 지키고, 억울하고 힘없는 사람을 위해 살아가겠다'고 인생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국 최고의 대법관'이 되겠다는 전술적 지향점을 설정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역산하면 됩니다. 먼저 60세에 대법관이 되려면 50세까지는 어떤 직무를 해야 하는지 조사합니다. 30대와 40대엔 판사 임용 후 배석판사와 고법 판사 이후 덕망 있고 합리적인 부장판사가 되는 길을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30대에 판사가 되는 전술적 준비가 중요하지요. 우선 30세에 판사가 되기 위해선 대학을 졸업하고 로스쿨(3년제)에 입학해야 합니다. 적어도 27세에 로스쿨에 입학해 좋은 성적으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야 30세에 판사에 임용될 수 있지요.

그럼 로스쿨에 가기 위해 사전에 준비할 것은 없을까요? 학부생 시절의 학점 관리(GPA)는 물론 법학적성시험(LEET)이나 토익과 같은 영어 시험도 열심히 준비해야 하지요. 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문, 철학, 역사, 논리학, 심리학, 경제학 등을 사전에 공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렇게 스무 살 청년이 한국 최고의 대법관이 되겠다는 인생의 꿈을 이루려면 먼저 30년, 20년, 10년 뒤 목표를 설정하고, 가장 가까운 목표인 7년 뒤 로스쿨 입학을 위해서는 5년, 3년, 1년 단위로 구체적인 역산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아주 명확해질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변호사의 꿈은 대통령입니다. 지금은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죠. 본인의 인생 지향점과 정치적 소견을 듣지 못해서 왜 그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하여 역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려면 사회 다방면의 많은 경험이 필요하고, 그중 경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지요. 경제 중에서도 그 근간은 금융이라고 판단하고, 금융 분야를 잘 알기 위해 금융회사 전속 변호사로 취업했다고 합니다. 그는 지금 2~3년 단위로 자산운용사, 부동산 전문 금융사, 대형증권사, 은행을 차례로 이직해 각 업계를 경험해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앞서 잘생긴 아이돌 연습생 출신의 직원에 대해 이야기했지요? 만약 제가 그 친구라면 많은 고민과 생각 끝에 이런 목표를 정할 것 같습니다. 그 친구는 당시 투자은행(IB) 분야에 관심을 보였으니, IB 분야에서 좋은 영향력을 미쳐 자본시장의 투자자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누리게 하겠다고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그 전술적 지향점을 IB 비즈니스의 중심인 증권회사 사장이라고 정합니다.

나는 지금 증권회사 입사 2년 차인 30세 직원이고, 55세에 IB 비즈니스를 잘 아는 좋은 영향력을 가진 증권회사 사장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적어도 20년 후인 50세에 IB 부문 임원이 되어 있어야 하며, 주식발행시장(ECM)이든 부채자본시장(DCM)이든 부동산이든 어느 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45세엔 좋은 성과를 내서 부장으로 승진하고, 그 전인 40세엔 차장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본인의 주특기를 확고하게 만들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0대엔 관련 전문 분야 공부를 깊게 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말하지만,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우선 한 분야의 전문가로 확실히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깊게 공부해야 합니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부서가 IB 부서가 아니라면, 그 분야로 가기 위해 나의 자질을 충분히 끌어올리고 알려야 합니다. 객관적으로 증명이 가능한 자격증이나 경영전문석사(MBA) 등으로 본인의 역량을 해당 부서의 선후배에게 알려야 하지요. '저 거기서 일하고 싶어요' 이렇게 말입니다. 그리고 그 부서에서 5년 이상 근무한 선배에게 조언을 지속해서 구해야 합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어떤 자격증이 필요한지 등입니다. 관련된 업계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왕이면 인성 좋고, 실력 좋은 5년 차 이상 선배를 멘토로 정해서 지속해서 도움을 받으면 금상첨화입니다.

야구선수 오타니의 '만다라트' 방식도 일종의 역산을 하는 방법입니다.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역산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 배분입니다. 너무 크게 정의해도 안 되고, 너무 잘게 잘라도 안 좋습니다. 삶에서 직위나 직책이 가장 높아지는 시기는 50대 혹은 60대이지만, 실력이 가장 좋고 성과를 가장 잘 내는 시기는 40대이지요. 20대는 일을 배우는 시기여서 시행착오가 많고, 30대는 열심히 일하지만 혼자서 주도적으로 일하기엔 여전히 역부족인 시기입니다. 그래서 30대까지는 테크닉적인 전술적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40대에는 역량을 결집하고 성과를 만들어내는 전술적 목표가 필요하지요. 50대엔 조직을 아우르고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목표가 필요합니다.

분명한 것은 인생의 목표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출발부터가 다르다는 겁니다. 결과는 더욱 다릅니다. 수백km 떨어진 목표물에 미사일을 쏠 때, 출발할 때 발생한 미세한 각도 차이는 목표물에 도착할 무렵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들지요. 단지 목표를 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산(逆算)하여 실행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윤학 전 BNK 자산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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