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수용에 가혹행위까지"…또 다른 형제복지원, 37년만 진실규명
'부랑인 단속 정책' 국가 책임규명 자료 최초 입수
국가 차원의 추가 피해조사 및 보상·재활 시스템 마련 권고
[서울=뉴시스]이수정 기자 = "15살 때인 1973년 가을경에 대구역 대합실에 앉아있는데 대구시청 2명이 따라 오라고 해, 갔더니 탑차에 실어 대구시립희망원에 입소시켰습니다. 계산해보니 시설에 갇혀 산 것만 총 23년이더라고요."
성인부랑인수용시설 피해자 이영철(가명·66)씨는 "창이 높아서 밖이 보이지도 않았고, 장판도 없는 시멘트 바닥에서 자야 했다. 식사는 꽁보리밥에 된장이 전부였고, 원복을 깨끗이 세탁하지 않거나 지시를 어긴다는 이유로 맞은 일도 많았다"며 당시의 열악한 상황을 전했다.
이씨는 1973년 대구시립희망원부터 1974년 서울시립아동상담소, 1980년 서울시립갱생원, 1982년 충남 성지원과 양지원 등 총 5개 시설에 강제 입소돼 살았다. 시설을 나온 이후로도 노숙을 전전해야 했다. 이씨는 "대구역에서 만났던 대구시청 직원이 희망원에 안 보내고, 대구 역전 파출소 경찰이 성지원에 안 보냈다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말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지난 6일 제86차 위원회를 열고 '서울시립갱생원 등 성인부랑인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판단하고 진실규명(피해자 인정) 결정했다고 9일 밝혔다.
형제복지원과 동일한 정부 시책에 의해 운영됐으나 형제복지원이 검찰 조사를 받던 1987년 당시, 어떠한 공적 조사도 받지 않고 업무를 계속했던 서울시립갱생원, 대구시립희망원, 충남 천성원(대전 성지원, 연기군 양지원), 경기 성혜원 4개소에 대한 37년 만의 진실규명이다.
해당 시설들에서는 경찰·공무원 등에 의한 강제수용, 본인 의사에 반하는 회전문 입소, 폭행·가혹행위, 독방감금, 강제노역 등 인권침해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진실화해위는 이번 조사 과정에서 국가의 부랑인 단속 정책 및 시설 운영 지원 전반에 대한 책임 규명 자료를 최초로 입수했다. 지난 2022년 진실규명했던 형제복지원 조사 과정에서는 확인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조사 결과, 정부는 사회정화라는 명목을 내세워 수시로 경찰·공무원 합동 단속반에 의한 불법적 단속 및 강제수용을 지속했고 민간 법인에 해당 시설들의 운영을 위탁하면서 인권침해 발생을 방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 성혜원은 1982년 이사회 회의록을 통해 1978년 이후 법인의 목적사업을 '부랑인선도시설'로 변경하고 수용 규모를 늘린 배경이 "88년 서울 올림픽을 대비한 정부의 특별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구걸행위자보호대책'에 따라 서울시립갱생원 등 전국 부랑인수용시설 10개소에 대한 시설 신·증축 예산이 지원되면서 정부는 '부산 형제복지원'을 모델로 수용자 노동력 무급 활용 등 투자비 절감방안 강구를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설 간 '회전문 입소'에 따른 장기수용 등 인권침해 실상도 처음 드러났다. 전국 부랑인수용시설 간에 수시로 이뤄진 수용자 전원 조치의 서류상, 명목상 사유는 '연고지 이송'이었으나, 실제 연고지와는 무관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진실규명 신청인 13명 중 6명 역시 형제복지원에서 타 시설로 강제 전원, 3명은 형제복지원 퇴소 후 재단속돼 타 시설에 강제수용된 경우로 확인됐다. 이는 타 시설 인원 충원을 위한 단순 '수용자 돌려막기' 목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도시 재건사업 투입 목적의 '새서울건설단' 동원, 규칙 위반자에 대한 '신규동' 독방 감금, 시설 간부 등의 구타로 인한 폭행치사, 사망자 시체의 해부실습용 교부, 자의적 정신질환 판단에 따른 정신병동 격리 조치 등이 드러났다.
임신 상태로 입소한 여성이 시설에서 출산한 경우, 친권 포기를 강요하고 해외입양을 목적으로 입양 알선기관에 전원조치 한 정황도 확인됐다. 조사 담당관은 "대구시립희망원에서 14명의 아동이 1985~1986년에 전원된 것으로 확인됐고, 양지원에서는 6명의 아동이 1980년대에 걸쳐서 입양 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국가에 ▲공식 사과와 실질적 피해 회복 조치 ▲시설수용 인권침해 재발방지책 마련 ▲지속적 피해자 지원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특히 집단수용시설 피해를 아우르는 특별법 제정 등 종합적 피해회복 대책 마련도 권고했다.
이외에도 국가가 진실화해위 조사활동 종료 이후에도 추가로 확인되는 피해자에 대한 조사 활동을 제도화하고, 피해자들의 개별 구제신청 없이도 적절한 보상 및 재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crystal@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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