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는 강제노역, 죽어서는 해부 실습용으로 팔려나갔다

고경태 기자 2024. 9. 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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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형제복지원들③]
시신 113구 의과대학 해부용으로 넘긴 성지원
진실화해위, 시설수용 조사서 처음으로 기록 확인
보호자신병각서 (충남 천성원 산하 양지원). 진실화해위 제공
민간인 학살의 광풍이 전국을 휩쓴 한국전쟁이 끝나고 난 뒤, 이번에는 납치와 감금의 시대가 시작됐다. 시설 수용을 중심으로 한 정부의 부랑인 정책은 시설 쪽 이해와 결합하면서 부랑인만을 표적으로 삼지 않았다. 술 취해 행패를 부린다고, 일정한 주거 없이 배회한다고, 행색이 초라하다고, 심지어는 얼굴이 창백하다고 경찰과 단속반원에 잡혀가 짐승처럼 ‘사육’됐다. 헌법에 명시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신체의 자유’는 무시되었고, 이는 내무부 훈령 제410호, 구걸행위자보호대책, 보건사회부 훈령 제523호로 뒷받침되면서 형식적 민주화를 이룬 1987년 이후에도 지속됐다. 1987년부터 폭로된 부산 최대의 부랑인수용시설 형제복지원이 다가 아니었다. 서울시립갱생원, 대구시립희망원, 충남 천성원(대전 성지원, 연기군 양지원), 경기 성혜원 등 5곳(4개 법인)에 대한 진실화해위의 대규모 인권침해 진실규명을 계기로 이 문제를 다각도로 들여다봤다.

1980년대 대전의 부랑인 수용시설이 사망한 수용자들의 주검을 무연고로 분류해 의과대학 해부실습용으로 무단 제공했던 사실이 기록으로 드러났다. 부랑인시설 사망자 주검이 대학병원에 해부실습용으로 팔려나갔다는 주장은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 폭로 당시 피해자들의 진술에 의해 처음 제기된 바 있으나, 기록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사실은 진실·화해를위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지난 6일 제86차 전체위에서 진실규명(피해 인정) 의결한 ‘서울시립갱생원 등 성인부랑인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 조사 과정에서 확인됐다. 문제의 수용시설은 서울시립갱생원, 대구시립희망원, 충남 천성원(대전 성지원, 연기군 양지원), 경기 성혜원 등 5곳(4개 법인)으로 이 중 해부용 시신 제공 기록이 나온 곳은 천성원 산하 대전 성지원이다.

충남 천성원 산하 성지원 사망자 시신에 대한 사체교부신청서(왼쪽)와 사체교부증명서. 진실화해위 제공

진실화해위가 충남대 의과대학으로부터 제출받은 ‘천성원 사건 사망자 해부실습용 교부 현황’에 따르면 사회복지법인 천성원 산하 성지원이 부랑인 수용업무를 시작한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충남대 의과대학에 넘긴 해부용 주검은 113구다. 이 시기에 충남대가 인수받은 해부용 주검 총 117구의 97%에 이른다. 다만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며 부랑인 수용시설 인권침해 논란이 벌어졌던 1987년부터는 주 교부 건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살아서는 경찰 및 공무원 단속으로 부랑인 수용소에 강제수용 당하고 가혹행위와 독방 수용, 강제노역 등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인권침해를 당했던 이들이 죽어서도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해부 실습용으로 넘겨지는 인권침해를 당한 셈이다. 다만 이 자료에는 금전이 오고 간 내역이 없기 때문에 주검이 단순 교부를 넘어 ‘매매’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이번에 진실화해위가 조사를 실시한 부랑인 수용시설의 사망률은 두드러지게 높았다. 서울시립갱생원의 경우 1966년 수용자 900여명(추산) 중 180명이 죽어 이틀에 한 명꼴이었고, 이듬해인 1967년에는 1월1일부터 5월12일까지 하루 평균 2명이 죽어나갔다. 사망자를 해부용 실습용으로 넘긴 성지원의 경우 1986년 600명 수용규모에 46명이 죽어 7.7%의 사망률을 보였다. 진실화해위는 “1986년 20세 이상 일반 국민 사망률이 0.58%인 점을 감안하면 10배가 넘는 수치”라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각 사망자에 대한 사체교부신청서와 사체인수증 등을 검토한 결과, 대부분 사망 당일 또는 그 다음 날 사체교부신청서가 의과대학으로부터 대전시에 접수되어 곧바로 시체가 교부된 것을 알 수 있다”며 “시체인수증에 ‘상기 사체는 (시체해부)보존법 제4조, 제11조에 의하여 본 대학에서 인수했으며 같은 법 제3조의 규정에 의한 보존기간(30일간)을 6개월로 연장하여 보관할 것임’이라고 기재된 것을 볼 때, 인수 후 6개월 내에 해부실습에 사용한 뒤 연말에 한꺼번에 매장 처리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시체해부보존법(1962년 제정) 11조 1항에서는 “구청장, 시장 또는 군수는 인수자가 없는 시체에 대하여 의과대학장으로부터 의학의 교육 또는 연구를 위한 시체의 교부요청이 있을 때에는 그 사망을 확인한 후 이를 교부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주검 교부 자료들을 보면, ‘사망→교부 요청→실제 교부’가 하루이틀 만에 이뤄졌다.

진실화해위는 “성지원은 수용자 중 사망자가 발생하면 이들을 신속하게 ‘무연고 추정 시체’로 분류하여 의과대학에 넘기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며 “성지원처럼 사망자 대부분을 무연고 시체로 분류하여 의과대학에 신속하게 이송한 것은 의도적으로 연고자 인계 노력을 방기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처럼 시설 수용자 주검을 무연고 시체로 일괄 분류하여 해부실습용으로 교부했던 관행은 본인의 주검 처분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점에서도 문제라는 게 진실화해위의 설명이다. 2015년 11월26일 헌법재판소는 시체해부보존법을 이어받은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 12조 1항(인수자가 없는 시체의 제공 등)에 대해, 생전에 본인의 주검이 해부용으로 제공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의사표시를 명시적으로 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지 않아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해부용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하여 침해의 최소성 원칙 및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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